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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7)]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

20231109 청파교회 새벽설교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

 

<시편 34편 4-10절> 

 

4.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 

5. 주님을 우러러보아라. 네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6. 이 비천한 몸도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들으시고, 온갖 재난에서 구원해 주셨다. 

7. 주님의 천사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져 주신다. 

8. 너희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깨달아라.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 

9.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그를 경외하여라. 그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10.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잃고 굶주릴 수 있으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어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시편의 특징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34편입니다. 시편 34편의 표제는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다윗의 시’입니다. 이 제목은 사무엘상 21장 10-15절의 이야기를 상기시킵니다.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자신을 질투하던) 사울 왕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다윗은 가드라는 곳에서도 자신에 대한 명성이 퍼져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신분이 발각되기 전에 다시 도망을 가는데, 그때 다윗이 보인 행동이 미친 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사무엘기상에 등장한 왕의 이름과 오늘 본문에 등장한 왕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사무엘기상에 등장한 왕은 아기스인데, 오늘 본문에 소개된 왕의 이름은 아비멜렉입니다. 더구나 이 아비멜렉은 가드의 왕도 아니었고, 블레셋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본문과 오늘 본문에 등장한 인물이 서로 맞지 않은 것입니다. 

 

왜 이렇게 실제 본문시편 본문의 내용이 상이한가에 대한 이유는 정확히 알긴 어렵습니다. 다만 추측하건대, 시편이 가진 특성에서 그 원인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시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제목에 등장한 인물실제로 그 시를 쓴 사람인지 확실치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제목에 등장한 인물들은 수십, 수백 개로 나뉜 시편을 묶는 하나의 배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이라는 것 자체가 내용이 먼저 있었고 나중에 제목을 붙였기에 오늘 본문의 왕들 이름도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시편의 형식보다는 오늘 본문의 등장한 기도자의 마음이 어떠한가 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지만, 한편으론 뭔가 절박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시편 34편은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눠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먼저 1-3절을 보면, 시인은 자신의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자리에 비천하고 곤고한 자들을 초대합니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이름을 기리자고 말입니다. 

 

이름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름이 없다면, 서로를 부를 수 있는 방법 또한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름이라는 매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름 안에 한 존재를 전부 다 담아내진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릴 순 있지만 그 이름 안에 결코 하나님을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높여드리는 것 말고 그분을 높여드릴 다른 방법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잘 알고 있던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림으로 그분께 나아가길 바랐습니다. 

 

경험한 사람

 

이어서 4-10을 보면, 시인은 자신이 곤고한 상황에 처했을 때, 주님께서 자신을 지키시고 건지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시인이 정확히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긴 어려우나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매우 강렬하여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을 경외함으로 이 기쁨에 동참하라며 초대하고 있습니다.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무척 힘이 셉니다. 어떤 것을 경험한 사람은 생각만 했을 때보다 큰 확신을 갖습니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경험한 것은 기억이 오래가고 가슴에도 오래 남습니다. 특히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의 경험은 훨씬 크고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오늘의 시인도 큰 환난 중에 주님의 도움을 입었기에 그 기억은 매우 강렬했고, 그러다 보니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말을 다스리는 것

 

이어서 11-14절을 보면, 시인은 젊은이들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젊은이들은 시인보다 연소한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마치 지혜로운 스승이 제자들에게 말하듯 말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주님 때문에 구원받았던 그 구원의 감격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하나씩 나누어주기 시작합니다. 먼저 그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인생을 즐겁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 좋은 일을 하면서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합니다. 초대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주기를 먼저 악한 말을 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평화를 찾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잘 사는 인생입술을 다스리는 인생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에 관한 교훈은 정말 많습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관계를 갈라놓는 악한 말들을 하지 말고, 거짓 없이 정직을 말하며 살길 요청합니다. 주님도 말을 흩어놓기도 하시고(바빌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기도(천지창조) 하셨습니다. 이는 말이 인간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을 다스리는 것!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잊지 말아야 요소입니다. 

 

의로운 사람과 악한 사람

 

마지막으로 15-22절은 지혜 문헌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의로운 사람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서로 견주며 이야기를 전합니다. 먼저 주님의 귀는 의로운 사람을 향합니다. 주님은 의로운 사람이 당하는 고난에 늘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의 얼굴은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노려보시고, 그들에 대한 기억을 이 땅에서 지워버리십니다. 주님은 악인들을 엄중히 대하십니다. 잊혀 진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잊히지 않기 위해 이름을 남기거나 자서전을 쓰고, 갖가지 동상들을 세우곤 합니다. 그렇기에 악인들에 있어서도 자신들이 이 땅에서 지워져 버린다는 것은 아주 큰 형벌에 속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21-22절을 보면, 선인과 악인이 겪는 일이 정확히 상응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악인들에게는 죽음이 닥칠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키신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시인은 이렇게 하나님 편에 선 자어떤 선물을 받을지를 이야기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시편 34편의 시인은 사람들을 주님을 공경하는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고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 선 자를 돕는 분임을 또한 아주 강렬히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길 바랐습니다. 좋은 경험은 사람을 살립니다. 여러분들의 경험이 뭇 생명을 살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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