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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2부 설교] 앞서 길을 만든 사람들

20240204 청파교회 2부 설교
 
앞서 길을 만든 사람들
 
<히브리서 11장 32-40절>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34.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믿음으로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맞이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존재감 
 
참 좋으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여러분께서는 좋아하는 운동이 있으십니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을 갖고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 축구를 가장 좋아합니다. 하는 것, 보는 것 모두 좋아합니다. 물론 좋아한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요즘은 월드컵 시즌도 아닌데, 한국을 포함해서 아시아가 축구의 열기로 가득합니다. 아시안컵 때문인데, 한국도 4강에 올라서 그 열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아시안컵 얘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저는 이번 경기들을 챙겨보면서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선수인 손흥민 선수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사실 손흥민 선수는 그가 써내려간 기록들 때문에 아시아 축구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워너비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그가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필드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필드골이라함은 페널티킥, 프리킥이 아닌 상황에서 넣는 골을 말합니다. 그는 전 세계 축구인들의 꿈의 무대인 영국에서 득점왕까지 한 선수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시원한 골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자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는 공격수이기 때문에 골을 많이 넣는 것그의 존재 목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대회를 보며,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가 가진 역할은 그의 포지션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그의 존재감 전체에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경기장 안과 밖에서 선수들의 사기를 세워줬습니다. 실점 상황이 나오거나 혹은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위축될 수도 있는 선수들의 사기를 세워줬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 때, 동료 선수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마음이 아프다며, 그들도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기에 자꾸 선수들을 흔들지 말고 보호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며, “이 사람 참 대인배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동료를 대하는 그의 이러한 태도들은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손선수의 행보를 보며, 주장이나 좋은 선배 혹은 좋은 가르침은 바로 이런 존재감 속에 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발자취
 
그런데 이렇게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어디 스포츠 업계에서만 중요한 이야기겠습니까?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러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좋은 선배좋은 친구, 좋은 선조들을 만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와 지내느냐에 따라 또 내가 누구를 만났느냐에 따라 내 욕망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역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음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주님의 은총이 가장 크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 보다 앞서 믿음의 길을 걸은 이들의 발자취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 인물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창세기부터 살펴보면, 아벨, 노아,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야곱과 요셉 그리고 바울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인물들이 우리보다 앞서 믿음을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훌륭한 인물들인 것은 그들이 흠이 없거나 부족함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부족한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갔고, 비틀거릴지언정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었던 자들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고생길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 여러 곳에 등장하지만, 우리가 오늘 특별히 살펴볼 말씀은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믿음 장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고취시기키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는 다양한 믿음의 선조들이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에는 그들이 한 일들이 간략하게 소개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길을 걸은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삶의 위기를 맞닥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고생으로 귀결되는가”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믿음생활곧 시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생활의 가장 큰 장점기쁨입니다. 우린 기쁘게 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은 바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시련과 손해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해자였던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자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전반전의 삶복음을 막는 것인 반면에 그의 후반전 삶복음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지중해 연안의 문명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었습니다. 낯선 것위험하게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힘과 권력, 물질이 중심이 되던 세상에서 사랑과 겸손, 섬김과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복음을 전하는 일알아서 고난을 자처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바로 살고자 했고, 그러한 태도로 사는 이에게 고난당연한 결과값이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상황
 
다 읽진 않았습니다만,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 하나만을 의지해서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책의 수신자들에게 믿음을 강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바로 교인들의 믿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퇴색되고, 오염된 믿음을 바로잡기 위해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서신을 기록하게 됩니다.  
 
히브리서를 받아 본 교인들은 책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히브리 민족, 즉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히브리서의 수신자가 정확히 어떤 집단인지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추측할 따름인데, 곳곳에 나와 있는 힌트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로마에 거주하던 유대계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자들에게 한 가지 위기가 닥칩니다. 그들의 신앙이 점점 나태해지더니 그리스도의 법에서 떠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흔들린 가장 큰 이유예수의 재림 지연이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이 올라가신 그 모습 그대로 오기로 하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분이 오질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가는데도 주님의 재림이 계속 지연되자 사람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문제베드로후서에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저 손을 놓고 지켜볼 수만 없었습니다. 그는 흔들리는 교인들을 위한 처방전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꺼내든 칼이 바로 믿음이라는 칼입니다. 믿음보이지 않은 것에 형상을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교인들을 향해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11:6) 
 
아브라함의 믿음 
 
그래서 그는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린 다음에 그 길을 걸었던 이들을 하나씩 열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구약에 등장한 인물들을 믿음의 모범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벨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을 거쳐 사사들에 이르기까지 위기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온 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그들 가운데 몇몇 인물들의 발자취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살펴볼 인물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유명한 만큼 히브리서 11장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담겨 있습니다(8-19). 아브라함크게 세 번 테스트를 거칩니다
 
