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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느헤미야 (1)] 이상과 현실의 균형

20230629 청파교회 새벽설교

 

이상과 현실의 균형

 

<느헤미야 4장 16-20절> 

 

16. 그 날부터 내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 가운데서 반은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을 하였다. 관리들은 성벽을 쌓고 있는 유다 백성 뒤에 진을 쳤다. 

17. 짐을 나르는 이들은,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18. 성벽을 쌓는 이들은 저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하였다. 나팔수는 나의 곁에 있게 하였다. 

19. 나는 귀족들과 관리들과 그 밖의 백성에게 지시하였다. "하여야 할 일이 많은데다, 일하는 지역이 넓으므로, 우리는 성벽을 따라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20. 어디에서든지 나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여와서, 우리와 합세하여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서 싸워 주신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느헤미야 4장입니다. 페르시아(바사)에서 귀환한 느헤미야는 이제 본격적인 성벽 재건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는 3장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양의 문’이나 ‘물고기의 문’처럼 다양한 문을 세움으로 작업의 문을 열게 되는데, 그는 한 사람에게 업무가 가중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적재적소의 역할을 줌으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늘 안타까운 사실은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방해요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라가 처음 귀향하여 성벽 보수 공사를 하려고 할 때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가 있었듯이 느헤미야가 성벽 보수 작업을 하려 했을 때방해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인접해 있던 여러 민족 가운데 호론 사람, 즉 예루살렘 북서쪽에 위치한 벧 호론(Beth Horon) 출신이었던 ‘산발랏’과 또 암몬 출신이었던 ‘도비야’가 중심이 되어 성전 보수 작업을 방해했습니다. 

 

먼저 호론 사람 산발랏은 빈정거렸습니다.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이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냐? 하루 만에 일을 끝낸다는 거냐? 불타 버린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다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거냐?”(2) 그리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유대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다시 쌓으면 뭘 합니까? 돌로 성벽을 쌓는다지만, 여우 한 마리만 기어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겁니다.”(3) 사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유대 민족을 비웃고 놀렸지만,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하여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이 새록새록 샘솟았는지도 모릅니다. 

 

기도하고 무장하고

 

어쨌든 그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그들의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성벽을 재건 중이던 유대 민족의 사기가 완전 바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흙더미는 아직도 산더미 같은데, 짊어지고 나르다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 힘으로는 이 성벽 다 쌓지 못하리.”(10) 그들은 몹시 위축됐습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잘하고 있는 일이지 확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불안했을 것입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속내도 백성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성벽 재건에 관한 생각을 근본부터 되돌아봤습니다. 

 

하지만 그는 심란한 마음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비방을 받은 후,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퍼부은 욕이 고스란히 그들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 또한 못 본 체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기도의 내용에는 이방 민족에 대한 보복의 심리가 담겨 있지만, 느헤미야의 깊은 속내에는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의 요청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기도만 하는 자는 아니었습니다. 기도 후에 한 가지를 실행에 옮기는데, 그것은 적들의 방해에 대비하여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요청했습니다.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으라고 요청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영광 받으실 하나님민족의 회복을 위해 성벽 재건 작업을 멈출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세의 위협에 무감각하여 그들의 위협을 못 본 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한 손에는 성전을 짓기 위해 짐 나르는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는 무장의 손을 갖게 했습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에 가면 거대한 박물관 하나가 있는데, 그곳에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가득 채워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입니다. 그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데, 그 그림에는 라파엘로 본인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50여 명에 가까운 그리스 철학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림의 정 가운데에서 등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는데, 이 두 사람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입장이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이 두 사람이 걸어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먼저 플라톤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손바닥을 아래를 향한 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스승과 제자가 추구했던 철학의 핵심을 각자의 손의 위치로 잘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손가락을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은 그의 관심은 이데아, 즉 현실 너머의 세계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본질 혹은 뿌리현실 밖에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있는데, 그의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관심은 현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삶의 본질현실에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을 향한 손가락아래로 향한 손바닥 가운데 어느 하나만 중요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직면한 상황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균형

 

느헤미야의 목적의식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한쪽으로만 치우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자 했지만, 그렇다고 적들의 위협을 무시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성벽을 보수하는 일적들의 위협을 경계하는 일의 균형을 잘 맞춰가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직면한 위기 앞에서 이상적인 것만 추구하느라 오직 성벽 재건에만 몰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현실적인 것만 생각하느라 성벽 재건 작업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하면서 두 가지 일을 함께 진행해 나갔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상황들느헤미야가 겪은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에 발이 묶여 너무 무거워져서도 안 되겠고너무 이상만을 추구하느라 현실을 간과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의 나라는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드는 일 사이에 균형이 맞을 때 도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디쯤에 와 있는지 돌아보는 그런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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