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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알베르게의 추억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내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 그는 그리스의 섬 몇 군데에서 잠시 살았는데, 지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인 크레타 섬에 있다. 하루키는 그리스인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리스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념이란 것을 배우게 된다. 전혀 해수욕을 할 수 없어도 목욕탕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도 호텔 주인이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므로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무라카미 하루키, 윤성원 옮김, <먼 북소리>, 문학사상, 2020, p.161) 그가 경험한 그리스 사람들은 좀 과할 만큼 여유로워서 여행자들이 굳이 배우고 싶지 않은(!) 체념하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가 유럽과 아시아 여행을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여행을 하며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와 호스텔, 알베르게들이 떠올랐다. 나 또한 하루키처럼 어느 추운 저녁에 온수가 나오지 않거나 온수가 찔끔 나오다 금방 그쳐 버린 경험을 했었는데 그게 정확히 언제, 어느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잊히지 않는 산티아고 알베르게 샤워실 에피소드가 있긴 하다.

남녀 공용 샤워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행히(!) 혼자 샤워 공간을 쓰고 있었고 열심히 샤워에 임하고 있었다. 저녁이었는지 밤이었는지 밖은 이미 어두운 상태였기에 샤워실의 조명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머리에 거품을 열심히 내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다. 캄캄하다. 뭐지, 싶다. 이제 씻기 시작했는데 뭔 일일까. 알고 보니 샤워실 조명은 센서로 작동하는 시스템이었고, 그 센서는 내가 샤워하는 부스에까지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부스 밖으로 손을 내밀고 팔을 들어도, 어떤 발버둥을 쳐도 센서의 범위에 내 몸뚱이는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쇼를 했다. 조금 씻다가 아무도 없는 것 같으면 센서 근처로 가서 불을 켜고 오고 또다시 그 일을 반복하고. 갑자기 왜 이날의 기억이 나는 건지.

어쩌다 보니, 하루키의 여행 이야기에 묵혀져 있던 지난 유럽 여행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추억으로라도 유럽에 좀 다녀와야겠다.


 

이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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