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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떠난 분에 이어 오신 분

20180520 쓰임교회 주일설교

 

떠난 분에 이어 오신 분

 

<요한복음 16장 4-15절>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여 두는 것은, 그들이 그러한 일들을 행하는 때가 올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에게 말한 사실을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다. 또 내가 이 말을 처음에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서 아무도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고, 

6. 도리어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 찼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8.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9. 죄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10. 의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나를 더 이상 못 볼 것이기 때문이요, 

11. 심판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12. 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Lumix gx9 / 14mm]

가장 긴 교회력 ‘성령강림절’

 

주님의 평화가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저희는 부활절을 포함한 일곱 번의 부활 절기를 보내고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았습니다. 성령강림절은 교회력 가운데 가장 긴 절기입니다. 5월인 오늘부터 11월 마지막 주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27주 동안 이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교회력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은 성령강림절은 매우 중요한 절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평소 성령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성령은 우리의 일상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이 시간 성령에 관해 모든 걸 이야기할 순 없지만 성경의 각 구절을 통해 또 성령이 어떤 분인지 안내해 주는 대목들을 통해 그분에 관해 알아볼까 합니다.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은 평소 우리가 알고 있던 성령의 정의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잘 알려진 정의에 관해 전합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는 곧 떠나야 함을 이야기하는데 자신의 뒤를 이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전할 자가 올 것이라 예견합니다. 그 자는 ‘보혜사’라고 불리는데 보혜사는 곧 ‘진리의 영’(13)이기에 사람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와 동일 어입니다. 그런데 이 ‘파라클레토스’라는 말 자체가 협조자, 보호자, 상담자, 돕는 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로마서 8장에 소개된 성령의 역할은 이미 성령이라는 말속에 담긴 의미의 반복적 풀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롬 8:26-27).”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돕고,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의 뜻이 곧 로마서에 소개된 성령의 역할과 동일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는 왜 떠나야만 했을까?

 

여러분,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7).”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마치 예수께서는 떠날 수밖에 없음을, ‘곧 떠나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보혜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후 아버지 우편에 앉아 있는 그 ‘부재의 상황’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저자가 만들어낸 인위적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기보다는 각 구절마다 성령의 역할이 뚜렷이 정해져 있는 걸로 보아 성령이 예수의 부재에 때문에 만들어낸 개념은 아닌 듯합니다. 예수께서는 거룩한 영이신 성령의 역할을 명확하게 알고 계시고 또 그에 관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께서 떠나야 한다는 건 반드시 그래야 할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럼 우리는 성령과 함께 지내며 성령으로부터 배워야 할 어떤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본인이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것인데, 이 보혜사는 예수가 떠나지 않으면 오지 않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죄, 의, 심판에 관해 알려주시는 분

 

다시 한번 질문해 봅니다. 예수께서는 왜 자신이 떠나야 했고 떠난 그 자리에 보혜사 성령이 와야 한다고 했을까요? 예수께서는 7절 후반부에 성령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 역할은 서두에도 한번 말씀드렸듯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죄’가 있음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의’가 필요함은 우리가 더 이상 예수를 볼 수 없기 때문이고 ‘심판’을 경계해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 즉, 힘으로 권세를 잡은 자들이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할이라고 하시며 예수 자신이 떠나고 나면 이 사실들을 알려줄 ‘보혜사’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제자들을 향해 더 해줄 말이 있지만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거라며 앞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차근히 알려주실 분이 바로 ‘보혜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께서 평생 우리 곁에 계시면서 이러한 사실을 낱낱이 알려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그게 가장 정확한 의미 전달과 또 우리가 실수 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우리는 언제 잘 깨닫게 됩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전의 기억들을 한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깨달을 때 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깨닫게 되었던가요? 

 

저는 올 초부터 볼링을 배우고 있습니다. 두 분의 선생님께 볼링 레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선생님의 교육 방법이 참 다릅니다. 한 선생님은 매번 볼을 굴릴 때마다 볼링의 3요소인 리듬, 타이밍, 밸런스를 지적해 주며 실수를 수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다른 한 선생님은 한 번의 가르침을 주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스스로 거치게 하십니다. 물론 두 교육법 모두 의미가 있었습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래도 거부감이나 저항감 없이 오래 기억에 남은 교육 방법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찾아가는 교육 방법이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니던가요? 부모가 자녀 곁에 꼭 붙어 실수와 잘못을 낱낱이 파헤쳐가며 지적을 하면 아이들은 감사하기보다 오히려 불만을 갖거나 불안해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아이들 스스로 발견할 기쁨을 부모가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의 실수를 너그러이 이해하며 여유를 갖고 대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죠. 사람은 누군가의 말로 바뀌기 어렵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직접적인 말과 행위로 사람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공간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사건과 사람 사이의 ‘공간’ 그리고 깨달음이 올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침묵이 깃든 기도나 성경 묵상, 책 읽기나 타인이 경험한 일로 더 잘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저는 예수께서 삶을 관통하는 이러한 진실을 알고 계셨다고 봅니다. 자신이 제자들 곁에 평생 머물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지 세세히 알려주는 건 좋은 교육 방법 혹은 깊은 깨달음의 방식이 아님을 아셨다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던 ‘아인슈타인’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죠. 

 

“교육은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정신의 훈련이다.”

Education is not the learning of facts But the training of mind to think.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교육 방법은 ‘사실’을 배우는 것보다 이것이 왜 옳고 저것이 왜 그른지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는 삶의 ‘지혜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삶을 관통하는 진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 성스러운 힘, 정신적인 차원

 

예수께서는 자신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실을 전하는 성령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침묵>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그의 책 <나의 하느님은>에서 성령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성령이라는 것도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힘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성령이라고 하면 알기 어려운데, 하느님의 힘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성스러운 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작용하여 교류하는 성스러운 힘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보다 정신적인 차원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주는 힘입니다.” 

 

(엔도 슈사쿠, <나의 하느님은>, 성바오로, p.186-187)

 

성령은 곧 보혜사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의미를 확장시켜 보자면 성령은 곧 ‘하나님의 힘’ 혹은 ‘성스러운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힘은 육체적인 작용이라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정신적인 작용’으로 하나님께 이끄는 힘인 것입니다. 

 

예수가 떠난 자리를 채우는 성령

 

신학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두고 다양한 생각을 해봅니다. 십자가는 예수가 원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죽음이었을까 아니면 이 죽음은 곧 하나님의 큰 계획이었나를 두고 말입니다. 저 또한 예수의 죽음은 필연이었는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어떠한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영은 부활하여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하늘의 뜻을 알려주며 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의 죽음은 필연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필연적인 죽음의 의미가 오늘 본문에 나타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성령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살았던 삶, 아버지께서 원하신 사랑의 본질을 일상의 삶에서 깨닫게 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강요의 방식이 아니고 서로 간에 언어로 인한 소통의 한계를 뛰어넘고(행 2:4) 우리가 약하기에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께 간구해 주시는(롬 8:26) 분을 통해 이 땅에 하늘 뜻을 펼치길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나답게,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맞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의 영(13)을 보내셨고 이 영은 우리를 세상이 만든 기준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리게 도울 것입니다. 거룩한 영이자 성스러운 힘의 도움을 받아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성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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