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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정직하기에 옳다

20180715 쓰임교회 주일설교 

 

정직하기에 옳다 

 

<마가복음 6장 14-29절> 

 

14.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니, 헤롯 왕이 그 소문을 들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세례자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 때문에 그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고, 

15. 또 더러는 말하기를 "그는 엘리야다" 하고, 또 더러는 "옛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그런데 헤롯이 이런 소문을 듣고서 말하기를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살아났구나" 하였다. 

17. 헤롯은 요한을 잡아오게 하여서, 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헤롯이 자기와 형제간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헤롯이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므로, 

18. 요한이 헤롯에게 형제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19. 그래서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원한을 품고, 요한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그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고, 또 그의 말을 들으면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오히려 달게 들었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롯이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요인들을 청하여 놓고, 잔치를 베풀었는데, 

22.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서, 헤롯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왕이 소녀에게 말하였다. "네 소원을 말해 보아라. 내가 들어주마." 

23. 그리고 그 소녀에게 굳게 맹세하였다. "네가 원하는 것이면,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24. 소녀가 바깥으로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무엇을 달라고 청할까요?"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여라." 

25. 소녀는 급히 왕에게로 돌아와서 청하였다. "곧바로 서둘러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내게 주십시오." 

26.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한 것과 거기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소녀가 달라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27. 그래서 왕은 곧 호위병을 보내서,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호위병은 나가서,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서, 

28. 쟁반에 담아 소녀에게 주고,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무덤에 안장하였다. 

 

[Lumix gx9 / 20mm]

소크라테스와 예수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길 빕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넌센스라고 봐도 좋을까요? 힘이 센 사람? 덩치가 큰 사람?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방금 나열한 사람들도 무서운 사람 중 하나 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무서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 말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 무서운 게 아니라 흔들림이 없다는 기준에서 무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늘 흔들리기 마련이고 흔들리면서 점차 굳건해지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두 명의 인물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더 있을 수 있지만 제가 아는 인물은 두 명입니다. 

 

먼저 한 사람은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죽음의 길로 갈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무지를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그를 위험인물로 느낀 사람들, 주로 기득권의 사람들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지혜자 소크라테스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알았지만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입니다. 예수는 진리를 드러내고자, 진리인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죽음의 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로인해 그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핍박과 멸시를 받게 되지만 부활의 영광을 통해 그의 길이 하나님의 길이었음을 증명해내셨습니다. 

 

예수에 관한 소문 

 

왜 설교 서두부터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고 여쭈었냐하면, 이 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와 같이 흔들리다 넘어진 한 평범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헤롯’입니다. 정확히 말해,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 또는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 4~39)’입니다. 안디바와 안티파스는 동일인물입니다. 그는 간간이 성서에 이름을 드러내는데, 오늘은 예수의 소문을 듣는 가운데 등장합니다. 

 

물론 이 헤롯은 예수 또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물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살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평판과 인정에 따라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죠. 

 

예수에 관한 소문은 마을 곳곳에 퍼져 헤롯이 있는 성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적 행위와 놀라운 권위로 소문이 자자한 이 예수는 사람들에 의해 죽은 ‘세례요한’이 돌아왔다, ‘엘리야’다, ‘옛 예언자’ 중 한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이러한 소문을 듣고 자신의 방식대로 그가 누구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는 과거 자신이 한 짓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난 과오가 오늘 본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헤롯과 헤로디아의 마찰 

 

예수가 오기 전, 그의 앞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열심히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했고 결국 그를 두려워하는 세력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 중심에 헤롯 안티파스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동생인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Herodias)를 아내로 맞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요한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형제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그들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이야기를 듣고 헤롯이 격분한 것이 아니라 헤로디아가 요한에게 원한을 품게 됩니다. 그녀 또한 헤롯만큼 야망이 있고 평판이 중요한 인물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모욕을 준 요한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새로운 남편인 헤롯에 의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헤롯이 요한의 존재를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를 감옥에 가두긴 했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보호해 주었고 또 그의 말을 들으며 괴로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요한을 죽이고 싶다는 아내 헤로디아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소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어긴 신념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헤로디아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헤롯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잔치를 열었는데, 그곳엔 고관들과 천부장들, 갈릴리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요인)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며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헤롯은 소녀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합니다. 흥건하게 취한 그는 소녀가 원하는 것이면, 나라의 절반도 주겠다고 까지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름이 나오진 않지만 그 소녀의 이름은 살로메(Salome)입니다. 

 

기대에 부푼 소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밖에 있는 자신의 엄마 헤로디아에게 향합니다. 어떤 소원을 말하면 좋을지 소녀는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딸의 소원에 자신의 소원을 덧입혀 버립니다. 

