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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새벽] 마음속 작은 도피성

20200514 청파교회 새벽설교

마음속 작은 도피성

<여호수아 20장 1-9절>

1.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라. '내가 모세를 시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지정하여, 
3.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그 곳으로 피하게 하여라. 그 곳은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 될 것이다. 
4. 살인자는 이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가서, 그 성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의 장로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설명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를 성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어, 함께 살도록 해야 한다. 
5.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이 뒤쫓아온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손에 살인자를 넘겨 주어서는 안 된다. 그가 전부터 그의 이웃을 미워한 것이 아니고, 실수로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6. 그 살인자는 그 성읍에 머물러 살다가,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은 다음,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은 뒤에야 자기의 성읍 곧 자기가 도망 나왔던 성읍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7. 그래서 그들은 요단 강 서쪽 지역에서는 납달리 산간지방에 있는 갈릴리의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간지방의 세겜과 유다 산간지방의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을 도피성으로 구별하여 지정하였다. 
8. 또 여리고 동쪽, 요단 강 동쪽 지역에서는 르우벤 지파의 평지 광야에 있는 베셀과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의 바산 골란을 도피성으로 구별하여 지정하였다. 
9. 이 성읍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나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서 누구든지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에, 그 곳으로 피하여 회중 앞에 설 때까지,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의 손에 죽지 않도록 하려고, 구별하여 지정한 도피성이다. 

 

오랜만의 인사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셨는지요? 주일에 오프라인 예배를 재개했지만 못 오셨던 분도 계실 테고 또 오셨지만 못 뵌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바이러스로 인해 한 동안 못 뵙고 지냈네요. 

사실 오프라인 예배를 재개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걸 모두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인근 동네인 이태원에서 있었던 일들 때문에 다시 확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다시 조금씩이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기 계신 분들께서는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도피성의 등장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서 뵀던 게 2월20일이었습니다. 물론 그 때 나눴던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으실 겁니다. 물론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테고요. 그때 나눴던 이야기는 간단히 말해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나서, 12지파가 순차적으로 땅 분배를 받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요단 서편에는 어떤 지파들이 땅 분배를 받았는지 또 동편에는 어떤 지파들이 땅 분배를 받았는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서쪽 지파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쪽 지파 이렇게 세 개다. 요단강 동편을 분배 받은 지파들은 유다 지파,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반쪽 지파, 베냐민 지파, 시므온 지파, 스블론 지파, 잇사갈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단 지파 이렇게 열 개다)
 
오늘은 그 다음의 이야기인데요. 여러분께서 여러 번 들어본 적 있는 ‘도피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도피성은 <여호수아>에 등장하기 이전에 다른 책에 먼저 등장합니다. 물론 그 의미들은 동일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민수기 35장 9-34절입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함께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민수기를 통해 도피성을 언급하십니다. 도피성이 필요성은 사실 간단합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도피성에 들어가 보호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같은 나라 사람이건 혹은 이방 나라 사람이건 상관없이 모두 보호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동일한 이야기가 <신명기> 19장 1-13절에도 등장을 하는데요. 

그러고 나서, 이 도피성은 오늘 본문인 여호수아 20장 1-9절에 마지막으로 등장을 합니다. 

도피성의 구체적인 지명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도피성’은 민수기, 신명기와는 다르게, 지금-당장 만들고 마련해야 할 장소입니다. 사실 민수기 때의 도피성은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이 도피성을 만들라는 - 당장은 마련할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지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도피성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왔기 때문에 바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아주 구체적인 지명까지 등장합니다.

요단강을 기준으로 서편에는 게데스, 세겜, 기럇아르바(헤브론)가 그곳이고, 동편에는 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이라는 곳이 도피성으로 지정됐습니다. 결국은 민수기 때 이야기된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수아에 이르러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수투성이 사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왜 하나님께서 이 도피성을 만들라고 지사했느냐 입니다. 도피성의 역할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이곳을 마련해 두라고 하신 걸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가끔이라도 실수를 하시는 편이신가요?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실수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저도 실수투성입니다. 가장 많이 하는 게 말실수인 한데요. 가장 최근에 했던 기억에 남는 실수는 5월 첫째 주 주일 예배 사회를 볼 때였습니다. 눈치 채신 분들도 계셨을 텐데요. 월마다 돌아가며 부목사님들이 주일 예배 사회를 보게 됩니다. 5월이 제 차례였습니다. 영상으로만 드리는 예배의 사회는 처음이라 몹시 떨렸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멘트도 적어가며 준비해 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읽고 준비했던 멘트를 시작하자마자 틀린 것입니다. 제가 해야 할 멘트는 원래 이것이었습니다. ‘오늘은 5월 3일 부활절 넷째 주입니다’였습니다. 그런데 떡하니 잘 써놓고 나서, 5월 3일을 5월 셋째 주라고 읽은 것입니다. 5월 첫째 주는 교회설립주일이라 더 중요한 날짜였는데, 저 혼자 타임머신을 타고 5월 셋째 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등에 식은땀이 났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알아채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실수

좀 쌩뚱 맞은 실수에 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요. 사람은 이렇게 철저히 준비를 해도 긴장을 하거나 아주 우연적으로라도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다 그러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실수로 사람을 해하는 일이 더 빈번히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지금보다 더 몸을 쓰는 활동이 많았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9장 5절에 이런 예가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과 함께 나무하러 숲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열심히 나무를 찍다가 그만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친구를 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친구가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절대 친구를 죽일 생각이 없었고 한 번의 실수로 친구의 생명을 빼앗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평소 이웃을 미워한 일이 없던 사람이 실수로 이웃을 죽게 만들었을 경우, 바로 이 도피성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게끔 한 것입니다. 

마음속의 도피성

저는 사람은 참 한계가 많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남에게는 엄격한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자신이 어떤 실수를 하면 사람들이 그 실수를 너그럽게 봐주기를 바라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실수를 하며 어떻게든 복수나 처벌과 같이 되갚아주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말씀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러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도피성이라고 하는 것을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수 있게 자리를 내어드리는 하나의 ‘거리두기’라고 말입니다. 사람은 누가 나에게 피해를 줬다고 여기면 되갚아주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때론 시간이 흐르고 보면, 내가 왜 그렇게 흥분하고 또 화를 냈을까 또 내가 왜 그렇게 억울해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이 도피성은 나의 생각과 판단을 가능하면 내려놓고 하나님이 개입하실 있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 하나의 거리두기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께서도 마음속에 ‘작은 도피성’ 하나씩 쌓아놓고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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