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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청파 Note / 예레미야서 (2)] 마음의 포피를 자르라

by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24. 10. 13.

202401014 청파교회 새벽설교

 

마음의 포피를 자르라

 

<예레미야 4장 1-4절> 

 

1. "이스라엘아, 정말로 네가 돌아오려거든, 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그 역겨운 우상들을 내가 보는 앞에서 버려라. 네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여라. 

2. 네가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진리와 공평과 정의로 서약하면, 세계 만민이 나 주를 찬양할 것이고, 나도 그들에게 복을 베풀 것이다." 

3. "참으로 나 주가 말한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아,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아라. 묵은 땅을 갈아엎고서 씨를 뿌려라. 

4.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아, 너희는 나 주가 원하는 할례를 받고, 너희 마음의 포피를 잘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악한 행실 때문에, 나의 분노가 불처럼 일어나서 너희를 태울 것이니, 아무도 끌 수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요청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레미야 4장입니다. 예레미야 4장은 3장 후반부와 그 말씀이 이어집니다. 3장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 백성들이 죄를 고백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구약에 등장한 하나님은 대부분 백성이 회개하면 마음을 돌이켜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거두셨습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뭔가 다른 모습을 보이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죄를 고백하는 이들에게 한 가지 고백을 요청합니다. 주님은 유다 백성들의 고백이 한낱 말뿐이 아님을 증명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은 주님의 눈앞에서 우상을 버리고 진리와 공평과 정의로 서약해야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은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고 말씀하시며 할례를 행하고 무엇보다 마음의 포피를 자르라(4)고 명하십니다. 이 말씀은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함이 아닌 온전히 새로워지라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청인 것입니다. 

 

임박한 심판 

 

하지만 주님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대로 가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려주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시온으로 가는 길에 깃발을 세우며, 지체하지 말고 대피하여라. 내가 북쪽에서 재앙을 몰아와서, 크나큰 파멸을 끌어들이겠다.”(6) 주님의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지체하다가는 크나큰 파멸이 몰려올 것입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왕과 지도자나 제사장, 예언자 할 것 없이 모두 힘을 잃고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9). 이제 유다의 목에 주님의 칼이 닿았습니다(10). 

 

얼마 지나지 않으면, 주님이 보내신 병거와 군마들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7절에도 이미 등장한 바가 있지만, ‘세계 만민을 멸망시키는 자’나 13절의 ‘병거’와 ‘군마들’은 바로 바빌론 군대를 가리킵니다. 정확히는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왕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이유 없이 유다를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이러한 재앙을 초래했다고 말씀하십니다(18). 말씀의 분위기로 보았을 때, 유다는 임박한 심판을 피하기 어려워보입니다. 

 

괴로운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사람들을 늘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언자들의 용기 있는 메시지 덕에 이스라엘 민족은 자주 주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언자의 반응도 좀 다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탄식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배야. 창자가 뒤틀려서 견딜 수 없구나. 아이고, 가슴이야. 심장이 몹시 뛰어서, 잠자코 있을 수가 없구나. 나팔 소리가 들려 오고, 전쟁의 함성이 들려 온다.”(19) 예레미야도 바빌론의 기세를 느꼈기 때문일까요? 그는 코앞까지 닥쳐온 전쟁의 함성 때문에 괴로움과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이어서 예레미야는 환상을 봅니다. 그 환상은 창세기 1장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씀은 정확히 창조 이야기와 대조되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태초에 혼돈과 공허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각종 동물을 창조하십니다. 황폐한 공간이 충만한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곧 유다에 닥칠 운명은 그 반대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땅을 바라보니, 온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하늘에도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산들을 바라보니, 모든 산이 진동하고, 모든 언덕이 요동한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으며, 하늘을 나는 새도 모두 날아가고 없다.”(23-25) 예레미야는 바빌론 군대가 유다를 휩씁고 간 다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는 전혀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충만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황폐한 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배움에 실패한 민족

 

멸망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세상에 죽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고자 한다면 유다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유다는 자기 앞에 닥칠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너 예루살렘아, 네가 망하였는데도, 네가 화려한 옷을 입고, 금패물로 몸단장을 하고, 눈화장을 짙게 하다니, 도대체 어찌된 셈이냐? 너의 화장이 모두 헛일이 될 것이다. 너의 연인들은 너를 경멸한다. 그들은 오직 너를 죽이려고만 한다.”(30) 유다 백성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지 못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아무리 말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 차례 말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망하였는데도 자신을 단장하기에 바빴고 임박한 심판을 막기보다 자신의 욕망(연인)만을 따랐습니다.  

 

깨달음은 더디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끝끝내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선조들의 역사를 익히 잘 알고 있었음에도 돌이킬 줄 몰랐습니다. 선조들의 경우를 반면교사 삼지 못했습니다. 끝내 사람은 배움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마음의 포피를 자르라

 

유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유다는 결국 멸망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서 완전히 희망을 빼앗아가지 않았습니다. 본문 말미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온 땅을 황폐하게는 하여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27) 물론 몇몇 학자들은 해당 구절이 유다 백성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후대 사람들이 덧붙인 말씀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예레미야의 요청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볼 것을 촉구합니다. <예레미야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책입니다. 너무 무거워지진 말되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현재 나의 믿음이 어떠한지 돌아보는 날이 선 책으로 삼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러 구절이 등장했지만 그 가운데 “마음의 포피를 자르라”는 4절의 말씀을 특별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마음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그런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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