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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21)] 기쁨을 회복하는 방법

20240215 청파교회 새벽설교

 

기쁨을 회복하는 방법

 

<시편 104편 1-4절> 

 

1.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은 더없이 위대하십니다. 권위와 위엄을 갖추셨습니다. 

2. 주님은 빛을 옷처럼 걸치시는 분, 하늘을 천막처럼 펼치신 분, 

3. 물 위에 누각의 들보를 놓으신 분, 구름으로 병거를 삼으시며,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시는 분, 

4. 바람을 심부름꾼으로 삼으신 분, 번갯불을 시종으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기쁨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104편입니다. 시편 104편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입니다. 먼저 시인은 말합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은 더없이 위대하십니다. 권위와 위엄을 갖추셨습니다.”(1) 오늘의 시인은 창조주의 위대함과 창조주의 지혜가 이 세상에 충만한 것을 보며 기쁨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를 보며, 그는 참 위대하다, 그 사람은 참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경험의 차원과 관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하다, 지혜롭다는 것은 시각의 차원, 다시 말해 보기만 해서는 느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시인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경험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오늘의 시에 등장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묘사하는 놀라운 창조세계의 신비를 듣다 보면, 그가 하나님과 관련된 어떤 경험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시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기초를 든든히 놓으셔서, 땅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옷으로 몸을 감싸듯, 깊은 물로 땅을 덮으시더니, 물이 높이 솟아서 산들을 덮었습니다.”(5-6) 시인은 땅과 바다를 보며 깊이 감탄합니다. 시인의 눈에 세상 만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땅과 물이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며, 그는 하나님의 오묘하고 정교한 섭리를 느꼈습니다. 

 

이어서 시인은 사람 또한 하나님의 창조물로써 세상 만물과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님은, 들짐승들이 뜯을 풀이 자라게 하시고, 사람들이 밭갈이로 채소를 얻게 하시고, 땅에서 먹거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를 주시고, 얼굴에 윤기가 나게 하는 기름을 주시고, 사람의 힘을 북돋아 주는 먹거리도 주셨습니다.”(14-15) 시인은 사람이 자연뿐만 아니라 동물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이 잘 지낼 수 있는 이유하나님의 돌봄 때문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입히시고 먹이시는 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임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시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때에 맞게 사는 것주님의 손길 덕분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를 가늠하도록 달을 지으시고, 해에게는 그 지는 때를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어둠을 드리우시니, 밤이 됩니다. 숲 속의 모든 짐승은 이 때부터 움직입니다.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찾으려고 으르렁거리며, 하나님께 먹이를 달라고 울부짖다가, 해가 뜨면 물러가서 굴에 눕고, 사람들은 일을 하러 나와서, 해가 저물도록 일합니다.”(19-23) 

 

창조세계는 때에 알맞게 움직입니다. 시인은 대충 흘려버릴 수도 있는 일상의 흔한 광경도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그는 보게 된 것입니다. 해와 달, 짐승과 사람 모두 하나님의 손길 덕에 순리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24-26절에 등장하는 땅과 바다에 사는 피조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은 주님이 만드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보며 하나님의 지혜에 깊이 감탄했습니다. 

 

생명의 주인 

 

이제 시인의 고백은 점점 마지막을 향해 나아갑니다. 시인은 이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손길 덕에 존재함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피조물의 끝도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 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하고, 주님께서 호흡을 거두어들이시면 그들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갑니다.”(27-29) 

 

시인은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았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찬란한 생명을 누리지만, 주님께서 그 숨을 거두어가시면 본래의 흙으로 돌아감을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영원하신 창조주 

 

시인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단 한분이신 창조주만은 영원함을 그는 알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주님이 굽어보기만 하셔도 땅은 떨고, 주님이 산에 닿기만 하셔도 산이 연기를 뿜는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31-34)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그 영원한 하나님만을 평생 노래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주님을 향한 이 노래도 주님이 받으셔야 가능한 일임을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노래와 고백을 주님이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이 바람을 끝으로 오늘의 시를 마무리합니다. 

 

잃어버린 기쁨

 

오늘 우리는 시편 104편을 통해, 기쁨으로 가득 찬 시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만물을 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운행하시는 그분의 놀랍고 정교한 솜씨에 감탄했습니다. 시인의 눈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위대함과 충만한 지혜 그 자체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그에게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도 시인의 시선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시선어둠으로 가려져있습니다. 욕심과 육체의 한계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맑고 환하게 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주님의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럼 노력과 훈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내게 생명 주신 분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을 함께 기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 누구이지 앎으로 우리의 삶조금은 더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매일 이 마음을 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우리 안에 기쁨이 다시 샘솟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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