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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티아고 에세이> Day 8. 위대한 모험에 나를 던지다 Day 8. 위대한 모험에 나를 던지다. 로그로뇨(Logrono) – 나헤라(Najera) : 6시간30분 (30Km)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제 이틀 후면 이 20세기에, 트로이에서 귀향하는 오디세우스와 라만차의 돈키호테, 지옥의 단테와 오르페우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겪은 것과 같은 위대한 모험에 뛰어든다는 생각이 온통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미지의 무언가를 향해 길을 떠나는 모험에”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문학동네, p.25) 의 저자로 잘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는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를 쓴 후 본업이 있음에도 작가라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는 뿐만 아니라 그 후에 쓴 여러 책들을 통해서 사람이 생..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7. 우연이 주는 즐거움 Day 7. ‘우연’이 주는 즐거움 로스 아르고스(Los Arcos) – 로그로뇨(Logroño) : 6시간 (28Km) 오늘은 피레네 산맥을 넘은 후 가장 오래 걷게 될 그런 날이다. 하지만 이놈의 감기는 눈치도 없이 여전히 코와 목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사실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기 가장 꺼렸던 이유 중 하나는 언어 때문이다. 그렇다, 영어 울렁증을 말하는 게 맞다. 이미 일주일 넘게 외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이 울렁증은 어딜 가질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솟아나는 이 긴장감은 길에서 만난 외국 순례자들과 나 사이에 자꾸만 벽을 세운다. 긴 대화를 나누곤 싶지만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접촉’과 ‘회피’라는 모순된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6. 해야 할 숙제를 잊더라도 Day 6. 해야 할 숙제를 잊더라도 에스테야(Estella)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 5시간 (21Km) 처음 오는 곳인데? 에스테야를 벗어나자마자 낯설지 않은 장소가 나타났다.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와인과 생수를 나눠주는 수도꼭지가 등장했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곳도 까미노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념적인 장소 중 하나이다. 첫 순례이기에 길목마다 무엇이 나타날지 다 알 순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다 알 필요도 없는 법이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 산티아고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은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순례자들에게 와인과 생수를 제공하는 수도꼭지와 마주쳤다. 이름 하여 ‘이라체(Irache) 와인 양조장.’ 양조장은 수도원 내에 있는데, 중세 수도원 내부에 있던 순례..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5. 보이지 않는 마음의 유대 Day 5. 보이지 않는 마음의 유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 에스테야(Estella) : 5시간 (22.4Km) 어제 묵었던 마을을 빠져나오다보면 아름다운 다리 하나를 건너게 되는데, 이 다리의 이름은 마을의 지명과 같다. 마을의 이름이자 다리의 이름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즉, ‘여왕의 다리’이다. 이 다리는 여섯 개의 아치로 이루어져있고 10-12세기 사이 유럽에서 유행한 로마네스크의 양식을 띠고 있다. 전해지기로는 11세기 나바라 왕국(Reina de Navarra)의 여왕이 순례자들을 위해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도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여왕의 다리.’ 이곳을 오가던 수많은 사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 더보기
[에세이] 나만 아는 장소, 부퍼탈(Wuppertal) 누가 내게 물었다. 혹시 나만 알고 있는 그런 장소가 있나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괜히 그리워지는 그런 장소 말이에요. 질문을 받고 한참을 생각해 봤다. 그런 곳이 있었나? 여행지부터 떠올려봤는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제주도의 게스트 하우스나 밥집, 카페, 해변이 떠오르긴 하나 그곳은 워낙 유명한 곳들이라 선뜻 제주가 그곳이라 말하기 어렵다. 한 번 이상씩 가봤던 라오스나 일본의 어느 동네가 그런 곳일까 떠올려 봐도 잡히는 게 없다. 질문을 받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은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그런 곳이 될 만한 장소가 떠올랐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일탈하듯 가게 된 독일의 부퍼탈(Wuppertal)이 바로 그곳이..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4. 몸이 건네는 말 Day 4. 