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Note / 시편 (9)] 답을 구하지 않는 신앙

2023. 11. 22. 14:54Note

20231123 청파교회 새벽설교
 
답을 구하지 않는 신앙
 
<시편 44편 23-26절>
 
23. 주님, 깨어나십시오. 어찌하여 주무시고 계십니까? 깨어나셔서, 영원히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24. 어찌하여 얼굴을 돌리십니까? 우리가 고난과 억압을 당하고 있음을, 어찌하여 잊으십니까?
25. 아, 우리는 흙 속에 파묻혀 있고, 우리의 몸은 내동댕이쳐졌습니다.
26. 일어나십시오. 우리를 어서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여 주십시오.
 

 


시인의 사랑고백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44편입니다. 시편 44편은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크고 높으신 주님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시인은 처음에는 주님에 대한 감사와 찬송을 드리다가 나중에는 주님께 원망 섞인 호소를 합니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시편 44편에는 쓰라린 패배를 당한 한 시인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주님께 사랑고백을 드립니다.
 
시인은 자기 신앙의 뿌리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이미 전해 들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이 자신이 택한 백성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셨는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의 위협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끝까지 지키신 분이셨고, 뭇 나라들을 조상들의 땅에서 몰아내신 분이셨습니다.
 
시인은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는 감사를 모르지 않는 자였습니다. 조상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두 팔로 도우신 하나님과 그리고 주님의 빛나는 얼굴이 늘 자기 백성들을 향한 덕분임을 알았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 조상과 그들의 후예인 자기 자신도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께 사랑받는 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 모습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화려하진 않아도 은은히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반대로 사랑받는 사람 또한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물론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인과 그의 조상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기 조상들을 많이 사랑하고 아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외세의 위협이 있어도 주님께서 지키실 것을 알았고 또 주님 앞에 범죄 하여 넘어지더라도 주님께서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심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시인은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의지한 것은 내 활이 아닙니다. 나에게 승리를 안겨 준 것은 내 칼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적에게서 승리를 얻게 하셨으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셨기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하나님만 자랑합니다. 주님의 이름만 끊임없이 찬양하렵니다." (6-8)
 
시인은 자기 조상들의 능력이 출중하거나 잘나서 지금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주님의 손길 덕분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평범한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삶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주님이 승리를 주셨다는 말의 다름 아닐 것입니다.
 
이별을 고한 주님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이야기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시인은 감사의 고백을 멈추고, 그동안 참아왔던 마음을 주님께 토로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를 버려, 치욕을 당하게 하시며, 우리 군대와 함께 출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적에게서 밀려나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마음껏 우리를 약탈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주시고, 여러 나라에 흩으셨습니다." (9-11)
 
시인은 거의 대들듯 주님께 말합니다. 자기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던 주님께서 한순간에 마음을 돌이킨 것입니다. 화려하고 찬란한 시절은 끝이 났습니다. 주님께 무한한 사랑을 받던 백성들은 한순간에 외톨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자신들을 아끼고 사랑해 주던 주님께서 이별을 고한 것입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우리 입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질 않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던 이가 갑자기 등을 돌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쓰라린 패배나 커다란 실패, 큰 아픔이나 상실 등을 겪고 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댑니다. 주님의 손길이 자신을 떠났다고 느끼며, 그 자리에 하염없이 앉아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외면해 왔던 잘못이나 혹은 자신의 죄악 된 행실들을 찾아내서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고 여깁니다. 상실과 죄책감이라는 이중의 고통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선인에게 닥친 위기
 
그런데 시인의 상황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말한 것보다 더 좋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기 민족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잊지 않았고, 주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쳤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주님을 배반한 적이 없고, 우리의 발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난 적도 없습니다." (17-18)
 
어찌 보면, 시인의 이 고백이 시인의 독선적인(교만한) 태도로도 읽힐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님 앞에 성실히 산 사람에게도 힘듦과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게 더 나을 듯합니다. 참 난감하고 어렵습니다. 주님은 악인은 벌하시고, 선인은 복 주시는 분임을 잘 아는데, 선인에게 불행이 닥치는 경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다시 일으키소서!
 
우리는 이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시인의 고백을 끝까지 쫓아가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깨어나십시오. 어찌하여 주무시고 계십니까? 깨어나셔서, 영원히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어찌하여 얼굴을 돌리십니까? 우리가 고난과 억압을 당하고 있음을, 어찌하여 잊으십니까? 아, 우리는 흙 속에 파묻혀 있고, 우리의 몸은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우리를 어서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여 주십시오." (23-26)
 
시인은 주님을 원망하기를 그치고, 주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합니다. 혹시 지금 주무시고 계신다면, 어서 일어나서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말입니다. 조상들을 돌보셨던 그 돌봄과 사랑과 애정을 갖고, 다시 우리를 일으켜달라고 시인은 목소리 높여서 기도합니다.
 
몸으로 살아내며 얻는 답
 
살다 보면, 우리도 이러한 일을 겪게 됩니다. 주님 앞에 성실히 살아왔음에도 삶에 큰 위기가 닥치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땐,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의 마음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만약 내 주위의 누군가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우리가 그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또는 나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을 두고, 과연 우리는 주님 앞에 어떤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직접 몸으로 살아보며 고난과 역경에 담긴 내용을 살필 뿐입니다. 릴케는 말합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려대학교출판부 p.40)
 
신뢰와 인내! 이 두 마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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