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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1)] 해가 질 때, 드리는 기도

20230928 청파교회 새벽설교

 

해가 질 때, 드리는 기도

 

<시편 4편 1, 6-8절> 

 

1.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내가 곤궁에 빠졌을 때에, 나를 막다른 길목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6. "주님,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의 환한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 주십시오. 

7.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저녁 기도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4편입니다. 시편 4편은 다윗이 노래한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는 소제목이 하나 붙어 있는데, 성경을 보면 그 제목이 ‘저녁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이 노래를 하루를 마감하는 시점에 불렀던 것입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이 저녁이라는 시간이 참 중요한데, 오늘은 특별히 이 저녁이 주는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시편 4편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인은 썩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것 같지 않습니다. 그에게 뭔가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가 경험한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긴 어렵습니다. 다만 그가 경험한 바를 짐작할 따름입니다. 

 

반성하는 인간

 

그는 먼저 주님께 간청합니다.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내가 곤궁에 빠졌을 때에, 나를 막다른 길목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1) 시인은 곤경에 처해 있는데, 그가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 알 순 없으나 그가 누구로부터 그런 일을 당하였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을 힘들 게 한 원인 제공자는 2절에 등장합니다. 그는 바로 ‘높은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높은 사람들로부터 어떤 식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입니다. 

 

시인은 1절에서 하나님께 간청의 기도를 드린 후, 자신의 시선을 ‘높은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허망한 것을 쫓는 ‘높은 사람들’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너희 높은 자들아, 언제까지 내 영광을 욕되게 하려느냐? 언제까지 헛된 일을 좋아하며, 거짓 신을 섬기겠느냐?”(2) 여기서 시인이 말한 ‘내 영광’은 시인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영광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는 높은 사람들을 향해 어서 헛된 욕망의 사다리에서 내려오라며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인은 주님이 어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열거한 다음,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당부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각별히 돌보심을 기억하여라. 주님께서는 내가 부르짖을 때에 들어 주신다. 너희는 분노하여도 죄짓지 말아라. 잠자리에 누워 마음 깊이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려라”(3-4) 시인은 주님께서 특별히 아끼고, 챙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 그리고 주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잠자리에 누워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흔히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는 능력으로 반성을 꼽곤 합니다. 반성이란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반성하는 태도가 있어야 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겉은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그가 반성할 줄 모른다면 그 대상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어쨌든 시인이 한 말의 청자는 ‘높은 사람들’이지만, 이러한 시인의 말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주님을 대면한 자의 기쁨

 

시인의 자신의 시선을 다시 주님께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주님께 청합니다. 주님의 환한 얼굴을 비춰달라고 그는 주님께 간청합니다. 아기의 때 묻지 않은 환한 미소를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리 지치고 피곤하여도 갓난아기의 환한 미소 앞에 서면 모든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걸 경험하곤 합니다. 갓난아기의 얼굴만 마주해도 이러할 진데, 주님의 환한 얼굴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주님의 얼굴과 만나면 우리 마음의 어둠은 물러가게 마련입니다. 

 

이어지는 7절이 바로 주님의 환한 얼굴을 마주한 이의 고백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7) 시인은 주님을 마주한 기쁨은 추수의 풍성한 열매보다도 더 기쁜 일이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고백은 이러합니다. 하나님과 대면한 자의 충만함은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다른 길목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시인의 간청마지막에 와서 평안으로 바뀌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인은 하루를 마감하면서,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의 도움 덕분임을 고백합니다(8). 상황은 바뀐 것이 없으나, 하나님을 대면한 이의 마음에 평화가 깃든 것입니다. 

 

저녁이 주는 유익

 

오늘의 시인은 하루를 마감하면서, 시편 4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힘들고 억울한 일도 있었지만, 주님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자 마음에 평안이 깃들었습니다

 

성숙한 신앙이란 나의 의지는 내려놓고, 나를 통해 주님이 일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은 삶이 내 뜻과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여 불평의 소리만 높이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삶의 근본을 천천히 돌아보는 자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매일 반성의 시간을 가졌으리라 여겨집니다. 해가 지고 노을이 질 때쯤, 그는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활용하여 자기반성을 했을 것입니다. 

 

아침과 낮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낮과 저녁이 주는 영향 또한 다릅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은 사람의 몸이 깨어나는 아침만의 감성이 있습니다. 낮은 활동을 이어나갈 때 주어지는 그런 낮만의 감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는 저녁은 활발한 활동을 마무리하고 밤을 준비해 나가는 그런 감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죽음에 해당하는 밤은 하루를 돌아보며, 지나온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감성이 있습니다. 시인이 기도한 저녁은 바로 이 밤의 감성과 비슷해 보입니다. 

 

우리는 낮에 읽은 책저녁 혹은 밤에 읽는 책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는 낮에 마시는 커피와 밤에 마시는 커피, 이른 시간에 보는 영화와 저녁 늦게 보는 영화는 그 감성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하루생명과 죽음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인의 기도가 저녁에 드려졌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적절한 시간에 드려진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가 날 밝을 때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면, 그 기도의 내용은 전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을 잘 활용하십시오. 매 시간이 주는 감성을 잘 활용하여 삶의 생기를 잃지 않은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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