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alon

에세이 443

함께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카페에 마주 앉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연인을 본다. 간혹 얼굴에 엷은 웃음이 번지지만 그 웃음은 마주 앉은 사람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향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곳에 접속해 있다. (...) 신체적으로 옆에 있는 연인의 마음이 실제로 어디에, 혹은 누구 옆에 가 있는지 말할 수 없다. 물리적 접촉이 만남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물리적 공간의 점유가 친밀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이 두 사람이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승우, )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는 않지만 함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는 몸은 함께이나 마음은 따로인 연인을 말..

Salon 2024.11.01

불확실함

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고정된 확실성의 세계로부터 그렇지 않은, 비장소이고 불확실한 세계로 떠날 것을 지시받고 있다. 여기에 초대자인 여호와의 뜻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초대는 확실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거슬린다. 신의 초대에 응한다는 것은 본성을 거스르는 움직임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나는 평소 사람들에게 모험과 도전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안에 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험과 도전은 불안의 세계이자 불확실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안정적이고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사람의 본성은 그렇게 진화됐기 때문이다. 성서의 신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신은 인간에게 떠나라고 명한다. 떠남 속에..

Salon 2024.10.31

이해

2024년 10월 30일 수요일 "이해할 수 없이 크고 파악할 수 없이 큰 것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파악의 범주 안으로 욱여넣어야 한다. 그러면 이해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빠지고 이해할 수 있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담긴다. 훼손과 손실이 불가피하다. 훼손되지 않아야 할 것들이 훼손되고 손실되면 안 되는 것들이 손실된다. (...) 그러니까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채로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욕심쟁이다.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 물론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앎은 100% 충족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불가능하다. 앎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인식에는 제한이 ..

Salon 2024.10.30

무한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 "내가 당신의 무한하심을 두려워하여 물러서는 일이 없도록 당신의 무한하신 말씀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 당신은 인간의 말을 당신의 말씀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그 말로 내게 말 건네셔야 합니다. 그런 말이라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야기한다. 그가 어렵게 말하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는 어려운 말도 쉽게 풀어내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말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더 어려운 말로 응대할 줄도 안다. 그의 언어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족에 처할 줄도 안다. 신은 곧 무한의 영역을 가리킨다. 무한의 영역이 유한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이 아주 ..

Salon 2024.10.29

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그러나 결실은 사신이 하는 일이 아니고 사신의 몫도 아니다. 그의 일은 씨를 뿌리는 것이지 결실하는 것이 아니다. 결실의 많고 적음에 그의 영광이나 수치가 걸려 있는 것이 아니다. (...) 결실의 많고 적음은 우연한 행운이거나 어쩔 수 없는 불운이다. 우연한 행운이나 어쩔 수 없는 불운으로 영광과 수치를 가늠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을 대하는 중요한 태도가 여기에 있다. 물론 신이 있다는 가정하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신을 믿는 자는 신의 일을 하므로 부담스럽다. 신의 일을 하느라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받거나 결실이 맺히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도 충분히 가능하다. 사신은 신이 시킨 일을 하면 된다. 그..

Salon 2024.10.29

여백

2024년 10월 27일 일요일 "나는 텍스트의 여백으로 침투해 들어가려고 했다. 여백은 신의 말과 인간의 말이 맞부딪치는 자리이다. 여백은 침묵이 아니라 소란이다. 어떤 말로도 옮겨지지 못해 유보된 말들이 발굴되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공간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러니까 이 작업은 더 나은 이해를 위해서이지 훼손을 위해서가 아니다." 여백은 엑스트라들에게 마이크를 달아주는 것이다. 여백은 주인공이라고 하여도 말하지 않는 순간에 마이크를 달아주는 것이다. 그들의 침묵에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침묵은 소란으로 가득 찬 걸 알 수 있다. 여백은 소란이고 침묵은 소란이다. 그래서 말 없고 조용한 사람의 내면은 말 많고 시끄러운 사람만큼 소란스러운 걸 알 수 있다. 이승우 작가는 다른 책에서 말한다...

Salon 2024.10.27

신의 말

2024년 10월 26일 토요일  "말하는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없다. 신이 파악되지 않는 존재인 것은 인간이 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한한 신의 말이 유한한 인간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성서는 완벽하지 않다. 성서를 기록한 저자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시대, 자신의 인식, 자신의 한계에 예속되어 있다.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성서는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달리 방법이 없으시다. 인간에게 말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 말씀하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본래 뜻의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

Salon 2024.10.26

무한함

2024년 10월 25일 금요일  "당신의 무한하신 말씀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나의 유한한 세계 안으로 들어오되, 내가 살고 있는 유한성의 비좁은 집을 부수지 않고 그 안에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좋은 기도문을 꾸준히 읽어야 할 이유이다. 칼 라너는 신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과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다. 만약 인간에게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또 한계가 없다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진다. 무한한 세계가 유한한 인간 안으로 들어올 때 인간은 버틸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거나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무한한 것을 유한한 세계에 맞아들일 때는 요청이 필요하다. 무한한 세계가 유한한 내 세계 안에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말이다. 신..

Salon 2024.10.25

거부

2024년 10월 24일 목요일 "다른 사람의 꿈이 나를 취조하는 근거로 작용할 때, 누가 꾼 것인지 모르는 꿈에 대한 해석이 나의 삶을 휘저으려고 할 때, 외부의 꿈들과 바깥의 해석들이 내부를 흔들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귀를 닫는 것이다. 그 현장에서 달아나는 것이다.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해석자의 입'이 내 삶의 영역으로 파동하며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꿈'을 '타인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견해'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타인을 통한 자기반성은 중요하다. 바로 보게(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겸손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나를 평가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의 이야기는 거의 새겨들을 말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살면서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피..

Salon 2024.10.24

실현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너무 깊이 온종일 집중해서 생각하다보면 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혹은, 꿈의 이야기를 현실 속에, 스스로 재연한다. 꿈의 서사에 암시를 받아 삶을 꾸린다. 삶은 꿈의 복사관이 된다. 파스칼은 인생이 약간 덜 변덕스러운 꿈이라고 익살스럽게 말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일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꿈은 사람들이 '되고자 하는' 꿈이 아니라 '자면서 꾸는' 꿈을 말한다. 어떻게 꾼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가. 이승우 작가는 그러한 가능성이 생각하는 힘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생각'은 '생각을 위한' 생각이 아니라 '계속 생각나는' 생각을 말한다.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책 에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자네는 너무나 군사..

Salon 202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