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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다

갑자기 전에 읽은 이승우 작가의 책 속 한 글귀가 생각났다. <사랑의 생애>에 나온 한 대목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겨냥한다. 더욱 겨냥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하는 사람은 하면서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있지만
하는 사람, 하면서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이승우, <사랑의 생애>, 위즈덤하우스, 2017, p.129

 

지난 시간을 돌아보다, 나는 누군가 건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며 살았나,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떼제에 계신 신수사님은 우리의 '들음'은 '선택적 들음'일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다. 우리는 종종 혹은 자주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곤 한다. 

 

상대에 대한 선입견과 개인의 경험들 그리고 그 경험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들이 사람 사이를 멀게 만든다. 그래서 켜켜이 쌓인 이 복합물들은 누군가 건네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게 자꾸만 방해한다. 오해는 들음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다른 이에게 말을 건네는 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화하는 사람의 자리에 서게 되면, 청자의 위치에 놓일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을 경험한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을 오해하긴 힘들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표현 방식이 서툴 수 있다. 표현할 수 있는 언어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작가 이승우의 말대로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있지만 하는 사람, 하면서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그렇게 태어났다. 하지만 함께 사는 것은 어렵다. 타인이 건네는 말을 이해하는데 방해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란 '고독'을 기본값으로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는지. 

 

어쩔 수 없이 한평생 사람은 '이해와 오해' 사이를 오가며 산다. 인생은 길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 건네는 말을 세심히 들으려 애쓰면서도 때론 한계를 인정하고 무심히 넘어가는 태도도 필요하다. 귀 기울임과 무심함. 둘 사이의 적절한 줄타기는 계속되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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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사랑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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