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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나는 당신을 모른다

어느 날, 제주에서
어느 날, 제주에서

 

개그맨 신동엽은 어떤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아주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말을 남겼다. 그는 모르는 여성에게 강한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모르는 여성? 모르는 대상을 사랑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평범한 아재의 원색적 발언이라고 하기엔 심오한 뭔가가 있어 보인다. 


이승우 작가는 그의 최근 소설 <사랑의 생애>에서 아는 사람은 편하지만 매혹의 대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은 편하지 않지만, 때때로 매혹의 대상이 된다. 아는 사람이 매혹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르는 사람으로의 변신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말이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비슷한 일을 경험한다. 아는 듯 하고 알 것 같은 대상은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내 분수를 모르지 않지만 이런 일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라 내 인식의 경계 밖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도저히 모르겠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대상은 내 안의 기생체가 된다. 이승우 작가는 이러한 일을 두고 하나의 ‘사건’이라고 했다. 어떤 대상이 내부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살도록 허락했다는 말이 아니다. 사건은 계약이 아니다. 허락이나 동의가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 한다. 마치 잠자는 동안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우리가 알 수 있는 존재 혹은 아는 존재가 있는가? 대체 우리는 상대에 대해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상대에게 싫증이 나고 사랑이 식어가는 건 내가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고 여길 때라는 말이 있다. 정말 우리는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에 관해 무엇을 알았던 걸까? 소설 속 형배는 그와 사귀었던 여자 친구를 세목이 제거된 ‘하나의 덩어리’ 혹은 ‘윤곽’으로 느꼈다고 했으니. 

무엇이 중요하지 그럼? 상대를 새로운 존재로 보려는 노력,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작업이 필요하다. 작가의 표현을 더 훔쳐보자. 그렇다고 몰라서는 안 된다. 무지가 사랑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인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의식적인 모름, 연인은 의식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알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야 한다. 

흐음, 그래서 늘 그 자리에 있을 법한 사람이 떠난다고 했을 때 그렇게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이작가야의 아틀리에

이작가야의 아틀리에(Ate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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