몸이 건네는 말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 5시간 (25.5Km) 비가 온다. 순례 시작 이래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가방 저 밑에 넣어두었던 비옷을 꺼내 입고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걷는다. 순례자를 향해 내리쬐던 스페인의 무심한 햇살도 먹구름 앞에선 그 힘을 잃었다. 그래서일까? 무거운 가방을 매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해도 체온이 잘 오르지 않는다. 컨디션도 영 좋지 않아 오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갈팡질팡한 마음이 불안감에 속도를 높인다. 그래도 계속 걷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걸을 것이냐, 멈출 것이냐, 두 선택만 있을 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중간 중간 몸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다보니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3. 역시 삶은 만남인가 Day 3. 역시 삶은 만남인가 수비리(Zubiri) – 팜플로나(Pamplona) : 5시간 30분 (21Km) 여행은 만남이다. 여행이든 순례든 일상을 벗어나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가끔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모든 존재가 특별하겠지만 정말 특별한 한 사람을 이곳 팜플로나에서 만나게 된다. 수비리부터 동행하게 된 친구들과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끼니 해결을 위해 마을 번화가를 어슬렁거린다. 몇 분 후 현정이가 낯선 한 남자와 접선을 한다. 누구지?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 그 접선에 동참한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 체형은 아니다. 콧날은 날카롭고 다리는 매우 길었다. 그는 5월 산티아고 출발자 단톡방에 있던 오승기라는 청년이다. 단톡방에 있던 사람 중 대부분이 그가 외국사람인지 몰랐던 건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일상의 반복이자 일상의 회복, ‘산티아고’ 2. 일상의 반복이자 회복,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개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걷는 길이 바로 프랑스 길(Camino Francés)이다. 나는 고민의 여지없이 프랑스 길을 선택하여 위험과 불안의 강도를 낮춘다. 안정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이렇게 초보 순례자 티를 내게 한다. 그리고 그 프랑스 길을 33일 만에 완주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약 800Km가 되는 길을 33일 만에 걷기 위해서는 하루에 20~30Km씩 꾸준히 걸어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부모님을 따라 가끔 산에 발을 붙이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평소 산을 밟는 일은 연례행사 수준이었다는 말이다. 사전에 철저한 운동 없이 매일 6시간 이상씩 걷는다..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왜 산티아고(santiago)로 떠났나? 1. 왜 산티아고로 떠났나? 몇 해 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고독의 현장에 떨어졌다. 사실 그곳에서 얻은 첫 번째 질문은 산티아고로 향하게 된 계기의 질문과는 다른 것이었다. 처음의 질문은 이러한 것이었지, 아마. ‘너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가?’ 지나 온 시간을 돌아봤다. 누군가 시켰기에,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 여겨서 했던 일이 대부분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했던 일에는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거니와 나 또한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했음을 발견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무엇을 할 때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았던 걸 알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은 쉽사리 바뀌지 .. 더보기
[에세이] 가을비 그리고 물구덩이에 담긴 추억 어릴 땐 비오는 날 발견한 물구덩이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그 안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절대 그 길을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발을 풍덩풍덩 담근다. 만약 그날 신은 신발이 장화였다면 흥은 더욱 주체가 안 된다. 물론 그로인해 빨랫감이 늘어난 엄마의 얼굴은 더 굳어갔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잃는 게 너무 많다. 신비함, 경외감, 놀라움이 갈수록 줄어든다. 삶의 모든 것을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것이 꼭 좋기만 한 걸까 생각해 본다. 슬라보예 지젝은 앞으로 맞이할 시대의 위험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보며 놀라거나 경외감을 느끼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길에 물구덩이가 생겼고 혹 신발이나 바지 끝단이 젖을까 신경을 곤두세워 피한다. 물구덩이에 올챙이는 없나, 혹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