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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알셀름 그륀(anselm Grun) 신부의 말이다. 그는 야곱의 모습을 통해 한 남자가 전형적인 어머니의 아들에서 아버지가 되어 가는 과정을 포착해 낸다. 이렇게 본다면 참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당연한 운명은 아닌 듯하다. 그는 야곱을 통해 아버지가 되어 가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핀다.


신부는 말하길 처음의 야곱은 전형적인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어머니의 아들에서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가? 그는 우선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는 단계를 거친다. 이 단계에서 그는 어머니의 생활 영역에서 떠나는 것, 형을 피해 도망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를 두고 그륀 신부는 야곱이 자신의 그림자를 피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떠남’은 어머니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과 자신의 진실로 이끌었다. 보호 아래선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기 어려운 법이다.


도망친 야곱은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는 다양한 체험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돌층계의 꿈에서 그는 자신이 무의식과 마주한다. 그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축복하는 하느님을 만난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의지와 영리함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야곱의 이야기에서 가장 잘 알려진 체험은 한 밤 중 일어난 이름 모를 남자와 씨름하는 장면이다. 그는 가장 힘센 그림자와 대면한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에도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는 치열함으로 이젠 야곱(속이는 자)에서 이스라엘(하느님의 투사)로 불리게 된다. 그는 더 이상 투쟁을 피하지 않는다.


삶은 투쟁이다. 야곱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이를 통해 그륀 신부는 말하길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지 않고는 누구도 아버지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하지 않은 아버지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억압된 욕구와 열망의 색안경을 통해 아들을 보게 되기에 그의 아들은 부정적인 남성상을 갖게 되기 쉽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폭력으로 분출하거나 항상 자신의 약점을 안고 살게 된다.


야곱은 ‘그림자와 싸우는 것’과 ‘그림자 앞에서 자신을 부정하며 그림자를 인정’하는 이 두 가지 방식으로 그림자와 대면한다. 하지만 그는 이 두 개의 경우에서 모두 하느님을 인식한다. 그는 이 그림자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혀 다른 하느님 상을 만나게 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빛에서도 어둠에서도 만난다. 평온함에서도, 싸움에서도 만난다. 그륀은 하느님은 다정할 뿐 아니라 우리를 다그치고 상처 입히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처 입을 위험을 감수하고도 싸움에 나서는 사람이 비로소 진정한 남자가 된다. 생물학적 아버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아버지도 되는 것이다.


오늘날 남자가 빠지기 쉬운 가장 커다란 유혹 중 하나는 ‘성공한 삶’이다. 융은 ‘변화의 가장 큰 적은 성공한 삶’이라고 말했다. 쉽게 성공한 남자는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기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 하지만 그는 완벽한 자신의 이미지에 누군가 흠집을 낼까 극도로 두려워한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고 내가 아는 아버지들이 그러했으며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 모습에서 그러한 모습을 본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럼 아버지에게는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자신의 그림자를 피하지 않고 대면한 남자는 어떤 아버지의 모습을 띌까? 그륀은 두 가지를 말한다. ‘단호함’과 ‘용기’ 상황이 요구할 때 아버지는 행동한다. 실수할까 두려워 결정하는 일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새로운 것도 나오지 않는다. 갈등을 피하는 태도는 상황 해결에 전혀 이바지하지 못한다. 다른 한 가지는 용기다. 아버지는 시시콜콜 따지거나 옹졸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마음을 넓다. 아버지는 아이들이나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믿어 준다. 우리 시대에는 이렇게 마음 넓은 아버지가 필요하다.


내 안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아직 인식하지 못한 그림자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난 그림자를 이렇게 정의해본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 나를 움츠러들게 해 불안하게 하는 것, 나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것, 자신을 향한 부정의 언어 혹은 판단들, 화남, 분노 등. 피한다고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건 쉽지 않다. 맞짱을 좀 떠야겠다. 세상의 모든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참고도서]

알셀름 그륀,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분도출판사, p47-59 


*instagram: http://www.instagram.com/ss_im_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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