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 Note] 산티아고에서 만난 마음의 길

2017. 7. 16. 12:46Note

20170716 쓰임교회 주일설교

 

산티아고에서 만난 마음의 길

 

<마태복음 13장 1-9절>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바닷가에 앉으셨다.

2. 많은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물가에 서 있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여러 가지 일을 말씀하셨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5.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났지만,

6.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버렸다.

7. 또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았다.

8.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육십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Lumix gx9 / 14mm]

오랜만에 드리는 인사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이 인사를 다시 드리기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더위가 막 다가올 때쯤 떠났는데 무더위가 한창일 때 다시 돌아왔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했던 순례가 스페인과 독일, 체코, 이탈리아를 거쳐 끝을 맺었습니다. 그야말로 이번 여정은 ‘선택’의 반복이었습니다. 모든 여정에 선택이 필요했고 그 선택 속에서 만족과 후회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나 또 나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잘 지켜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모든 선택이 완벽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그 선택의 순간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의 동행을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달 동안 말씀묵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생활을 착실히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지냈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이 시간들을 달리표현하자면 무언가 준비해야 한다는 어떠한 강박을 내려놓았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하고 나서 며칠이 흘렀을 때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께 집중하게 됐습니다. 물론 한 순간의 집중이 끝까지 지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은 끊임없이 발견해야 하는 샘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시간의 반복 속에서 신분으로서의 목사는 없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이들과의 인연 속에서 저의 역할을 찾아내느라 꽤나 분주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나이, 성별, 신분, 직업 등의 거품이 주인을 잃고 인간 본질의 모습과 모습이 만났습니다. 저에게 산티아고는 그런 체험의 현장이었습니다. 

 

모든 순간은 선택이었다. 

 

까미노를 걷는 내내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쉴 때면 빠뜨리지 않고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에 남겼습니다. 지금 그것을 다시 읽어보자니 손과 발이 사라질 거 같아 힘겨웠지만 그래도 유익한 점 하나는 그때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33일의 산티아고 순례와 3주간의 대륙 간 여행을 모두 마치며 페이스북에 썼던 글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어드릴까 합니다. 

 

훌쩍 떠나왔다가 슬며시 돌아간다. 삶이라는 문장에 의문부호가 붙기 시작하면서 모든 시간이 축복이자 아픔임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 이번 여정에 대해 "무슨 답이라도 찾았습니까? 아니면 무엇이라도 보았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해 줄 말이 없다. "아니요.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 때문에 후회했고 때론 만족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할 것 없는 그 시간들 속에서 깨달은 것 하나는 어떤 선택이든 그 선택의 순간 속에 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 하나 느끼고 갑니다." 

 

나처럼 훌쩍 산티아고로 떠난 파울로 코엘료는 순례 중 이런 말을 듣는다. "공격을 하거나 도망을 가는 것도 싸움의 일부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다만 싸움에 속하지 않는 것은, 두려움에 마비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도망만이 유일한 패배인 줄 알았다. 패배에 속하지 않은 '진짜 패배'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다시 옴짝달싹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럴 때 이것이 패배의 한 모습임을 자각하고 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천천히 넘어서야 할 것이다. 

 

순례길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것에서부터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또 걷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모든 순간 속에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선택이었다고 판단된 적도 있었고 또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가진 마음의 밭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은 예수께서 무리에게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는 부분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자주 혹은 많이 들어보신 말씀일 겁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향해 이런 이야기를 하죠.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사람이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는데 그 씨는 새들이 와서 쪼아 먹어 새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또 어떤 씨는 돌짝밭에 떨어졌는데 흙이 깊지 않아 싹이 나긴 했으나 해가 뜨자마자 뿌리가 깊게 자라지 못해 그만 말라버렸습니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의 기운 때문에 씨앗이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드시고 나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는 말로 말씀을 마치십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밭은 우리의 마음을 가리키고 씨 뿌리는 자는 주님을 가리킨다고 말입니다. 그 비유의 해석은 옳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밭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의 마음이고 씨 뿌리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 해석도 옳습니다. 결국 이 두 가지의 해석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한 사람의 마음, 한 존재의 마음이 때로는 길 변두리와 같은 마음, 때로는 돌짝밭 같은 마음, 때로는 가시덤불 같은 마음, 때론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다는 말 아닐까요? 오죽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만큼 사람의 마음은 한 곳에 고정되어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유동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택 속에 함께 계신 주님

 

제가 말씀 초반에 산티아고 순례는 매 순간 ‘선택’이었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순간 속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때론 갈피를 잡지 못해 요동치는 마음을 경험했고 때론 또렷해진 마음의 판단으로 적절한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 때문에 매우 만족했었고 또 어떤 선택 때문에 매우 후회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제 마음이 무엇을 느끼고 저 스스로가 어떤 판단을 한다 하더라도 모든 순간 속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로 설명이 될까요? 주님이라는 중심축이 제 존재의 심연에 뿌리 박혀 있고 그 중심축을 중심으로 사람의 마음이 요동칠 뿐이다? 그러다 마음의 파도가 잠잠해지면 심연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길가와 같은 마음이었다가 돌짝밭 같은 마음이었다가 가시덤불 같은 마음이었다가 때로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성숙’해진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주님 앞에 이 요동침의 보폭이 줄어들어 잠잠히 그분과 함께 머물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단번에 이렇게 되긴 어렵습니다. 시행착오와 세월의 무게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낸다고 하여 저절로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기억하며 바쁜 일상 중에서도 그 분 앞에 멈춰 서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성령의 가르침이자 안내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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