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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속한 듯 속하지 않은

20150517 쓰임교회 예배 설교

 

속한 듯 속하지 않은

 

<요한복음 17장 14-16절>

 

14.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Lumix gx9 / 20mm]

이른 아침에 받은 전화 한통

 

오늘 주님 전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몇 해 전 일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가끔 지나며 목례 정도를 나누던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전화한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목사님이 속한 지방은 종로지방이었는데, 종로지방에서는 매 학기마다 미션스쿨에 들어가 종교수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겨 수업진행이 어려워 친한 목사님께 문의를 했더니 저를 소개시켜주셨다며 저에게 종교수업 한 시간 진행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잠이 덜 깬 상태긴 했지만 아무튼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부랴부랴 이 책 저 책을 가방에 담아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 학교는 배화여고였습니다. 당시 저는 중구용산지방에 속해 있었기에 저를 아는 지인 목회자분들은 종로지방 모임에 나타난 저를 보며 살짝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물론 부탁을 받아서 오긴 했지만 저 또한 낯설고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업무 면에서 본다면 저는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속한 사람이었지만, 지방구분으로 본다면 저는 그곳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수업은 아주 거뜬히(?) 잘 마치고 나왔지만 당시를 돌아보면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이었는지 알쏭달쏭했던 것 같습니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여러분, 사람에게 ‘소속감’은 참 중요합니다. 소속감 때문에 어떤 일도 잘 감당할 수 있고, 책임감 있게 그 일을 마무리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몸이 하나인 사람이지만, 다양한 곳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신분과 성별, 나이, 관심 등에 따라 다양한 곳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 직장이라는 곳에도 속해 있고, 자신의 취미에 따라 다양한 동호회에 속해 있기도 하며, 군 생활을 하는 청년이라면 군대에 속해 있기도 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학교에 속해 있기도 합니다. 

 

박총이라는 분은 이 소속감, 귀속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은 어딘가에 속해 있고 귀속감은 인간에게 필수적이다. 인종, 민족, 국가, 지역, 종교, 학교, 회사, 동호회, 사용자 모임, 자주 가는 가게, 응원하는 축구팀, 심지어 진달래보다 개나리를 더 좋아하는 사람, 카레와 팥빙수를 비비지 않고 먹는 사람까지…” 

 

박총, 〈내 삶을 바꾼 한 구절〉, 포이에마, p.104

 

이토록 우리는 다양한 곳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 나온 우리는 한 분에게 속해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그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바로 ‘빛 되신 주님’이십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게 소속감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주님께 속한 그 소속감으로 형성돼야 합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예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요한복음 17장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감리교 교회력에 따르면 ‘승천주일’이기도 합니다. 승천주일이라 함은 예수께서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기 전, 그분이 하셨던 말씀을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세워진 날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께서는 어떤 당부의 말씀을 하셨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몇 가지의 말씀을 하셨겠지만,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의 소속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16).”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발 딛고 사셨지만, 자신의 소속은 이 세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자신은 하늘에 귀속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대충 살지 않으셨습니다. 일상을 성실히 살며 울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삶의 토대는 하늘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 또한 자신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듯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재속수행탐문공동체

 

저는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기도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모임의 이름은 ‘재속수행탐문공동체’입니다. 말이 좀 어렵긴 합니다만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 속해 있지만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기보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따르며 살아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자본을 거스르는 또 다른 가치가 있음을 삶에서 드러내 보이기 위한 모임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행동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지시하고 안내하는 길로 무작정 따라가지 않겠다는 느긋하고 평범한 저항인 것입니다. 이 모임에서 우리는 세상에 속해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았을 때 오는 어려움

 

하지만 우리는 잘 압니다. 세상을 거스르려 할 때에 오는 핍박과 어려움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14).” 그리고 이어 예수께서는 악한 자들에게서 그들을 지켜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흔하게 말해오던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의 전복적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복’보다는 ‘미움’이 따라옵니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날선 시선들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복의 의미는 다르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

 

그러나 너무 염려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항상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라면 그 누가 믿음을 갖고 싶어 하겠습니까? 15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그들을 지켜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당신의 빛을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환난을 피할 순 없지만 이미 세상을 이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롭지 않은 것은 이 길을 함께 걷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 진리의 빛을 따라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속한 듯 속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그런 존재이지만, 세상이 주는 눈먼 진리 때문에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진리의 빛을 발견한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몸은 지금 이곳에 있지만, 그의 존재는 하늘에 닿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땅에서의 삶을 등한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우리가 가는 길의 방향을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올해는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여러 개의 태풍이 온다고 합니다. 세상이 태풍으로 휩싸여 혼란스러워도 우리의 내면은 주님이 주신 빛으로 차분함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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