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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추억] "망원동 에코 하우스" in 책방 만일

'책방 만일'에서의 책 모임 하나가 끝났다. <환경정의>에서 진행했던 책 모임 하나가 끝났다. 결국 같은 모임에 관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두 가지 의미로 나뉘는 책모임이었다. 

 

마지막 책은 고금숙 씨의 <망원동 에코 하우스>. 특별히 저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책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도시에서 어떻게 친환경적인 삶이 가능하며, 에너지 절약을 실천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읽으며 내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불편함과 불만을 발견했고 이것들을 끌어안고 찬찬히 읽어나갔다. 이곳에 남긴 책 속 몇 가지의 이야기는 구체적인 정보 전달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글귀 중심으로 남긴 것들이다. 

 

"누군가 어떤 사람을 단박에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의 애인을 보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여기에 누군가를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사는 집을 보라고 덧붙이고 싶다. 군더더기 없고 치밀한 사람인지, 아기자기하고 낭만적인 사람인지, 살림보다 바깥일이 더 중요한 사람인지, 정물화처럼 놓인 공간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 (p21) 

_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누군가 사는 방 혹은 집은 그 사람의 마음이 물화된 하나의 상징이란 생각이 든다. 방에 놓여있는 물건들의 배열과 정돈이 그 사람의 현재 마음의 상태와 습성을 나타내는 건 아닐까?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에서 저자는 예술가들을 미생물에 빗대어, '사람들이 기피하고 불편하고 후진 지역에 들어가 더러운 거 다 먹어 치우고 깨끗하게 해 놓으면 땅값이 올라 자신들은 떠나야 하는 존재'로 묘사했는데, 참말 진리였다." (p29) 

_ 내가 있는 현재에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 그런 여행을 한 번쯤 떠나보면 좋겠다. 

 

"룸메들은 내 청춘의 성장통이자 쌈짓돈이었다. 만약 혼자 살았다면 혼자였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의존적이고 더 어설픈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룸메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밑바닥을 볼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김어준은 정신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는 방법으로 여행과 연애를 뽑았다. 나는 타인과 살림을 같이 하는 동거 생활을 거기에 보태고 싶다. 연애를 제외하면 선을 넘어 내 영역을 부수고 들어오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가장 진한 경험이 '함께 살기' 아닐까?" (p69) 

_ 정신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는 방법, '여행'과 '연애'와 '함께 살기'. 오, 동의의 '좋아요' 클릭!

 

"시스텡이 변화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 개개인이 바로 시스템이다." 

_ 비 존슨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 박미영 옮김, 청림Life, 2014. 

 

"코스타리카에는 집을 나무보다 높이 지으면 안 되는 지역이 있단다. 나무 잎사귀 아래 집들이 소복이 자리 잡도록 해 자연과 인공물이 서로를 해치지 않으며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력 생산의 91퍼센트를 재생에너지로 얻으며 석유가 발견되었지만 개발을 하지 않는 나라, 국토의 25퍼센트가 국립공원이고 단위 면적당 생물 다양성이 세계 25위인 나라, 코스타리카는 그런 나라다." (p123) 

_ 코스타리카는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그게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물론 코스타리카에 대해 공부해 봐야겠지만, 저러한 삶의 방식을 갖기까지 지난하고 아팠던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제도 즉, 시스템이 받쳐주는 나라, 우리나라에도 시급한 친환경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치...

 

"서울서 '원전 하나 줄이기' 캠페인에는 난데없이 물 절약 얘기가 나온다. 핵 발전소와 수돗물이 뭔 상관일까 싶지만, 수돗물은 물 자원을 전기에너지로 가공해 생산된다는 점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략) 생활에 필요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물 자원의 중요성을 절박하게 보여 준다. 가난한 나라에서 영아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기아도, 전쟁도, 전염병도 아니고 바로 설사다. 많은 아이들이 설사로 수분이 탈진되거나 영양실조로 죽는데,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어 오염된 물에 분유를 타 먹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염된 물 때문에 연간 5백만 명 이상이 죽는다. 전쟁이나 에이즈로 죽는 사람의 숫자보다 많다." (p131) 

_ 원전은 전기를 생산하는 도구이다. 전기 생산을 줄이려면 물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왜냐하면 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기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전을 줄이기 위해서는 물 절약도 함께 가야 한다. 

 

"어쩌면 더운 계절이 가고 추운 계절이 닥치는 대자연의 지극한 순환에 담담하게 대처하려고 간신히 기를 쓰고 버텨 온 인간의 태도가 삶 그 자체를 형성해 왔는지 모른다. 그래도 계절마다, 인간마다 높낮이는 있다. 한여름과 한겨울, 그리고 가난이 한데 뭉치면 아무리 노력해도 '담담하게'가 안 된다. 돈 잡아먹는 계절이라는 푸념이 사치일 만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혹독하고 시린 시간들이 다가온다." (p181) 

_ 가난한 것만으로도 억울한 세상에서, 한여름과 한겨울은 어찌도 이렇게 더 가혹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구나. 

 

"이 '대단한 혁명이 불가능한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적인 연대'란 누군가의 눈물에 공감하기 위해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꿔 내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실천에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오래도록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실천 말이다. (중략) 비전력 커피 로스터로 볶은 탄소 중립 원두로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는 상상을 해 본다. 비전력에서 솟아난 낭만이 언젠가 원전을 무너뜨릴 부드러운 힘이 되리란 확신을, 고집처럼 마음에 새긴다." (p197-198) 

_ 나는 이 문단에서 중요한 단어를 '공감'과 '낭만'에 두었다. 무언가를 바꿔내는 힘을 '혁명'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이 '혁명'이라는 말은 반드시 거창하고 대단한 것만을 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누군가의 눈물에 공감을 하고, 내 일상의 낭만스러움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바라는 이들에게 그들의 그러한 시도는 헛 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공감'과 '낭만'이 큰 바람을 불게 할 것을 말이다. 

