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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산티아고 에세이> Day 4. 몸이 건네는 말 Day 4. 몸이 건네는 말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 5시간 (25.5Km) 비가 온다. 순례 시작 이래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가방 저 밑에 넣어두었던 비옷을 꺼내 입고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걷는다. 순례자를 향해 내리쬐던 스페인의 무심한 햇살도 먹구름 앞에선 그 힘을 잃었다. 그래서일까? 무거운 가방을 매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해도 체온이 잘 오르지 않는다. 컨디션도 영 좋지 않아 오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갈팡질팡한 마음이 불안감에 속도를 높인다. 그래도 계속 걷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걸을 것이냐, 멈출 것이냐, 두 선택만 있을 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중간 중간 몸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다보니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3. 역시 삶은 만남인가 Day 3. 역시 삶은 만남인가 수비리(Zubiri) – 팜플로나(Pamplona) : 5시간 30분 (21Km) 여행은 만남이다. 여행이든 순례든 일상을 벗어나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가끔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모든 존재가 특별하겠지만 정말 특별한 한 사람을 이곳 팜플로나에서 만나게 된다. 수비리부터 동행하게 된 친구들과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끼니 해결을 위해 마을 번화가를 어슬렁거린다. 몇 분 후 현정이가 낯선 한 남자와 접선을 한다. 누구지?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 그 접선에 동참한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 체형은 아니다. 콧날은 날카롭고 다리는 매우 길었다. 그는 5월 산티아고 출발자 단톡방에 있던 오승기라는 청년이다. 단톡방에 있던 사람 중 대부분이 그가 외국사람인지 몰랐던 건 .. 더보기
[에세이] 잘 늙고 싶다 영원히 청춘이고 싶다. 몸은 늙지만 마음 만큼은 청춘이고 싶다. 그래서 영원히 청춘이고 싶었다. 자주 이렇게 되뇌곤 한다. 사진 속 내 모습을 본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날 것의 사진을 본다. 시간의 직격탄을 홀로 맞은 느낌이다. 웃을 때의 주름과 피부의 생기는 다 어딜간걸까. 휴대전화의 카메라와 디카의 발전이 썩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최근 읽은 책 속의 한 문장이 딱 내 얘기 같다. "가끔 그는 한밤중에 온욕을 한 뒤 불빛 아래서 자신의 몸을 살펴본다. 노화는 피곤해 보이는 것과 좀 비슷하지만, 잠을 아무리 자도 회복되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할 것이다. 올해의 이른바 못 나온 사진이 내년에는 잘 나온 사진이 된다. 자연의 친절한 속임수는 모든 일을 천천히 진행시켜 우리를 상대적으로 덜..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 한 걸음 내딛을 용기 Day 2. 한 걸음 내딛을 용기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 수비리(Zubiri) : 5시간 30분 (21Km) 첫날의 험난함 때문이었을까? 오늘 수비리로 향하는 길은 좀 수월하다. 하지만 단정 짓기 어려운 건 아직 몸이 건네는 말을 잘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국에서의 긴장과 낯선 곳을 걸으며 오는 땅의 전율이 몸 안에 질서 없이 축적되는 기분이다. 완벽한 준비가 세상 어디에 있겠나 생각하며 계속 걸어본다. 생각의 꼬리가 정체 없이 떠돌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마을로 초대하는, 마을 초입의 다리가 낭만적인 수비리(zubiri)에 도착한다. 혼자 떠난 해외여행이 처음인 나는 계속 불안한 상태였고 불안을 잠재우고자 동행을 찾기 시작했다.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더보기
[에세이] 사람은 사랑을 원한다 in 후쿠오카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 일본. 섬나라를 다시 밟은 게 얼마만인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여기가 일본임을 느낀 건 왼쪽에 있는 운전석 때문이다. 들리는 일본어보다 운전석 영향이 더 컸던 건 그만큼 한국 관광객들로 인한 한국말의 범람 때문이다. 한인 무리가 공항을 벗어나고도 한참을 함께했으니. 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준비되지 않은 부분을 자극한다. google 지도에서 먹고 마실 곳을 검색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게 된다. 잘 알려진 곳의 후기를 쓴 사람은 대부분 한국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이 ‘역시 일본사람들은 친절하다’, ‘생각보다 덜 친절한 것 같은데’, ‘일단 일본 직원은 친절하다’ 등의 말들을 적어놓는다. 오호리 호수를 거닐 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왜 친절이 몸에 밴 걸까.. 더보기
