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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에세이] 가을비 그리고 물구덩이에 담긴 추억 어릴 땐 비오는 날 발견한 물구덩이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그 안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절대 그 길을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발을 풍덩풍덩 담근다. 만약 그날 신은 신발이 장화였다면 흥은 더욱 주체가 안 된다. 물론 그로인해 빨랫감이 늘어난 엄마의 얼굴은 더 굳어갔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잃는 게 너무 많다. 신비함, 경외감, 놀라움이 갈수록 줄어든다. 삶의 모든 것을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것이 꼭 좋기만 한 걸까 생각해 본다. 슬라보예 지젝은 앞으로 맞이할 시대의 위험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보며 놀라거나 경외감을 느끼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길에 물구덩이가 생겼고 혹 신발이나 바지 끝단이 젖을까 신경을 곤두세워 피한다. 물구덩이에 올챙이는 없나, 혹시.. 더보기
[플래툰 쿤스트할레] 슬라보예 지젝을 만나고 2013년 9월 25일(수) 플래툰 쿤스트할레 _ the zizek / badiou event of philosophy 슬라보예 지젝을 만나다 "멈춰라 생각하라" 그동안 인문학 모임을 통해 책으로만 만나왔던 이를 드디어 청담동에서 만났다. 외국인을 포함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강연장은 만원이었다. 이쪽 저쪽 다양한 분야를 찔러가며 어렵게 어렵게 글을 써나가던 이의 말솜씨는 어떠할지 몹시 궁금했다. 그는 타고난 글꾼이며 또한 말꾼일지 기대가 됐다. 인문학의 오랜 벗, 성공회 신학과 출신의 광민과 감신 후배 연진이와 그곳을 방문했다. 옛부터 교회에서 은혜 받는 자리는 앞자리라고 했던가! 우리 셋은 지젝 선생 앞과 옆에 자리잡아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과 같이 빨간 냄새 풍기는 사람이 .. 더보기
[책]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Part.2 1. 상징적 동일시의 엄격한 정신분석학적 개념의 궁극적 역설은 그 동일시는 명확히 잘못된 동일시, 대타자(들)가 나를 잘못 인식하는 방법과의 동일시라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예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아버지로서 나는 내가 절조가 없는 연약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내 안에서 내가 아닌 것을 - 정당한 대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위엄과 강한 원칙의 사람을 - 보고 있는 나의 아들을 실망시키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나와 동일시하여 사실상 이러한 잘못된(실제적인 나로서 나의 아들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나는 실제적으로 영웅적인 행위들을 완성하는) 인식에 따라 행위하기 시작할 때 참으로 '나 자신이 된다.' 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만약 .. 더보기
[책]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인종적 증오와 효과적으로 싸우는 방식은 그것의 유사자인 인종적 관용을 통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욱 심한 증오이지만 적당히 정치적인 증오 - 일반적으로 정치범을 겨냥한 증오 - 이다. 슬라보예 지젝, , 인간사랑, p.25 증오와 관용은 서로 대립개념이 아니다. 관용의 내면에는 자신도 모르는 증오가 전제되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종적 증오를 '누가' 만들어내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다. 이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 이작가야의 아틀리에 이작가야의 아틀리에(Atelier)입니다. Lee's Atelier www.youtube.com 더보기
[지젝] 까다로운 주체 글귀 모음 1. 권력과 저항(대항-권력)은 서로를 전제하고 생성한다. 즉 부정한 욕망을 범주화하고 규제하는 바로 그 금지 조치가 사실상 그런 욕망을 생성한다. 성적 유혹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피해야만 하는 상황들을 상세히 기술하는 가운데 어떻게 유혹이 작동하는가(단순한 미소, 눈짓, 방어적 손동작, 도움 요청 등이 어떻게 성적 암시를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범한 지식을 드러내는 그 전설적 인물인 초기 기독교의 금욕주의자를 생각해보면 된다. (주체는 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자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이런 압제의 산물로서 출현한다) 슬라보예 지젝, , 도서출판b, p.402 2. 도착증자는 (무엇이 향유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타자에 대한) 답을 알기 때문에 무의식을 배제한다. 그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품.. 더보기
[에세이] 사랑, 말이 가진 한계성 또 다른 전형적 사례는 이제 싹트고 있는 어떤 사랑 관계 속에 긴장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마법적 침묵이 깨어지기 바로 전까지는, 그 상황의 매혹을 알고 있다. 두 연인은 이미 그들이 서로 끌리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으며, 에로틱한 긴장이 감돌고 있으며, 상황 그 자체는 의미를 '수태'할 것처럼, 말을 향해 자신을 재촉하는 것처럼,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명명할 말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단 말이 발음되고 나면, 그것은 결코 완전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실망스런 결과를 낳으며, 매혹은 상실되며, 의미의 모든 탄생은 유산이다. 슬라보예 지젝, , 도서출판b, p.102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표현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 더보기
[청파 Note / 1부] 다시 보게 된다는 것 20120826 청파 1부 예배 설교 다시 보게 된다는 것 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12.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