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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욥기 (10)] 일상을 벗어나 하나님 만나기

20230921 청파교회 새벽설교

 

일상을 벗어나 하나님 만나기

 

<욥기 41장 1-8절> 

 

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으며, 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느냐? 

2. 그 코를 줄로 꿸 수 있으며, 갈고리로 그 턱을 꿸 수 있느냐? 

3. 그것이 네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것 같으냐? 그것이 네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빌 것 같으냐? 

4. 그것이 너와 언약을 맺기라도 하여, 영원히 네 종이 되겠다고 약속이라도 할 것 같으냐? 

5. 네가 그것을 새처럼 길들여서 데리고 놀 수 있겠으며, 또 그것을 끈으로 매어서 여종들의 노리개로 삼을 수 있겠느냐? 

6. 어부들이 그것을 가지고 흥정하고, 그것을 토막 내어 상인들에게 팔 수 있겠느냐? 

7. 네가 창으로 그것의 가죽을 꿰뚫을 수 있으며,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 

8. 손으로 한 번 만져만 보아도, 그것과 싸울 생각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등장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욥기 41장입니다. 욥기의 이야기도 이제 내일이면 끝납니다. 욥기에 등장한 인물은 손에 꼽힐 만큼 적었지만,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엿보며 우리는 큰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길고 길었던 엘리후의 발언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욥기 38장에 등장한 하나님은 오늘 본문인 41장까지 자신의 속이야기를 전하십니다. 그런데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하나님은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정하거나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기 위해 그를 꾸짖기 시작하십니다. 

베헤못과 리워야단

욥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는 절대 가닿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1. 광활한 우주나 2. 바다의 혼돈, 3. 떠오르는 아침 태양이나 4. 깊은 바다와 같이 5. 인간의 인식 너머의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가던 하나님은 두 개의 짐승을 언급하시는데, 하나는 베헤못이고 다른 하나는 리워야단이었습니다. 어제 이야기에 등장한 베헤못은 욥기에만 등장하는 짐승이고, 오늘 본문에 등장한 리워야단은 시편이나 이사야에도 등장하는 짐승입니다. 베헤못은 정확히 알기 어려운 짐승이나 하마와 유사한 짐승이라 여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무척 힘이 세고, 매우 뛰어난 짐승인데, 그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파괴의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를 묘사한 이야기를 보면, 대단한 힘 때문에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욥기 41장을 보면, 그보다 더 강력한 짐승이 소개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베헤못은 육지의 짐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한 리워야단은 바다의 짐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리바이어던’이라고도 불리는데, 그는 마치 거대한 고래나 악어 혹은 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 리워야단은 서양에서는 혼돈과 흑암을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그는 악을 대표하는 짐승인 것입니다. 

시편과 이사야에 등장한 리워야단은 하나님의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짐승으로 소개됩니다. 먼저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시74:14)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27장을 보면,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좁고 예리한 큰 칼로 벌하실 것이다. 매끄러운 뱀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처치하실 것이다. 곧 바다의 괴물을 죽이실 것이다.”(사27:1)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있는 동물인 것입니다. 

리워야단과 인간의 무력함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한 리워야단은 하나님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는 짐승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리워야단에 관한 묘사를 아주 상세히 함으로 욥을 더 큰 침묵 속에 갇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를 묘사한 글의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리워야단을 보는 사람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땅에 고꾸라진다. 그것이 흥분하면 얼마나 난폭하겠느냐? 누가 그것과 맞서겠느냐? 그것에게 덤벼 들고 그 어느 누가 무사하겠느냐? 이 세상에는 그럴 사람이 없다.”(9-11) 리워야단은 여러분께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동물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리워야단은 인간의 능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짐승 자체가 “처음부터 겁이 없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욥42:33)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짐승을 인간이 어떻게 감히 1. 손에 쥘 수 있으며 2. 또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가능성과 욥이 자랑하는 지혜를 두 짐승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크고 놀라운 하나님 만나기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구석으로 내 몬 이유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신의 존재를 의심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하나님께 말대꾸하고 대들었기 때문에 그를 혼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사실 하나님이 욥을 꾸짖었던 이유는 그가 미워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리워야단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무능과 연약함을 상기시키기 위해 두 짐승의 이야기를 끌어왔던 것입니다. 

욥기에 등장한 하나님의 이야기 방식이 투박하긴 하나,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가슴에 잘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섬세하고 아주 편안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압도적인 환경과 자연 혹은 커다란 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일상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크심을 느끼기 위함입니다. 물론 일상을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갖가지 한계들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지만 일상을 벗어나서 커다란 세계에 접속하는 것에 꼭 많은 시간과 큰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더 멀리 가서, 더 오래 낯선 세계를 경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경험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에서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하나는 여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그분의 창조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도 이 두 가지가 참 의미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2004, p.23) 

하나님의 크심을 경험하는 방법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저마다의 방식을 통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1.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깊어지고, 2.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며 그리고 3.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4. 우리의 자연을 더 잘 아끼고, 더 잘 돌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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