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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경계선이 없는 사랑

20150510 쓰임교회 예배 설교 

 

경계선이 없는 사랑

 

<사도행전 10:44-48> 

 

44.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에,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리셨다.
45. 할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게 된 사람으로서 베드로와 함께 온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부어 주신 사실에 놀랐다. 

46. 그들은, 이방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47. "이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8. 그런 다음에, 그는 그들에게 명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였다.

 

[Lumix gx9 / 14mm]

5월의 어버이 주일

 

주님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두 번째로 맞는 ‘가족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요즘 여러분들은 가족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계신지요? 물론 상황에 따라 가족을 만나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고향이 주는 그 따스함과 안정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던 고향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그분들이 주셨던 사랑 때문이겠지요.

 

부모의 사랑은

 

자식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저는 그분들의 사랑을 ‘경계선이 없는 사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안타깝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사회가 참 사람됨을 상실해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시대를 뛰어넘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 듯합니다. 자녀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자녀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자녀의 성적이 어떠하든지 부모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방식에 문제가 있을 진 몰라도 사랑하는 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랑에 경계선이 생길 때마다 부모들은 그 경계선을 마음의 온기로 녹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베드로의 황홀경

 

오늘 우리가 함께 들었던 사도행전 10장 말씀을 보면 성령의 선물이 이방사람들과 유대인들에게 함께 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기도 중에 황홀경에 빠집니다(10). 그는 네 귀퉁이에 끈이 달려있는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안에는 네 발 짐승들과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습니다(12). 이것들은 구약 레위기(레11:1-47)와 신명기(신14:3-21)에서 먹기를 금지한 율법에 있는 조항들입니다. 그런데 그 때 이 음식을 먹으라는 음성이 들립니다(13). 그러나 율법을 잘 알고 있었던 베드로는 지금까지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은 적이 없다며 먹기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그러자 하늘의 음성은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15).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사라졌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임한 성령

 

베드로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자기가 본 환상이 무슨 뜻일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그를 데리러 왔고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였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것(34-35)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경계선이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평화를 전하셨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주셨는데 그는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하시고 마귀에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음을, 그리고 우리가 그 사건의 증인임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건은 바로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곳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사실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지 못했다고 여겨졌던 이방인들이 방언으로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46). 하나님의 백성의 증표였던 방언과 찬양을 그들도 보여줬습니다. 이 상황을 본 베드로는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47-48).

 

구약의 전통을 새롭게 하는 예수

 

우리는 이 상황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이 쓰여 질 당시만 해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는 몹시 뚜렷했습니다. 그 경계선을 그은 것은 바로 구약의 전통이었습니다. 정함과 부정함을 나누던 구약의 전통이 사람 사이를 계속해서 가르고 있었고 이는 우월한 민족과 열등한 민족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율법의 핵심이 인간들의 욕망의 편의대로 변질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변질되어 가던 구약의 전통을 바로 세우기 위해, 새롭게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그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경계를 없애고 강함과 약함 사이에 있는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예수에게는 경계선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방식에 잘 나타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서두에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경계선이 없는 사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꽃자리라는 출판사블로그에 실린 김민웅 교수의 글을 읽다가 이와 같은 부모의 사랑을 묘사하는 글귀를 보았습니다. 한번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어버이는 겨울입니다. 지난 세월의 그 많은 고역과 어려움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영혼과 몸 안에서 우리의 봄을 태어나게 해 주신 분들입니다. 봄은 자기가 홀로 태어나 자기 힘으로 성장한 듯이 착각하기도 합니다. (중략) 늙으신 부모님들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마치 헐벗은 나무처럼 서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쓸쓸함이나 아쉬움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한 기쁨의 증거입니다. 자신은 세상의 모든 찬바람을 맞고 서서 봄의 시간을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주역인 봄은 그래서 지난 계절을 망각해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 봄이 진정한 봄이 될 자격이 있을 겁니다.”

 

김민웅 교수는 어버이의 사랑을 ‘겨울’에 비유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혹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지난 세월의 많은 고역과 어려움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영혼과 ‘나와 너’라는 봄을 태어나게 해 주신 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 혹독한 겨울의 계절을 보내고 봄을 잉태했습니다. 이런 겨울의 잠재적인 수고를 모르고 봄은 스스로 성장한 듯 착각하기도 합니다. 겨울의 수고가 없었으면 봄은 오지 않았을 겁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부모는 마치 헐벗은 나무처럼 덩그러니 서 계십니다. 하지만 이는 쓸쓸함이나 아쉬움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한 기쁨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참 봄은 겨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겨울의 수고와 정성이 없었더라면 봄은 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자식이라 해도 스스로 된 자는 없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의 경계선은 지워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일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따른다고 한다면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산다는 것은 그가 보여주고 알려준 가르침을 삶에서 번역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그런 예수와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주위에 나뉜 것들을 모아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만난 예수는 그런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할 때 경계가 없듯이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세상의 나뉜 것들을 다시 합하기를 원하십니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기준을 새롭게 하길 원하십니다. 부한 자와 가난한 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가르침을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보수적인 자와 급진적인 자, 마음에 드는 자와 마음에 들지 않는 자.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이러한 경계선을 허물어야 합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는 주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 노래가 필요한 때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라(시98:1)’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 노래’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노랫말이 아니라 하늘의 빛이 알려주는 노랫말로 노래해야 합니다.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익숙함이 아니라 낯섦으로 다가오시기도 합니다.

 

어버이 주일인 오늘, 부모의 사랑이 모든 경계를 허무는 사랑이듯이 여러분들도 계속해서 마음과 생각 속에 그어지는 경계선들을 지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그어왔던 선이라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곳에서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그곳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한 주간 주님과 함께 사랑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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