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쓰임 Note] 시작하며 끝을 생각하다

20150412 쓰임교회 11시 예배 설교

 

시작하며 끝을 생각하다

 

<마태복음 28:1-10>
 
1.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 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의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다.

3.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
4. 지키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서 떨었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6.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7. 그리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8.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나,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여자들과 마주쳐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다가가서, 그의 발을 붙잡고, 그에게 절을 하였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쓰임교회에서 드리는 첫 예배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길 빕니다.

 

오늘은 참 뜻 깊은 날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의미 있는 날과 시간이 많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제 목회인생에 있어 의미 있는 날입니다. 제가 담임자로 사역하게 된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목회인생이라는 말을 논하기엔 목회여정이 무척 짧지만, 그래도 그 부담감만큼은 연륜을 뛰어넘는 무게로 다가옵니다. 비록 성도가 없이 홀로 예배를 드리고 있긴 하지만, 외롭지 않은 것은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쓰임교회를 담임하며 갖는 작은 바람 하나는 이곳에 오는 분들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과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께서 초대하시는 그 초대의 장에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모든 분들이 삶의 의미와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절 이후, 우리의 삶

 

오늘은 부활절 제2주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한 이후,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 그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여인들은 아침 일찍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으로 갔습니다. 무덤에 거의 다다를 즈음, 갑자기 큰 지진과 함께 주님의 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천사는 예수님이 묻힌 무덤을 닫아 놓았던 커다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고 복음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는 여인들을 향해 천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여기에 있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을 만나라는 말을 전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인들은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어리둥절했습니다. 무서움과 기쁨이 교차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향하던 도중 갑자기 여인들은 예수님과 마주쳤습니다. “평안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에 여인들은 온 몸과 마음이 기쁨과 감격으로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고, 나의 형제(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인가

 

이 어리둥절한 사건을 읽으며 우리에게 남은 하나의 단어는 ‘갈릴리’입니다. 천사와 예수님 모두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럼 대체 이 ‘갈릴리’는 어떤 곳일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당장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도 ‘갈릴리’에서 보길 원하셨을까요?

 

성경사전을 찾아보면 ‘갈릴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수께서 성장하신 곳이며(마 2:22), 그분의 공생애 기간 동안 복음 전도 사역의 주 무대가 되기도 했다. 곧,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제자들을 부르셨고(마 4:18-21), 많은 이적을 베풀기도 하셨다(마 4:23). 또한, 이곳에서는 예수님을 섬기며 따르는 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배출되었고(마 27:55),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이곳에서 고기 잡는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등(마 26:32) 갈릴리는 예수님의 지상 생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_ 라이프 성경사전

 

‘갈릴리’는 한 마디로 예수님의 삶이 시작 되었던 곳입니다. 그가 자랐던 곳이기도 하고, 제자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며, 다양한 이적을 베푼 사역의 주 무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지리적 조건 상 여러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기도 하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방인과 혼혈도 많아 그만큼 아픔과 상처가 많은 곳이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예수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갈릴리’는 예수의 삶에 있어 뿌리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영원한 삶의 시간은 없다

 

요즘 들어 저 스스로 모토로 삼는 말이 있습니다. ‘영원한 삶의 시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시간, 조건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모임이 불현 듯 끝이 난다거나, 보고 싶을 때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과의 만남도 금세 끝이 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할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내가 싫증내는 이 삶의 패턴도 곧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뒤돌아보면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것이 시작될 때도 끝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에 현실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든 이 순간이 끝날 수도 있기에 현실에 충실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부활을 이야기하며 이미 ‘갈릴리’를 염두 해 두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일상을 성실히, 또 꾸준히 살아내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부활의 의미였습니다.

 

쓰임교회 첫 예배를 드리며

 

쓰임교회, 첫 예배를 준비하며 저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과 잇대어졌습니다. 첫 담임목회를 시작하는 마당에 마지막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방금에도 말씀 드렸듯이 이 시간을 그리워할 순간이 올 수 있기에 첫 걸음부터 성실히 내딛어 보려 합니다.

 

부활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주일! 예수님께서 부활 이후, 처음을 상징하는 ‘갈릴리’를 떠올렸듯이 저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들도 다양한 삶의 모습 속에서 처음과 끝, 시작과 마지막의 경계에 선 삶을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한 주간의 삶도 주님과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문학생활

이작가야의 문학생활 (Lee's LiteratureLife)

www.youtube.com

 

이작가야의 말씀창고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입니다. 말씀을 묵상합니다.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