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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비오는 날 발견한 물구덩이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그 안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절대 그 길을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발을 풍덩풍덩 담근다. 만약 그날 신은 신발이 장화였다면 흥은 더욱 주체가 안 된다. 물론 그로인해 빨랫감이 늘어난 엄마의 얼굴은 더 굳어갔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잃는 게 너무 많다. 신비함, 경외감, 놀라움이 갈수록 줄어든다. 삶의 모든 것을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것이 꼭 좋기만 한 걸까 생각해 본다. 슬라보예 지젝은 앞으로 맞이할 시대의 위험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보며 놀라거나 경외감을 느끼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길에 물구덩이가 생겼고 혹 신발이나 바지 끝단이 젖을까 신경을 곤두세워 피한다. 물구덩이에 올챙이는 없나, 혹시 붕어가 사는 건 아닐까 아니면 미꾸라지라도? 구덩이는 피했지만 가슴 깊숙이 덮어둔 옛날의 내가 질문을 건낸다. 호기심이 사라진 세상, 모든 게 당연해진 세상은 잿빛의 세상이 될 거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져 불안해하는 이를 위해 두 가지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는 경외감이 사라져가는 나와 같은 이에게도 적용하면 참 좋을 해결책인 듯하다. 그는 말한다.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비가 온다. 장화신은 고양이가 그리운 계절이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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