 

소녀는 엄마의 소원이 곧 자신의 소원인양 헤롯에게 돌아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달라고 말했습니다. 헤롯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것이 헤로디아가 오래전부터 원했던 소원이었음을 알고 있었고 결국 자신이 계속 거부하며 미뤄왔던 요한의 심판을 진행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장 기분 좋은 자리에서 가장 불편한 판결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렸을 겁니다. 주위를 살펴보았고 자신이 소녀를 향해 했던 맹세와 이 일을 번복했을 시 사람들로부터 받게 될 질책 그리고 평판,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음을 생각했을 겁니다. 그동안 세례 요한을 신뢰하던 그 신뢰보다 자신의 입지가 더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요한이 의롭고 구별된 사람이며 그의 말에 담긴 진중함을 믿었지만 끝내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지 못합니다. 결국 헤롯은 호위병을 보내 요한의 목을 베어오게 했고 그의 머리를 담은 쟁반을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Salome receives the Head of Saint John the Baptist"

 

 

원치 않던 죽음의 심판관이 된 헤롯 

 

헤롯은 소녀를 향한 자신의 맹세 때문에 결국 요한을 죽음으로 내몹니다. 자신의 아내 헤로디아의 꾀에 넘어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헤로디아를 욕하며 손가락질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자를 향해 질책의 화살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헤롯에게 시선을 돌려볼까 합니다. 헤롯은 자신이 맹세한 곳에 있던 사람들과 소녀의 부탁으로 인해 결국 자신이 원치 않던 요한의 죽음을 자신의 주도하에 진행하고 맙니다. 

 

여러분, 그는 잘못이 있을까요? 그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까요?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잘못은 무엇일까요? 그의 잘못이 연약함이라고 본다면, 그 연약함은 어디서 드러난 것일까요? 

 

그는 힘이 없었습니다. 분봉왕에게 무슨 힘이 없냐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 힘은 부와 권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내면의 힘, 자기 자신과 직면할 용기가 없다는 점에서 그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켜낼 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할 용기, 진리와 마주하고 나서 그것을 사수할 배짱 같은 것이 헤롯에겐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 때문에 헤로디아의 속셈을 알면서도 그것을 허용합니다. 그는 자신이 요한을 지킴으로 잃게 될 명예와 권력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지켜냄으로 져야했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는 몹시 괴로워하긴 했지만 결국 소녀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동일한 씨앗이 심겨진 사람들 

 

여러분은 자신이 믿는 것을 끝까지 지켜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그것은 언제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주어지는 하늘의 보상은 무엇이었습니까? 뭔가를 잃기만 했던가요? 잃는 것이 있는 반면 얻는 것도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잃은 것은 잃어도 될 만한 것이었을 테고 얻은 것은 삶에서 중요한 본질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꾸 우리를 향해 믿음을 택하라고 말합니다. 믿고 그 믿음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을 끝까지 지켜내고 믿어낼 힘이 있을까요? 그것은 특별한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선물 같은 걸까요?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그런 걸까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출발점이 달라 현재 겉으로 드러난 상황은 모두 다를 지언 정, 우리 내면에는 동일한 씨앗이 심겨 있습니다. 싹트고자 하는 그 씨앗을 누가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며 물을 주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기에 형평의 하나님입니다. 

 

<이방인>의 뫼르소 

 

그럼 이러한 능력이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그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선택 할 수 있을까요? 

 

삶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합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부호를 붙여보는 겁니다. 

 

최근 모임에서 알베르 카뮈의 책 <이방인>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는 유희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일을 돕다가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런데 재판장 안에서도 그는 큰 뉘우침 없이 자신이 느낀 그대로의 진술만 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표류물로 여김 받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집요할 만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그만큼 정직합니다. 어둠이 없는 사람입니다. 카뮈는 한 인터뷰에서 이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생활의 변두리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외롭게, 관능적으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를 일종의 표류물과도 같이 

간주하고 싶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당한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 

 

그에게 일체의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뿌리가 깊은 정열이 

그에게 활력을 공급한다. 

절대에 대한, 진실에 대한 정열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직 소극적인 참으로 존재한다는 진실, 

느낀다는 진실이다. 

그러나 그 진실이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1955년 1월 8일 알베르 카뮈) ​ 

 

_ 알베르 카뮈, <이방인>, 민음사, p.141-142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붙잡길 

 

주인공 뫼르소는 흔히 말하듯 사람들의 상식선에서 행동하거나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느낀 만큼 표현하고 아는 만큼만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그는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사는 삶을 택함으로 진짜 자기를 잃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귀는 기울이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끝까지 지켜냅니다. 

 

어찌 제가 처음 말한 두 인물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예수와 소크라테스 말입니다. <이방인>의 주인공까지 합쳐 이 세 인물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헤롯과 달리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냅니다. 그리고 그 신념이란 허망하고 과격한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오는 것이기에 온화하되 힘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며 사신 분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되는 삶이라 여기시며 우리의 내면을 날마다 정직하게 들여다볼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상의 문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나는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혼란에 휩싸이기도 하고 어둠에 갇힌 듯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고 계시고 또 우리가 그곳에 하나님을 초대할 때 그분이 그 시간을 견딜힘을 주시고 그 시간을 경유해 감으로 내면이 단단하고 유연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위의 소음을 잠재우십시오.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이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붙잡고 신뢰할 만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익명의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평판의 소리를 가라앉게 놔두십시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더욱 또렷하게 들려올 것입니다. 부디 모든 상황에 용기를 내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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