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alon

에세이 438

기다림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삶은 곧 기다림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가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뭔가를 늘 기다리며 산다. 영화 의 여주인공 평완위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매달 5일을 기다리고, 소설 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은 고도를 기다리며 소설 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이민족 타타르인들을 매일 같이 기다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뭔가를 기다리며 산다. 그런데 기다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많은 에너지가 기다림에 사용된다. 그래서 사람은 기다리느라 다른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기다리고 기다림은 다른 많은 일을 하..

Salon 2024.10.17

생각

2024년 10월 16일 수요일 "말에는 정신(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정신(생각)이 지나치면 찻잎이 너무 많은 차가 쓴맛을 내는 것처럼 부담스러워진다. 반대로 충분하지 못하면 색이 나지 않고 향도 나지 않는 차처럼 무미건조해진다. 내용과 형식이 잘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겠다."  옳은 이야기도 너무 자주 들으면 무뎌진다. 사실 무뎌지기 전에 먼저 부담부터 느낀다. 좋은 음식도 과식하면 체하는 법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더 난감하다.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 낭비에 대한 후회가 몰려온다. 그렇다. 어떠한 내용이 어떠한 형식을 빌려 발화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내용과 형식에 앞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이다. 바른 생각을..

Salon 2024.10.16

사랑

2024년 10월 15일 화요일 "불합리한 충동의 에너지가 항상 더 크다. 사랑은 오랫동안 쌓아온 견고한 합리의 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 반성과 성찰은 그 논리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는데, 합리적 설득을 통해 그 튼튼한 논리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불합리한 충동이며 부조리한 일격인 사랑밖에 없다." (이승우, ) 논쟁으로 사람이 변화되던가. 말다툼으로 상대가 변화되던가. 가끔 있어도, 거의 있지 않다. 사람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생각보다 사람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래서일까?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합리와 논리가 아니다. 그와 반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글쓴이는 사랑은 불합리한..

Salon 2024.10.15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경청은 단순히 말에 귀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발생한 사람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이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섣부르게 단정하는 습관 때문에 빈번히 오역이 일어난다. 집중과 인내. 그리고 어쩌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언어는 고정되지 않는다. 언어에 기준이나 법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준일 뿐이다. 사람의 언어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말랑한 겉바속촉 쿠키와 같다. 인간관계는 결국 겉보다 서로의 속(내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상대방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오역이 발생한다. 그래..

Salon 2024.10.15

영원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승우, , 문학동네, 2024, p.90) 사랑하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사랑하는 대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미지의 존재가 된다. 모른다는 사실이 불안과 초조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상대방을 모른다는 사실이 왜 불안과 초조를 불러일으키는가. 그 상태를 지속시키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상대를 소유하고 싶고 이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사랑에 빠진 연인은 영원을 약속하지만 영원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영원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한 가지 있긴 하다. 바로 ..

Salon 2024.10.12

성령

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한번은 어떤 사람이 버나드 쇼에게 성령이 '성서'를 썼다는 사실을 믿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모두 성령이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책이란 저자의 의도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 책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흥미로운 말이다.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모두 성령이 썼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은 삼위일체 가운데 한 위격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범위를 확장한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쓰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글을 쓴다. 어떤 책은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덮기도 한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책은 품에 안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

Salon 2024.10.12

부재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누군가의 부재가 왜 고통이 되는가. 부재가 곧 무지의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없는 것/사람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한때 있었다가 없어진 것/사람은 지금 어떠한지 알지 못하고, 그래서 고통스럽다. 연인들은 곁에 없는 연인이 심지어 조금 전에 헤어졌어도, 지금 무얼 하는지, 누구와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이 의심과 불안은 고통을 만들고, 이 고통이 보고 싶다, 그립다, 라는 말로, 기만적인 순화의 과정을 거쳐, 표현된다."  그녀가 말이 없다. 계속해서 말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자 점점 화가 난다. 처음에는 미안했지만 점점 화가 난다. 그녀가 말이 없는데 왜 내가 화가 난단 말인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

Salon 2024.10.11

청춘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향수는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 이르지 못해 떠도는 자를 찾아온다. 혹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 떠도는 자는 그 불완전한 존재의 상태를 견디기 위해 향수를 불러오고 향수에 매달린다. 향수에 의지해서 산다."  김연수 작가는 청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라고 말이다. 청춘이야말로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이다. 그렇기에 청춘은 불완전하고 향수에 젖어 사는 자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청춘에게는 늘 가능성이 열려있고 청춘이기에 뭐든 해볼 수 있다. 청춘은 중립지대에 산다. 그럼, 지금..

Salon 2024.10.11

작품

2024년 10월 9일 수요일  "누군가를 꿈꾸는 자는 누군가가 꿈꾼 자이다. 누군가가 꿈꾼 자가 누군가를 꿈꾼다. 작가는 어디서 태어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보르헤스의 답은 이렇다. 위대한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태어난다. 작가가 작가를 태어나게 한다."  이게 어디 작가들만의 이야기겠는가. 위대한 작품은 한 사람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과의 만남이 한 존재를 새롭게 빚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의 인물은 어쩌면 실제로 실재하는 인물일는지 모른다. 글과 조각, 그림은 사람을 빚는 재주가 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www.youtube.com

Salon 2024.10.11

영감

2024년 10월 8일 화요일 "영감은 창작의 실마리가 아니라 매듭이다. 고민하고 애쓰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창작자의 작업실로 찾아와 한 세계를 완성하게 하는 것이 영감이다. 용 그림의 눈동자는 마지막에 찍힌다. 신은 흙으로 만들어진 형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 역은 아니다. 창작자의 고민과 수고의 산물인 흙의 형상이 있어야 신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영감에 의지해서 자동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작가의 지난한 수고의 과정 속으로 영감이, 은총처럼 임한다."  새로운 이야기다. 나는 영감을 전해주는 요정 '뮤즈'가 찾아와야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쓰고 그리고 만드는 모든 (창조) 행위자는 영감을 받아서 그 일을 시작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정확히 그 반..

Salon 202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