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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2)] 99% 의심, 1%의 희망

20231005 청파교회 새벽설교
 
99퍼센트의 의심, 1퍼센트의 희망
 
<시편 9편 19-20절> 
 
19.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20.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감사의 기도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9편입니다. 시편 9편은 길이가 길지 않지만, 이 짧은 시 안에서 여러 번 분위기 전환이 일어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의 초반에는 시인이 경험한 주님은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하고 또 시의 중반부에는 사람들에게 결단의 촉구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시의 후반부에는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간절한 요청도 등장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짧은 시 안에서 시인의 다채로운 내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1-2절에 주님을 향한 감사의 기도부터 드립니다. 시인은 주님으로 인해 기쁘고 즐겁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주님의 계심 그 자체가 시인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기쁨으로 가득 찬 시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언제 주님 때문에 기뻐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 소원을 들어주셨기 때문에 주님을 찬양했던 것 말고, 그저 주님의 계심 그 자체가 내게 기쁨이 되었던 적은 언제였는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시인이 경험한 하나님
 
이어서 시인은 3-4절에서 주님의 정직과 공정함을 노래합니다. 평소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말을 할 때를 보면, 자신이 그 사람을 직접 경험한 바를 토대로 이야기합니다. 시편의 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은 주님은 공정하고 정직한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고백은 그가 직접 경험한 주님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과거에 뭔가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평한 일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어둡던 시간을 시인은 주님 덕에 빠져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5-6절에도 시인이 경험한 하나님의 능력이 이어서 드러납니다. 시인은 주님을 악인을 멸하시고,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워버리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세상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참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이라도 남기기 위해 무척 애를 씁니다. 하지만 주님은 악인에게서 바로 그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십니다. 주님은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을 이 세상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시고 또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그 이름을 영원히 지워 버리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주님은 악인에게는 매우 엄격한 분이십니다. 
 
시인의 진짜 속내
 
이어서 9-10절에서는 시인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관심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방금 말씀드린 대로 악인은 아주 단호히 대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님을 찾는 사람그와 정반대로 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피할 성이 되어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찾는 사람들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시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1-12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만민에게 알릴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13절에서 와서는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시인주님을 찬양하던 노래나 혹은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하던 당부의 말을 멈추고, 이제는 주님을 향해 간청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서두에서 철저한 신뢰 속에 주님을 찬양하고는 있었지만, 그는 최근에 힘든 일을 겪었던 것분명해 보입니다. 왜냐면 13-14절을 보면, 시인은 원수들에게서 받는 그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그러다가 다시 15-18절에 와서는 기도의 분위기가 또 한 번 달라지는데 그러나 시인이 처한 상황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다시 이어서 악인들 때문에 겪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번에도 시인독백의 형태로 기도하는데, 그는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거기에 자신의 간절한 바람까지 섞어서 기도합니다. 악인들은 넘어지고 스올로 떨어질 것이지만, 하나님 편에 선 가난한 사람들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그러다가 19-20절에 와서 시인은 목소리 높여 외칩니다. 자신의 모든 염원을 담아서 주님께 간청합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19-20) 말씀드린 대로, 1절부터 시작된 시인의 고백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 혹은 담대한 선포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정작 시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하나님이 정의의 편에 서서 자신을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던 것입니다. 
 
작은 것 안에 감춰진 위대함
 
시편 9편을 보며, 우리는 시인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긴 어려우나, 그가 고통 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인고통 중에도 주님을 철저히 신뢰했습니다. 아니, 주님을 신뢰하기 위해 씨름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도움 없이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큰 믿음, 거창한 믿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작은 믿음입니다. 작은 것이 훨씬 소중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를 드실 때, 작은 것, 적은 것의 소중함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유럽의 한 수도원에 계신 신부님이 하신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 여겨집니다. 
 
“성공이란 자신의 온갖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작은 것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느님도 보잘것없는 것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셨습니다. 저 외딴 동네, 작은 마구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페터 제발트,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문학의숲, 2010,  p.215) 진정한 위대함은 작은 것 안에 감춰져 있는 법입니다. 
 
소설가 조르주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는 “진정한 신앙은, 확실히 말하자면 99퍼센트의 의심과 1퍼센트의 희망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릴 때 그리고 가까이 있는 이들과의 신뢰가 흔들릴 때, 작은 것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희망을 붙들 던 오늘 시인의 믿음이 곧 우리의 믿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Bible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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