가장 처음은 하나님께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땅, 나고 자란 곳을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창 12:1). 그 음성이 들렸을 때, 아브라함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떠났다!”라고 아주 간결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4). 그는 곧장 발걸음은 옮겼지만 그의 마음에 의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과감히 발을 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을 때입니다(2). 이 약속은 “떠나라!는 명령과 동시에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길, 그가 처음 발을 옮겼을 때의 나이일흔 다섯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 고대인들의 수명을 고려하더라도 그의 나이는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믿음이 필요한 부분바로 아내 사라의 몸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갖기 어려운 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너의 자손이 별처럼 많아질 것’(15:5)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시험은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삭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그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도 가도 못한 상황에 처합니다. 그는 사랑의 무게저울질당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뿐인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아들을 사랑하는 마음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고 넓기에 그분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아들을 죽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하면 또 되는 것일까? 그의 갈등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이 상황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으며 불확실성 속에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사라와 이삭의 믿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믿음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사라의 태는 계속 닫혀 있습니다. 그녀는 말 못 할 사정을 늘 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라가 낙심에 빠진 바로 그 순간, 그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라를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8:10). 이 소식은 정말 기쁜 소식이었지만 너무나 믿기 어려운 소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라약속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에 올 그 실망감보다 자신을 찾아온 하나님의 약속을 우선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그녀의 믿음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1:11) 
 
그녀의 아들 이삭시험이 없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삭이 야곱과 에서 두 아들 모두를 축복한 사건을 믿음의 척도로 삼았지만, 저는 그보다 이삭의 믿음은 번제물로 바쳐진 이후, 그가 스스로 내린 행보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삭은 어린 나이에 하나님과 아버지 사이에서 죽을 위기를 맞습니다. 자신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손도 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이삭의 나이가 어린아이가 아닌 건장한 청년 때였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삭아버지께 저항할 수 있는 나이였을지라도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자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믿음은 바로 이 사건 이후에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함부로 대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의 하나님곧 자신의 하나님으로 여겼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자신도 아버지를 따라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습니다
 
모세와 사사들의 믿음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에 이어서 모세에 관한 이야기그다음으로 많이 할애했습니다. 모세의 인생여정아브라함과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세는 왕의 자녀라는 특권을 내려놓고, 본래 자기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생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시험은 이다음에 더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집트를 탈출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그의 믿음에 관해 말하길, 그가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떠났으며 보이지 않는 분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며 견디어냈다고 말했습니다(11:27). 모세는 거대한 벽과 같았던 홍해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홍해를 마른땅을 건너듯 건넜습니다(29). 그 역시 고민은 깊었을지언정 불확실성 속으로 용기 있게 한 발자국 내디딘 것입니다
 
모세 다음으로 등장한 기드온바락, 삼손, 입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도 믿음 하나만을 의지하여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앞서 길을 걸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길을 배우면서도 한편으론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배움
 
그런데 사실 배움이라고 하는 것반드시 성경과 같은 텍스트로만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현미경보다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훨씬 큰 가르침을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배움실제적인 만남이나 실제적인 사건을 통해 오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청파교회 목회실 멤버가 된 걸 행복으로 여깁니다. 그 이유는 목회실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일을 할 때, 순간순간 좋은 깨달음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목사님들이 곁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섬기는 지를 눈여겨보다가,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지금 아직 돌이 안 된 아기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육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나탈리 크납이라는 독일의 한 철학자는 “인간은 무엇보다 모방을 통해서 관계를 형성한다”라고 말하며, 좋은 자녀 교육은 주의를 주고, 설교를 하는 것보다 부모 스스로가 독립적이고, 신뢰가 강하며 생동감 넘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많은 말보다 삶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가 좋은 교육임을 깨닫게 됩니다. 
 
휴가의 기억 
 
잠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지난 주일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이00 목사님도 저보다 한 주 앞서 휴가를 다녀오셨는데, 목사님께 누가 그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청파교회는 여름휴가도 있고, 겨울 휴가도 있나 보군요?”라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청파교회가 좋은 곳은 맞지만 그 정도의 복지까진 잘 된 곳은 아닙니다. 이00 목사님이나 저나 사정이 있어서 이제 다녀온 것입니다.  
 
저는 큰 마음을 먹고 아기와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떠나는 날 서울에는 한파가 왔기에 따뜻한 제주도가 무척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폭설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원망하기에는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오후 늦게 도착한 제주에서 차량을 픽업하여 서귀포로 넘어가야 했습니다. 엄청나게 내리는 눈깜깜한 산길, 익숙하지 않은 차량차 안에 있는 아내와 아기 때문에 엄청나게 긴장이 됐습니다. 도로에 불빛도 없고, 모든 차선이 눈에 덮여 있어서 방향을 제대로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차선을 여러 번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 간, 이동하고 있는데, 앞에 몇 대의 차량이 나타났습니다. 그 차량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는지라 비상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앞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나타난 앞차량들의 등장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왜냐면 앞서 가는 차들이 남긴 그 바퀴자국이 제가 가는 길의 안내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앞차들이 남긴 흔적들 때문에 더 이상 중앙선이나 옆차선을 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경험이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예수의 길
 
청파교회 교우 여러분! 믿음결단이고 모험입니다. 그리고 그 결단과 모험을 앞서 행했던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하는 것우리에게도 참된 복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믿음의 선조들에게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모범은 되었으나 약속된 것은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39) 
 
여기서 말한 ‘약속된 것’은 하나님 나라를 말할 것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믿음 하나만을 붙들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에서 실현된 하나님 나라를 보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누군가를 지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40)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선조들이 시작한 일마무리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진정한 모범이 되신 분, 선조들이 보지 못한 그 하나님 나라의 표본을 알려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는 짧은 생을 사셨지만, 그 짧은 생 안에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다 담아내셨습니다. 예수께서도 고난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추구한 것이 고난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도 행복을 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들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신 길따라 걷는 일! 이것이 앞서 길을 걸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길이자 남은 자들의 몫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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