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나만 아는 장소, 부퍼탈(Wuppertal)

 

누가 내게 물었다.   

 

혹시 나만 알고 있는 그런 장소가 있나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괜히 그리워지는 그런 장소 말이에요.

 

질문을 받고 한참을 생각해 봤다. 그런 곳이 있었나? 여행지부터 떠올려봤는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제주도의 게스트 하우스나 밥집, 카페, 해변이 떠오르긴 하나 그곳은 워낙 유명한 곳들이라 선뜻 제주가 그곳이라 말하기 어렵다. 한 번 이상씩 가봤던 라오스나 일본의 어느 동네가 그런 곳일까 떠올려 봐도 잡히는 게 없다.   

 

질문을 받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은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그런 곳이 될 만한 장소가 떠올랐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일탈하듯 가게 된 독일의 부퍼탈(Wuppertal)이 바로 그곳이다.  

 

 

 딱딱한 얘기를 좀 하자면, 그곳은 과거 독일 나치를 배격하는 ‘바르멘 선언문’이 발표된 곳이고, 이 선언문 작성의 주역으로는 우리가 자주 들어본 신학자인 칼 바르트, 본회퍼 등이 있다. 현대 신학자 중에는 몰트만이 이곳과 본(Bonn) 대학에서 교수로 역임하기도 했다. 이렇듯 부퍼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학자들이 공부와 활동을 했던 곳이고 또 시내를 관통하는 이곳만의 문화인 모노레일 수베베반(Schwebebahn)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갔을까? 전혀 아니다. 그냥 친구 만나러 갔다. 가고 나서 봤더니 그곳이 유서 깊은 곳이었던 거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친구의 환대, 그 동네에 머무는 동안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발로 쌓은 추억들이 그곳을 자꾸 떠올리게 한다. 친구 장모님이 새로 시작한 식당에서 거의 매일 밥을 얻어먹고 마감시간에 청소로 도우며 흘린 땀들이 그곳을 더욱 정겹게 만들었나 보다.   

 

부퍼탈을 가기 전후에 방문한 도시가 다들 크고 번화한 관광지여서 그런지 아담하고 깔끔했던 그곳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혼자 여행하는 기간이 길어지며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쯤 마주한 그곳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가 부퍼탈을 더욱 생각나게 한다.   

 

이제 누가 나만 알고 있는 장소가 있냐고 묻는다면 이제 그런 곳이 한 군데 생겼는데, 아무 정보 없이 가게 된 독일의 부퍼탈이라 말하련다. 뭐 물론 그곳이 소설 <달과 6펜스> 속 화가 폴 고갱의 전존재를 뒤흔든 ‘타히티’처럼 에덴의 순수성을 간직한 곳은 아닐지라도 문득 떠올리면 미소 짓게 되는 그런 곳이 이젠 생긴 거다. 마음의 시차는 유럽과 아시아의 7시간을 거뜬히 뛰어넘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