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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하나님의 초상, 하나님의 글자

20171022 쓰임교회 주일설교

 

하나님의 초상, 하나님의 글자

 

<마태복음 22장 15-22절>

 

15. 그 때에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말로 트집을 잡아서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할까 의논하였다.

16. 그런 다음에, 그들은 자기네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17. 그러니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18. 예수께서 그들의 간악한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 달라." 그들은 데나리온 한 닢을 예수께 가져다 드렸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21. 그들이 대답하였다. "황제의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22.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탄복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남겨 두고 떠나갔다.

 

 

질문은 위장한 대답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귀를 보았습니다. 유대인 학자이자 경건한 랍비였던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1907-1972)이 쓴 책 <누가 사람이냐>에 나온 대목입니다. 그는 사람이 물음을 묻는 것은 보다 더 알고자 하는 마음에 견주어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무심한 듯 툭 던집니다. 

 

“하나의 질문이 위장한 대답임을 아는 것이 최소한의 지혜이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누가 사람이냐>, 한국기독교연구소, p.21) 

 

우리는 흔히 질문에 적절히 답해야 무엇인가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수아 헤셸은 질문하는 것 자체가 위장한 대답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질문은 이미 좋은 답을 찾았음을 또는 좋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들어섰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설교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도성이 짙은 질문을 지혜로운 질문으로 받아치셨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질문은 답의 방향성을 잘 알려주는 법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그럼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바로 이전에는 예수께서 하늘나라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지에 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그의 말씀이 워낙 권위가 있고 대단하여 당시 기득권이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헤롯 안티파스 세력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습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는 꼭 이런 일들이 발생하죠.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관한 다양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고 그런 대상을 깎아내리기에 바빠지는 것이 연약한 우리 사람의 심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예수께서도 유대 땅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권세 잡은 자들은 그들의 입자가 좁아질 것을 염려하여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그를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제자들을, 헤롯은 자신의 당원들을 예수께 보내어 한 가지 덫을 놓기로 합니다. 어떤 식으로 답해도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질문을 생각해 냅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16-17)” 그들은 예수의 대단함을 인정하는 듯 위장하여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그들의 달콤한 칭찬에 담긴 날카로운 송곳을 보아냅니다. 그들의 인정은 진짜 인정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했던 베드로의 대답과는 전혀 다른 대답입니다. 베드로가 마음을 담아 고백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답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고백입니다. 입발림의 말임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의중을 알았던 예수는 그들의 질문이 가진 덫을 알고 계셨음에도 피하지 않고 질문을 받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세금으로 내는 돈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데나리온 한 닢을 집어든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묻습니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20)” 질문을 받은 바리새파 일행은 당연하다는 듯 “황제의 것입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들의 대답에 재차 답하는 예수의 답변 속에 그의 지혜와 현명함이 드러납니다. 예수는 간결하게 답합니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21).” 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탄복하여 예수를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보다 이해력이 부족한지 몰라도 예수의 이 말씀이 가진 함의를 끄집어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바로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이 가진 뜻을 알아채기 쉬우셨습니까? 

 

덫을 놓는 질문

 

사실 바리새파 무리가 했던 그 질문은 어떤 식으로 답해도 덫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자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죠. 예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누군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두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저 질문에 옳다고 대답했다면 바리새파 제자들은 어떤 꼬투리를 잡겠습니까? 하나님보다 황제를 우위에 둔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에 종교계의 기득권층인 그들의 눈에 우리는 불온한 존재로 보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 질문에 옳지 않다고 대답하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헤롯 당원들 눈에 우리는 황제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더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것으로 비춰지기에 그들 눈에 우리는 불온한 존재로 보일 것입니다. 예수는 그들이 만들어 논 덫에 어떤 식으로 답하든 걸려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간악한 수를 알았던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문을 있는 그대로 받지 않으시고 우문현답(愚問賢答)을 하셨죠.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대답에 담긴 두 가지 함의(含意)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두고 좀 생각해 봤습니다. 예수께서는 과연 무슨 뜻을 전하려고 하셨던 걸까요? 우리보고 대체 어떤 선택을 하라는 것일까요? 

 

예수의 대답을 두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한 가지 생각은 질문에 관한 답은 각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결국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할지 아니면 하나님께 드려야 할지는 누군가 내려준 답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옳음을 말씀하신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덫을 놓으려는 이들의 질문을 단순히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각 사람에게 판단의 무게를 더 실어주며 그들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예수의 이 답변은 각자의 판단의 중요함에 관해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한 가지는 예수의 대답을 이렇게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라는 이 대답은 돈을 원하는 자에게는 돈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다른 걸 원하는 자에게는 돈 아닌 그 다른 것으로 채워줘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쉽게 말해 이런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데나리온에 그려진 초상과 쓰여 있는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덫을 놓으려는 무리는 황제의 초상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계속 반복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예수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주라고 대답합니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예수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고자 하셨던 것일까요? 

 

‘물질’이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해 ‘돈’이라고 하는 것에 새겨져 있는 건 황제입니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흔적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는 곧 황제로부터 말미암은 것은 황제에게 돌아가야 함이 마땅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을 좀 뒤집어 본다면 물질, 돈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물질, 돈이 아니라 그분의 것은 따로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죠. 데나리온 어디에도 하나님을 나타내는 초상과 하나님을 나타내는 글자는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예수의 우문현답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의 덫을 놓으려는 질문을 통해 오히려 복음의 본질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황제와 하나님 두 존재 사이에서 선택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황제’는 사실 사람이 중심인 사회가 아닌 맘몬(mammon), 힘이 지배하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 평화가 깃든 세상을 가리킵니다. 

 

사실 이렇게 구분 지어놓으면 우리의 선택은 훨씬 쉬운 것 같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이 두 가지 뒤엉켜있습니다. 그래서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나도 모르는 곳에서 불평등과 차별, 부정의의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혹은 이 땅의 생명을 죽이는 일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 묻고 자주 세상의 논리를 의심해야 합니다. 선택하고 돌이키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과 말씀 앞에 우리가 가는 길을 자주 비춰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공의와 정의, 평화의 세상

 

그리고 예수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황제가 원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데나리온에 그려진 초상과 글자 어디에도 하나님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과 무관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럼 하나님의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사야 65장 25절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는 곳, 이런 세상을 함께 꿈꾸는 것 아닐까요? 이런 세상을 하나님과 함께 꿈꾸기 위해서는 우리를 잡아당기는 인력이 무엇인지 자주 물어야 합니다. 사람이 물건으로 대체된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소중히 여김 받는 세상, 물질의 손해가 있더라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세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 아닐까요? 

 

하지만 이러한 세상은 단번에 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라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 이루지 못한 일을 계속해 나가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 일은 크기와 무관합니다. 하나님 앞에 작고 보잘것없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소중한 하나님이 일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내가 사는 작은 삶의 현장에서부터 하나님의 초상, 하나님의 글자를 새겨 나가야 합니다. 더디더라도 지금 그 일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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