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청파 Note / 에스라 (2)] 에스라의 감수성

20230622 청파교회 새벽설교

 

에스라의 감수성

 

<에스라기 9장 3-6a절> 

 

3. 이 말을 들은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면서 주저앉았다. 

4.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저녁 제사 때까지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동안에, 그들은 포로로 잡혀 갔다가 되돌아온 백성이 저지른, 이렇게 큰 배신을 보고서, 나에게로 모여들었다. 

5. 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로 앉아 있다가, 저녁 제사 때가 되었을 때에 일어나서, 찢어진 겉옷과 속옷을 몸에 그대로 걸치고,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고서, 주 나의 하나님께 

6a. 기도를 드렸다. 

 

 

두 번의 귀환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에스라기 9장입니다. 에스라기는 우리에게 포로에서 해방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줍니다. 그들은 당시 강대국이었던 바빌론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페르시아가 실권을 잡게 되었을 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고향인 유대 땅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두 차례로 나뉘는데, 한 번은 주전 538년에 최초로 유대인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귀향한 뒤에 겪게 되는 우여곡절 이야기가 바로 에스라기 1-6장에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귀환은 그 뒤로부터 80년이 지난 주전 458년에 에스라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당시 에스라는 페르시아(바사) 임금인 아닥사스다 1세로부터 임무를 받게 되는데, 그는 유대 민족을 잘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게 하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물론 에스라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오는 이 두 번째 귀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두 번째 귀환은 대략 3개월 반 정도 지속되었는데, 그 여정의 길이는 약 1,400-1,500km나 됩니다. 어쨌든 이 두 번째 귀환도 쉽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무사히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받은 큰 충격

 

이제 남은 일은 안정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유대 땅에서 안정만 찾으면 됐습니다. 이미 유대 땅에 살고 있던 고향사람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면 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게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그때에, 한 무리의 지도자가 에스라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에스라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들마저도, 이방 백성과 관계를 끊지 않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이집트 사람과 아모리 사람이 하는 역겨운 일을 따라서 합니다.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또는 며느리로 맞아들였으므로, 주변의 여러 족속의 피가 거룩한 핏줄에 섞여 갑니다. 지도자와 관리라는 자들이 오히려 이러한 일에 앞장을 섭니다.” (1-2) 

 

에스라를 찾아온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 앞에 지은 죄를 낱낱이 말해주었습니다. 이미 귀향하여 예루살렘에 터 잡고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나 며느리로 맞아들여서, 주님의 거룩함의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에스라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 앞에 거룩함을 잃고 이방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모습큰 충격을 받습니다. 에스라가 큰 충격을 받은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의 걱정은 유대 민족이 이방 사람들과 어울려서 다른 신을 섬기게 될까봐, 하는 걱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위험이방 여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면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라가 받은 충격이스라엘 민족의 순수성 때문입니다. 유대 민족이 주님 앞에 거룩함을 잃게 될까 봐, 슬픔과 충격에 휩싸인 것입니다. 

 

에스라의 감수성

 

에스라는 끓어오르는 슬픈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가 막혀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까지 뜯으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의 감수성은 뭔가 남달랐습니다. 결국 에스라는 슬픔에 휩싸인 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쓰러진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저녁 제사 시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주님 앞에 회개의 기도부터 드립니다. “하나님, 너무나도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하나님 앞에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우리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은 하늘에까지 닿았습니다.”(6) 그는 유대 민족의 일을 마치 개인의 일처럼 여기며 주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당한 일은 모두 우리가 지은 죄와 우리가 저지른 크나큰 잘못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비하여 가벼운 벌을 내리셔서, 우리 백성을 이만큼이나마 살아남게 하셨습니다.”(13) 감수성이 남달랐던 에스라는 마치 욥의 고백처럼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욥1:21)임을 고백했습니다.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 말씀을 보며, 에스라의 마음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는 유대 민족이 이방 민족과 어울리는 것을 보며,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거룩함을 잃었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유대 민족에게 일어난 일곧 에스라 자신의 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민족의 일을 마치 자기 개인의 일처럼 여기며 통한의 마음을 느꼈던 것일까요? 그는 우리와 남다를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요? 

 

물론 <에스라기>를 읽을 때는 조심해야 됩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에스라의 지나친 순수성이 오히려 주님의 복음을 가로막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러한 에스라의 면모는 접어두고, 그가 지닌 공감의 능력, 공감의 감수성을 함께 상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관계된 일에는 결코 남이란 없었습니다

 

사실 나라 혹은 민족이라는 개념너무 큰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개념을 조금 축소하여 나라와 민족내 곁에 있는 이웃 혹은 타자로 여겨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 안에서 내게 어떤 것들이 부족하고 어떤 것들이 결핍이 되어 있는지 한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늘 어려운 일이지만, 타인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일임을 늘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