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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주의의 본질은
타인을 억지로라도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구에 있습니다.
이웃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고 싶거나,
배우자의 행실을 고쳐주고 싶거나,
자식을 관리감독하고 싶거나
혹은 형제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 싶다는,
요컨대 타인을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는 게
광신주의의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아모스 오즈, <광신자 치유>, 세종서적, p.68-69
독서모임을 하다보면 내 생각도 맞고 당신의 생각도 맞다, 는 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될 때가 있다. 그러고 나면 서로가 어떤 낭만적 분위기에 휩싸여 애매한 위안을 공유한 채 모임이 마무리 된다.
그럴 때면 단전부터 어떤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고 누군가 말한 그 지당한 말씀에 의문 부호를 붙여 버린다. 그럼 갑분싸!
이런 날, 이런 식의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올 때면 내가 지나친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너무 들쑤셔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아무리 옳은 얘기도 직선의 말에 담기면 상대의 가슴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고 그럴 때면 내가 특정한 ‘옳음’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해진다.
광신자는 타인을 억지로라도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힌 사람을 얼컫는다 했는데, 강요 받기를 싫어하는 내가 누군가에게 옳다고 여겨지는 일을 강요한다는 게 참 우습기도 하다.
광신자가 되는 일과 질문을 던지는 자 사이의 경계가 가끔, 이렇게 흐릿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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