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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사랑, 말이 가진 한계성

 

또 다른 전형적 사례는 이제 싹트고 있는 어떤 사랑 관계 속에 긴장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마법적 침묵이 깨어지기 바로 전까지는, 그 상황의 매혹을 알고 있다. 두 연인은 이미 그들이 서로 끌리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으며, 에로틱한 긴장이 감돌고 있으며, 상황 그 자체는 의미를 '수태'할 것처럼, 말을 향해 자신을 재촉하는 것처럼,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명명할 말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단 말이 발음되고 나면, 그것은 결코 완전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실망스런 결과를 낳으며, 매혹은 상실되며, 의미의 모든 탄생은 유산이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b, p.102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표현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난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며 적지 않은 사랑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힘들 게 했던 건, 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언어를 갖지 않고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각 자가 태어난 문화와 환경에 따라 그에 맞는 언어를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꾸준한 학습과 경험을 통해 언어를 발전시킨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헌데, 지금의 내 모습을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 본다면 나는 원래 언어를 갖지 않은 존재였고, 언어는 나라는 '주체'를 표현하기 위해,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뿐이다. 그렇다면 인위적인 언어의 생성은 주체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남은 잉여의 부분, 표현되지 않은 그 무엇이 마치 찌꺼기처럼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결여된 주체가 어찌 전 존재를 흔드는, 마음 속 깊이 요동치는 '사랑'을 말(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언어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 함축적은 말을 발견한 시인들은 조금 나으려나? 글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자 했던 작가들은 좀 더 발전된 표현을 가지고 있으려나? 

 

좋아하지만, 그 감정이 언어화되어 내 입에서 발설 되거나, 혹은 메시지(문자, 편지)로 전달 되는 순간, 좋아하는 내 마음은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결핍된 언어의 공간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발설 된 내 말은 '결코 완전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실망스런 결과를 낳으며, 매혹은 상실된다.' 

 

 

이작가야의 아틀리에

이작가야의 아틀리에(Atelier)입니다. Lee's Atelier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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