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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사람은 사랑을 원한다 in 후쿠오카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 일본. 섬나라를 다시 밟은 게 얼마만인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여기가 일본임을 느낀 건 왼쪽에 있는 운전석 때문이다. 들리는 일본어보다 운전석 영향이 더 컸던 건 그만큼 한국 관광객들로 인한 한국말의 범람 때문이다. 한인 무리가 공항을 벗어나고도 한참을 함께했으니.   

 

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준비되지 않은 부분을 자극한다. google 지도에서 먹고 마실 곳을 검색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게 된다. 잘 알려진 곳의 후기를 쓴 사람은 대부분 한국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이 ‘역시 일본사람들은 친절하다’, ‘생각보다 덜 친절한 것 같은데’, ‘일단 일본 직원은 친절하다’ 등의 말들을 적어놓는다. 

 

오호리 호수를 거닐 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왜 친절이 몸에 밴 걸까?’로 시작된 질문이 ‘왜 한국 사람들은 누군가의 친절, 불친절에 그토록 민감하지?’로 이어졌고 이것은 ‘왜 나는 상대의 불친절에 그렇게 기분이 상할까?’에까지 이르렀다.

 

성급한 일반화임을 알지만 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랑을 원한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계속해서 확인받고 싶어 한다. 가족이든 애인이든 익명의 그 누구이든 사람은 사랑받기를 원한다(이는 곧 이해받기를 원한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그것이 익명의 그 누구라도 표정과 말투에서 내 기대와 어긋나자마자 잠재된 상처가 분노가 되어 솟아오른다. 어디 한국 사람뿐이랴.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래서 사랑을 원한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일과 돈, 책이나 이념, 운동이나 휴가, 종교나 환상, 결혼과 연애 등에 빠져본다. 하지만 회피한다 하여 달래지는 게 어디 외로움인가. 이놈의 loneliness는 잠잠히 숨었다 본색을 드러낸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물론 사람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그 뭔가가 꼭 눈에 보이는 적극적 행동은 아니지만. 자신과 마주할 용기. 그래서 멈춰 설 용기. 그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 어렵다. 

 

 

어제 입국 심사 할 때 공항직원이 고맙다는 나의 인사말을 받아주지 않자 기분이 상했다. 일본 사람은 다 친절한 게 아니다(라고 여기는 내 속엔 뭐가 든거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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