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네, 은행이 걷는 길목마다 가득 차 있는 가을이다. 일찍 해가 지기에 일찍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떠나는 그런 계절이다. 그래, 머리도 많이 빠지는 그런 가을이다.
가을이란 단어를 메모장 검색란에 쳐본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대인춘풍 지기추상’에 관한 짧은 각주가 검색된다. 선생님은 이 붓글씨에 관해 설명하시길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한다 하신다. ‘자신을 다룸에 엄격해야 한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자신에겐 엄격하며 동시에 남에겐 관대한 것이 가능한 일이긴 하려나. 대인춘풍 지기추상이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그 일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엄격이란 말은 왠지 정이 가질 않는다. 엄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아님 이미 충분히 스스로에게 엄격해서일까. 이 말을 좀 꼬아보고 싶다. ‘엄격’이란 말에는 숨어 있는 전제가 있는데, 이는 자신을 향한 충분한 이해, 넉넉한 신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자신을 엄격하게 ‘사랑’할 줄 알 때, 남 또한 엄격하리만큼 관대하게 대하게 되는 것 아닐까. ‘착함’이라는 부사를 떼어놓으려 애쓴다. 세상의 기준에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정신의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나약함’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언제든 나를 덮치려 준비 태세를 취한다. 방심하면 한 번에 무너뜨리려 하는 듯.
가족.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기보다 나답게 살기 위해 넘어서야 할 산이 참 많다. 자녀를 위해 평생 희생한 부모의 헌신이 가을 문턱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요즘. 부모의 기대와 개별적 존재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 부모에게 춘풍처럼 관대해지기 어려운 건 그분들은 또 하나의 ‘나’이기에 그런 것 아닐까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성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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