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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에스라 (1)] 삶의 이면

20230615 청파교회 새벽설교

 

삶의 이면

 

<에스라기 4장 1-5절> 

 

1.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은,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2. 스룹바벨과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에게 와서 말하였다. "앗시리아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을 때부터 이제까지, 우리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줄곧 제사를 드려 왔으니,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성전을 짓도록 하여 주시오."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그 밖에 이스라엘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오. 주 우리의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할 일이오." 

4. 이 말을 들은 그 땅 백성은 성전 짓는 일을 방해하여, 유다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5. 그들은 고문관들을 매수하면서까지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방해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다스리던 모든 기간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가 통치하던 때까지 이어졌다.

 

 

희망과 혼돈의 이야기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에스라기 4장입니다. 에스라는 희망과 혼돈의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는 책입니다. 먼저 BC 587년 남유다의 멸망 이후, 끝난 것만 같던 하나님의 역사가 다시 쓰여지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에스라는 희망의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페르시아(바사)의 임금 고레스관대한 종교 정책을 펼침으로 당시 바빌론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을 자신의 땅으로 돌려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신앙의 핵심인 성전을 재건축하여 그들의 예배를 회복시키라고 명했습니다. 물론 고레스 왕은 자기 제국의 안녕을 위해 결정한 정책이었지만, 먼 시선으로 보았을 땐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 역사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새로운 날은 쉽게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의 이야기가 계속되나 싶었는데, 분위기가 바뀌어 유대 땅에 닥친 혼돈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남유다 사람들은 넘어서야 될 과제 하나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미 유대 땅에 살고 있던 북이스라엘 사람들, 다시 말해 사마리아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 남은 것이었습니다. 

 

남유다와 사마리아의 갈등

 

페르시아의 임금 고레스는 남유다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지목하여 성전을 정비하고 예배를 회복하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예루살렘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남유다 사람들의 성전 재건 소식을 듣고 자신들도 그 일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사실 성전 재건은 사마리아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신앙심을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성전 재건강대국인 페르시아의 뜻이기도 했기 때문에 만약 성전 재건작업에서 제외된다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나중에 불이익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힘없는 백성은 늘 강대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리 문제될 건 없어 보입니다. 남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힘을 합쳐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하면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남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데서 발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에스라 4장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남유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자, 남유다 사람들을 페르시아에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장에서 ‘유다와 베냐민’은 곧 유다 사람과 베냐민 사람들로 남유다 왕국의 본줄기를 이루는 백성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은 자연스레 사마리아 사람들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남유다의 우두머리들에게 찾아와 자신들의 처지를 낱낱이 아룁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BC 722년 앗시리아 의해 멸망) 포로에서 해방되고, 줄곧 이곳에서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를 드려왔다고 말합니다(2). 그러자 스룹베벨과 예수아와 같은 이스라엘 가문의 우두머리들은 선을 분명히 그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은 당신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이 일에 관여시키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3). 

 

사마리아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고집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수용해주지 않자 남유다 사람들이 성전 짓는 일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관리들을 매수하면서까지 남유다 사람들이 성전을 짓지 못하게 방해하였습니다. 그 방해로 인해 성전 재건이 실행되지 못한 게 대략 15-16년 정도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5). 

 

사마리아 사람들의 입장

 

오늘 본문에는 세 편의 고발장이 언급됩니다. 먼저는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왕 때에 한 번 (4:6) 그리고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 왕 때(4:7; 4:8-10)에 두 번이 있었습니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러한 상소문은 페르시아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명한 것을 그들이 막아서는 것처럼 비칠 수 있었기에 이는 마치 반역처럼 보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전략을 잘 짰습니다. 사람의 심리를 잘 활용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왕에게 반역을 꿈꾸고 있다며 글을 작성했습니다. 

 

“임금님께서 다스리시는 여러 지방에 흩어져서 살던 유다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자리를 잡고, 범죄와 반역을 일삼던 악한 성읍 예루살렘을 지금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기초를 다시 다지고, 성벽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일을 임금님께 아룁니다. 성벽 쌓는 일이 끝나고 그 성읍이 재건되면, 그들은 세금과 조공과 관세를 바치지 아니할 것이며, 틀림없이, 국고에 손해를 끼칠 것입니다.” (12-13) 

 

사마리아 사람들은 좀 과장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되면, 유다 사람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부역도 하지 않아서 나라에 손해를 끼치게 될 거라고 강력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전 기록을 살펴보면, 유다의 왕들늘 반역을 일삼는 자들이었다고 말하며, 아닥사스다 왕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보낸 상소문에 답장을 보냅니다. 답장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아주 긍정적인 내용으로 왔습니다. 아닥사스다는 유다의 왕들이 반역을 일삼고 열왕을 거역한 역사가 있었음에 동의했습니다. 결국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는 르훔 사령관과 심새 서기관에게 명하여,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중단케 했습니다. 그리하여 성전 재건이 멈추게 된 게  대략 15-16년인 것입니다. 

 

세상일의 이면 

 

에스라기 4장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던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이 갑작스레 발목이 잡히는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사실 <에스라기>도 <역대상/역대하>처럼 기록 목적이 분명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끝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라기>를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든 사람은 에스라입니다. 그는 유다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유다가 하려는 일을 막아선 자들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아선 자들로 그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전 건축을 방해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 자들로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마리아 사람들성전 건축을 방해한 것이 맞습니다. 그들은 유다 사람들 입장에서 불편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저 유다 사람들의 성전 재건 작업방관한 채 있을 수만도 없었습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성전 재건강대국인 페르시아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전 건축에 정성을 보이지 않게 되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이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에는 백프로 옳고, 백프로 그른 일은 없습니다. 어느 쪽에 무게를 더 두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몸을 입고 사는 자이기 때문에 현명함을 쫓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늘 바라는 게 되는 것주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오늘 하루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주님께 지혜와 명철을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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