 

"하루키의 '심플'이 소박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면 우리 시대의 '심플'은 절박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내 동료들은 그 절박함이 싫다며 서울의 번잡한 공기를 뒤로 하고 하나둘 귀촌을 했다." (p207) 

_ 누군가 말하는 '심플'은 소박함이고, 다른 누군가 말하는 '심플'은 절박함이라고 했다. 이것도 강남순 교수님이 말한 '개념의 향연'일까? 한 단어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의미를 읽는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고, 요즘 우리의 '심플 라이프'는 소박함보다는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한 부자연스러운 절박함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의 삶은 심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스쳐 지나갈 일들, 내 노동을 착취하는 수많은 물건들, 소모되는 감정들에 치이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한가할 때가 아니지'하고 매일같이 되뇌었다. 하루키의 심플 라이프가 현재의 즐거움에 삶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켰다면, 그때의 나는 도박판에서 배팅하듯 미래의 행복에 모든 걸 걸고 있었다. 설사 그것이 도래할지 안 할지 아무도 모를 행복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p207) 

_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행복. 누구도 누군가의 미래의 행복에 대해 함부로 말할 자격이 없지만, 나는 내가 먼저 그렇게 살아볼까 한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는 걸 말이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미국과 캐나다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이 있다. 지름신이 무더기로 당도하는 추수감사절 이후 금요일과 크리스마스 다음 날만이라도 소비주의에 대항해 보자는 시도다." (p214) 

_ 서양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유행했던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독교의 절기는 퇴색된 지 이미 오래다. 추수감사절이 그중 하나일 테다. 그 절기에는 힘써 소비를 하는 거다. 그래도 그러한 나라들 중 두 곳에서 하나의 운동이라고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도 시도하고. 참 흥미로운 동네다. 

 

"사람마다 포기할 수 없는, 그리고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사치가 하나쯤 있다고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 모두 귀농해서 비전력 삶을 살거나 스몰 하우스에서 실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극적으로 인생을 리셋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각자 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더, 꾸준히 실천해 나가면 된다." (p218) 

_ 책을 읽어가며 답답했던 마음이 이 글귀와 만나 조금 편해졌다. 고금숙 씨가 너무 빡세게(?)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를 불편하게 했었나 보다. 땡큐요!

 

"자기 삶을 자립적으로 직조하는 것이 어른이라면, 그 첫걸음은 밥 짓는 냄새를 풍기며 자기 밥그릇을 책임지는 행위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몸을 움직여 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에는 그것만의 고유한 에너지가 있었다. 그건 '소비하는 삶'에서 '생산하는 삶'으로의 이동 같은 것, '의존하는 나'로부터 '내 스스로를 돌보는' 갸륵한 삶의 태도 전환 같은 것이었다." (p224) 

_ 자기 밥그릇을 책임지는 일? 이 말은 돈을 벌어 내 배를 채운다는 말이 아니다. 진짜 밥그릇을 채우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나에게 지어주는 밥, 나를 위해 하는 밥. 나 스스로를 돌본다는 말이 요즘 내가 나를 위해 하는 말과 같이 보였다. 

 

"'스댕'에서 자본주의의 속물성에 반대되는 촌스러울 정도의 소박함이 묻어 나오지 않는가? 생태 지향적 삶을 지향하는 우리 비혼 여성들에게 꼭 맞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골드와 실버는 교환가치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지만, 사용가치가 높은 스댕은 쓰임새로 자신을 입증한다." (p230) 

_ 캬, 명문장이다. 나는 교환가치를 높이기 위해 살고 있는가, 사용가치를 높이기 위해 살고 있는가? 자꾸 이 시대가 사람을 '교환가치'로 여기는 사실 때문에 평범한 노동자들이 설자리를 잃어간다. 쓰임새 없는 사람들이 너무 높은 자리에 가 있다. 

 

"오늘의 이 실천이 개미 눈물보다 작은 환경적 효과를 가져오고 자기 위안에 그칠 뿐이라도 실망하거나 회의에 빠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개별적인 선택 하나하나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며 스스로를 갉아먹지 말 것, 그러면서 개인적인 행동이 제도로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 내 요구하는 것이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는 그 일을 '쭈욱'하고 말테다. 개인적 실천과 구조적 변화가 정반합의 변증법처럼 얽혀야 조금이나마 세상이 바뀔 수 있다." (240) 

_ 실망하거나 회의에 빠지지 말자고 하는 것, 참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강박적이지 않고 스스로를 갉아먹지도 않게 하는 것, 이것 또한 중요한 지점이다.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고 그 길을 걷는 것을 말하는 것일 테다. 개인의 실천과 구조적 변화가 함께 가는 삶, 그 삶을 꿈꾼다. 그래서 당신과 오늘의 나는 다시 일어선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내가 '마을 만들기' 운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도시적 삶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 '공동체'에 있다는 것을, 이제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p312) 

_ 나와 당신은 함께 가는 거다. 물론 내가 먼저 가야 당신도 함께 갈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것을 경유하더라도 우리는 '너'없이 안 되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나아가야 하고, 나와 너는 그에게 더 나아가야 한다. 

 

 #. 고금숙님이 남겨주신 책 속의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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