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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시대를 분별한 사람들

20180204 쓰임교회 주일설교 

 

시대를 분별한 사람들 

 

<마가복음 1장 29-39절> 

 

29.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30.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정을 예수께 말씀드렸다. 

3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33. 그리고 온 동네 사람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그는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다. 예수께서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37. 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39.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Lumix gx9 / 14mm]

차별과 혐오를 넘어 

 

주님의 평화가 이곳에 오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며칠 전, 어머님께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게 뭔지 봐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내용은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와 관련된 서명 운동이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시대의 위기를 느끼고 경각심을 갖는 것은 매우 좋은 시도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가지 안타까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부정하는 시도 반대, 한미동맹 위협하는 정책 반대, 친동성애/동성혼 법제화 반대, 이슬람 반대 등 모든 내용이 서로를 나누고 가르는 운동이었습니다. 물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일반 단체들이 이러한 구호를 외쳐도 우려가 될 일인데, 기독교가 앞장서서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르고 쪼개는 일에 앞장선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뉜 것을 연결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러셨듯이 우리도 분열된 것들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가 된다는 말은 전체주의와 같은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란 하나님의 창조성을 중심으로 각 사람이 지닌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차별과 혐오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가르치는 일과 귀신 내쫓는 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에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보는 이의 삶이 기록되어 있죠. 그 삶은 ‘예수의 삶’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사회로부터 혹은 종교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으셨습니다. 그는 변질되어버린 하나님의 뜻을 알아채고 다시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셨습니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예수의 행적에 관해 아주 간명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을 전합니다. 1장을 보면 그가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 예언의 성취임을 밝히고 이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의 중요성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예수는 함께 일할 동행을 구했고 그들과 함께 본격적인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했습니까? ‘가르치는 일’과 ‘귀신을 내쫓는 일’을 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었고 또 새로웠습니다. 그에 관한 소문은 갈릴리뿐만 아니라 갈릴리 주위에도 퍼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시몬의 장모와 예수의 행동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나와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마침’ 그 집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예수께서는 시몬의 집에 일 때문이 아니라 초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몬의 집에 도착해보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고 그녀의 열병은 곧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동네 사람들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시몬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예수께서는 갖가지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치시고 또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일러 귀신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은 그의 아들 예수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어 모든 걸 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 부분은 당시 기득권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입니다. 모든 극단은 서로 닿아있기 마련이죠. 사람을 혼미케 하는 한 극단인 ‘귀신’은 하나님의 참 ‘사랑’의 반대 극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일을 마친 예수께서는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해 외딴 곳으로 향합니다. 예수도 쉼이 필요했고 또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기도로 자신이 가는 길을 톺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곁에 머문 예수 

 

그렇게 새벽 미명, 기도하고 계신 예수를 찾아 시몬과 그 일행은 왔고 예수께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아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자는 사람들 곁에 머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이렇게 말하죠.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이 말을 마친 예수는 온 갈릴리와 회당을 두루 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존재의 의미와 가야 할 길 

 

여러분,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예수의 행적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가 하신 일은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의 행적에 관해 증언하는 마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연약한 자들의 소외와 시대의 아픔을 볼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갖고 있던 바로 이 시선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을 닮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시 종교체계는 이미 ‘고인 물’이 되어버렸고 그곳에서는 악취가 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변질되어버린 물을 알아보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역할을 과감히 행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초반이 증언하고 있는 ‘요한을 통한 세례’가 예수의 눈을 밝게 했습니다. 세례를 받은 예수는 하늘로부터 한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내면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고요하고도 잔잔한 이 음성이 그의 존재의 의미를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영원히 변치 않는 든든한 후원자의 응원을 듣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후 성령이 보낸 ‘광야’에서 예수는 그의 갈 길을 깨달았습니다. 40일간 광야에서 받은 사탄의 유혹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참뜻을 분별했습니다. ‘광야’ 혹은 ‘사막’은 하나님의 ‘침묵의 소리’를 듣는 곳입니다. 페터 제발트도 이런 말을 하죠. “사막에서는 물음이 일어나고 답이 뒤따른다. 그 답이란 하느님은 침묵 속에, 바람의 세밀한 속삼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의 예언자들도 바로 이것을 들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침묵의 소리'를.” (페터 제발트,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문학의숲, p.62-63) 

 

그곳에서 예수는 육체의 한계와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혹독한 ‘고독’ 속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예수께서 ‘광야’에서 이러한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병들고 귀신 들린 건 ‘죄’의 결과가 아니다. 

 

결국 예수께서는 이러한 시간들을 경유해 ‘시대를 분별하는 시선’을 획득하게 됩니다. 변질되어 버린 성전체제 속,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 굳어버린 종교체계 등을 보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 속 균열을 내셨습니다. 든든한 하나님의 후원을 힘입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해 주시죠. 반복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당시 ‘병 들림’과 ‘귀신 들림’은 ‘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습니다. 죄를 지었기에, 죄가 깊어 그가 아프고 또 귀신이 들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판단은 주로 기득권들의 판단이었습니다. 

 

당시에 귀신 들렸다는 것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갖가지 질환을 앓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대의 시선으로 예수가 살던 시대를 바라봐선 안 됩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의학이 발달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모르는 것이 정말 많은 시대였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신이 주는 죄로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정신질환을 포함한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이 때문에 그들을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병 들린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에게 유별난 죄가 있지 않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낯설게 바라보지 않고 친숙하게 대합니다. 이러한 예수의 마음이 그의 태도에 드러납니다. 그는 아픈 자들에게 특별한 조치를 취한 게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는 귀신에게 그 사람의 몸에서 나가라고 그저 명령(1:25)하고 또 묵묵히 손을 잡아주었고(1:31) 손을 내밀어 아픈 몸을 만져주었습니다(1:41). 수년 전부터 흥행하는 갖가지 성령집회에서처럼 목회자들이 특별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아픈 이들의 몸과 마음에 깊이 접속했습니다. 그들의 상황에 깊은 공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을 치유한 것입니다. 

 

내가 소중하듯 모든 이가 소중함을 

 

사랑하는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그 뜻을 직접 몸으로 살아낸 분이십니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읽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의 그늘 아래 있는 자들을 그늘에서부터 끌어내셨습니다. 이런 예수의 태도가 성전체제의 꼭대기에 있던 기득권들에게는 눈의 가시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위대함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요청 위에 섰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너는 무엇을 보고 있냐고 묻고 계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한 존재이듯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날이 다시 추워졌습니다. 올 겨울의 마지막 추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추위 속, 주님께서 가신 길을 기억하며 또 마땅히 시대를 분별하여 곳곳에 온기를 퍼뜨리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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