[에세이] 가을비 그리고 물구덩이에 담긴 추억 어릴 땐 비오는 날 발견한 물구덩이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그 안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절대 그 길을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발을 풍덩풍덩 담근다. 만약 그날 신은 신발이 장화였다면 흥은 더욱 주체가 안 된다. 물론 그로인해 빨랫감이 늘어난 엄마의 얼굴은 더 굳어갔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잃는 게 너무 많다. 신비함, 경외감, 놀라움이 갈수록 줄어든다. 삶의 모든 것을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것이 꼭 좋기만 한 걸까 생각해 본다. 슬라보예 지젝은 앞으로 맞이할 시대의 위험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보며 놀라거나 경외감을 느끼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길에 물구덩이가 생겼고 혹 신발이나 바지 끝단이 젖을까 신경을 곤두세워 피한다. 물구덩이에 올챙이는 없나, 혹시.. 더보기
[에세이] 뒤통수와 미용실 이발 할 때의 기준이 뒷머리의 길이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날 뒷머리를 거울로 비춰보았는데 정리도 안 되고 보기도 싫어 곧장 미용실로 향했다. 지금 다니는 미용실로 옮기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동네 미용실 디자이너 선생님께 조금 전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자 뒷머리가 무슨 상관이냐며 사람들은 주로 뒷모습보단 앞모습을 보고 머리 자를 때를 판단해 온다고 했다. 나도 늘 그래왔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뜬금없이 뒷머리가 보기 싫어 미용실로 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늘 당연하게 여겼는데 그날따라 디자이너 선생님의 대답이 새롭게 들렸던 건 왜일까. 사람이라는 존재가 본모습보다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좀 서글프고 답답해서였을까. 사실 ‘앞모습’은 우리가 사람들 앞에 비춰지고 싶.. 더보기
[에세이] 사람은 떠나봐야 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유쾌하지 않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 에너지 소모를 일으킨다는 걸 경험한다. 열정이 식어간다는 증거다.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나를 내맡길 수 없어 낯선 곳에 스스로를 두어본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자. 작년부터 시작된 제주 올레길 순례는 낯선 이들과 만나는 파티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제도 그런 하루를 보냈는데,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먼저 다가감에 기분 좋은 미소로 자신을 내보인다. 번잡한 도심에서는 발생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 돌풍과 폭우를 선물로 준 5코스의 끝에 두 번째 숙소에 도착한다. 그곳은 남원읍! 잠시 잊었던 건 도심지를 벗어난 제주는 해가 지고 나면 금세 암흑으로 바뀌고 숙소를 활용하지.. 더보기
[사진 에세이] 4월의 제주 ​​ ​ ​ ​ 5월을 위해 4월에 떠난다. 서울의 하늘은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는데 높고 높은 하늘 위는 이토록 맑기만 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이 이렇게 다르다는 건 인간이 살아내야 할 또 하나의 신비이리라. 우리네 삶에 드리워진 구름이 있을까. 구름 위 맑은 하늘을 대면하기까지 우리는 또 얼마나 어둔 구름 먹구름을 비우고 씻어내야 할까.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 바다의 푸름이 우리 마음 속의 푸른멍은 아닐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던 지난 시절 내 안의 언어들, 감정들. 신빌은 신지 않고 모셔두면 썩기 마련이란다.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 상하기 마련인 것을. 제 값을 찾아 주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무엇이 기다릴지 예감은 접어두고 순간에 힘을 실어준다. 4월의 고통을 지닌 제주는 그럼에도, 넉넉.. 더보기
[에세이] 걷는다는 건 흔히 사람들은 '글자를 발로 썼냐'며 놀리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발로 쓴 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직한 지를 말이다. 울림이 있는 말,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글은 그 사람의 발이 닿았던 현장의 언어들이 아니었는가? 두 발로 걷는다는 건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스승님께서는 걷기란 나뉘고 분열된 땅 혹은 세상을 두 발로 잇는 행위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걷고 또 걷나 보다. 나뉘고 분열된 자아를 다시 찾기 위해, 세상이 하나의 공동체였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무릎의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일상에 틈을 내 걷고 싶다. 그래서 길 없는 그 어딘가에 새로운 길 하나 내고 가면 잘 산 인생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