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Note / 욥기 (6)] 하나님에 선하심이 의심이 될 때

2023. 8. 22. 14:35Note

20230824 청파교회 새벽설교

 

하나님에 선하심이 의심이 될 때

 

<욥기 21장 23-26절> 

 

23.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기력이 정정하다. 죽을 때에도 행복하게, 편안하게 죽는다. 

24. 평소에 그의 몸은 어느 한 곳도 영양이 부족하지 않으며, 뼈마디마다 생기가 넘친다. 

25. 그러나 어떤 사람은 행복 하고는 거리가 멀다. 고통스럽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는다. 

26.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다 함께 티끌 속에 눕고 말며, 하나같이 구더기로 덮이는 신세가 된다.

 

 

보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욥기 21장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소발이 했던 말에 대한 욥의 응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발은 (20장에서) 욥이 했던 말 때문에 몹시 화가 난 상태입니다. 그도 욥과 마찬가지로 욥에게 한 말이 수용되지 않자 몹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내가 한 이야기가 옳은 이야기든 그렇지 못한 이야기든 나의 말이 상대에게 수용되지 않을 때 늘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어쨌든 욥을 향한 소발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그는 선인하나님이 돌보시고, 악인하나님이 벌하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발은 욥이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히 욥은 악인에 속한다고 여기고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욥기가 우리에게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욥에게 일어난 일우리의 상식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욥기에서는 선한 사람악한 사람의 처지가 역전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착하게 사는 사람은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어떤 믿음이 존재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한 마음그에 합당한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복을 받길 바라는 마음우리의 착한 행동에 선행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복을 바라는 태도나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복만을 바라는 것좋은 태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복을 바라게 되면 복을 주는 대상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앞서게 되고 또 복을 주는 대상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 보면 사람은 인위적이 되거나 무엇보다 부자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자유함의 뿌리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좋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무분별하게 살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오직 두려움 때문이라면 그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되어야 하지 두려움으로만 점철된 관계라면 그 관계는 좋은 관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악한 자들의 번영

 

어쨌든 우리 마음에는 두려움 때문이건 사랑의 마음 때문이건 하나님을 믿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욥이 하는 말은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계속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래서 욥기라는 책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책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솔직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미 신앙생활을 오래 해 오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선하게 산다고 해서 만사형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제멋대로 사는 사람불행을 겪지 않고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잘 사느냐? 어찌하여 그들이 늙도록 오래 살면서 번영을 누리느냐?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자식을 낳고, 자손을 보며, 그 자손이 성장하는 것까지 본다는 말이냐? 그들의 가정에는 아무런 재난도 없고, 늘 평화가 깃들며, 하나님마저도 채찍으로 치시지 않는다. 그들의 수소는 틀림없이 새끼를 배게 하며, 암소는 새끼를 밸 때마다 잘도 낳는다. 어린 자식들은, 바깥에다가 풀어 놓으면, 양 떼처럼 뛰논다. 소구와 거문고에 맞춰서 목청을 돋우며, 피리 소리에 어울려서 흥겨워하는구나. 그들은 그렇게 일생을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때에는 아무런 고통도 없이 조용하게 스올로 내려간다.”(7-13) 

 

욥은 악인이 행복하게 산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소발이 한 말이 얼마나 근거 없는 말인지 들려주기 위해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소발에게 있어서 하나님악인에게 벌을 주시는 분이고 그리고 현재 자기 친구인 욥이 벌을 받고 있다면 욥은 분명히 악인일 거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욥에게 있어서 악인행복한 사람입니다. 만사형통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억울한 마음 때문에서라도 차라리 악인이 되어서 이 고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욥은 계속해서 친구들의 말 때문에 이중-삼중의 소외를 겪고 있습니다. 

 

신정론

 

오늘 이야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선하시고 옳으신가, 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해, 우리에게 신정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신정론이란 4세기 신학자였던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이 품었던 질문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전능하신 분이신데, 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에 관한 물음을 말합니다. 

 

욥 또한 이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악이 존재하는 이유인간의 자유 의지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욥은 어떻게 보면, 어거스틴의 입장 반대편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욥은 선한 사람이고 고결한 품성까지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자유 의지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만 흘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 혹은 선한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내용만으로는 신정론에 관한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물론 욥기가 다 끝나도 신정론에 대한 답을 잘 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모르는 부분모르는 부분으로 둘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답이 잘 내려지지 않는 문제많은 시간과 경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아닙니다. 만약 욥처럼 모호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나의 곁에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은 바로 그의 곁에서 그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되어주기

 

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이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욥의 곁에서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말합니다. “너희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아라. 너희가 나를 위로할 생각이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내게는 유일한 위로이다. 내게도 말할 기회를 좀 주어라. 조롱하려면, 내 말이 다 끝난 다음에나 해라.”(2-3) 그리고 한 번 더 말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빈말로만 나를 위로하려 하느냐? 너희가 하는 말은 온통 거짓말뿐이다.”(34) 

 

성숙한 신앙특별한 게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려고 부단히 애쓰는 게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름을 인정하되 그저 그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정론에 대한 답은 내리지 못해도 내가 그 사람 곁에 있어줌으로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귀는 닫고, 입을 열기만 한 곳에는 평화가 임하기 어렵습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이작가야의 BibleSalon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