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책 Note] "영혼의 성"과 함께하는 기도

'예수의 데레사'가 쓴 책 <영혼의 성>을 읽어가며 '기도'에 관해 공부해보려 합니다. 이 책은 '재속탐문수행공동체'에서 멤버들과 함께 읽고 있는 선정도서입니다.

데레사는 16세기 사람으로 초기 가르멜의 엄격성을 부활시킨 '맨발의 가르멜회'를 세운 설립자입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의 종교적 부패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1515년 스페인 아빌라의 명문 집안에서 삼남매의 셋째로 태어났으며, 13세에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를 여의었고, 20세에 규칙이 완화된 '가르멜 강생 수녀원'에 입회합니다. 그러나 불과 일 년을 못 채우고 몸이 아파 수녀원을 나오게 됩니다. 그녀는 24세인 1539년, 병세가 악화되고 의식을 잃어 장례준비까지 하였으나 4일 후 깨어났고, 이후 3년간 전신불수로 병실에서 생활을 하다가 27세인 1542년 성 요셉의 기도와 치료로 완쾌하여 본격적인 영성생활에 들어갑니다.

<영혼의 성> 이 책은 그녀가 막 60세가 넘었던 1570년대 후반에 집필한 책입니다. 그녀는 기도에는 마치 단계를 나누듯 일곱가지의 '궁방'이 있다고 말합니다.


<제 일 궁방>

데레사는 사람의 영혼 안에 '궁실'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영혼을 금강석이나 아니면 맑디맑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궁성으로 보는 것으로서, 거기에는 마치 하늘에 자리가 많듯이(요한 14,2 참조) 여러 궁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23)

이 단계의 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기도와 생각이 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이 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내 나름으로는, 기도와 생각입니다. 구태여 나는 여기서 구송기도(공동기도문을 반복해서 읽는 기도)보다 묵상기도를 더 내세우지 않습니다. 입으로 하는 기도라도 생각이 함께 있어야 하기에 말입니다. 사실 누구와 말하는지도 모르고, 비는 것이 무엇인지, 누가 누구에게 비는 것인지 생각지 않는 것은 아무리 입술을 많이 놀린다 해도 나는 그것을 기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28)

이 일 궁방의 사람들은 결코 나쁘거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비록 세속에 빠져 있기는 할망정 마음만은 착하고 때로는 조금씩이나마 주께 빌어보기도 하고 오랫동안은 아닐망정 자기 자신을 반성하기도 합나디." (28-29)

일곱개의 궁방이 존재하지만 기도하는 영혼을 한쪽에 가둬두거나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일은 많든 적든 기도를 하는 어느 영혼을 한쪽에 가둬두거나 묶어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든, 아래든, 옆이든, 영혼이 제 마음대로 이 궁실들을 드나들게 버려두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어마어마하게 높여주신 영혼을 오랫동안 한 궁방에만 가둬둔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35)

이 궁실의 가운데에는 임금님이 계신다고 표현하는데, 안타깝게도 임금님이 계시는 궁실에서 나오는 빛이 이곳까지 비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첫 궁방들에는 임금님이 계시는 그 궁실에서 나오는 빛이 조금도 비치지 않습니다. 영혼이 대죄 중에 있을 때처럼 그렇듯 검고 칙칙하지는 않아도 약간 어둑하기 때문에 그 방에 있는 이가 빛을 못 보는 것입니다. 빛을 못 보는 것은 방 탓이 아니고, 영혼과 함께 들어온 그 몹쓸 뱀들이며 독사와 독충들이 빛을 보게 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39) 빛이 미치지 않는 건 우리 마음의 탓이 아닌가 봅니다.

데레사는 후배 수녀들을 위해 기도를 쌓아가는 과정 중에 경계해야 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따님들이여, 잘 알아둡시다. 참다운 완덕이란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이웃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 두 가지 계명을 완전히 지킬수록 우리는 그만치 완전한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회칙과 회헌의 모든 것이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것을 더욱 완전하게 지키자는 방법일 따름입니다. (중략) 매우 중요한 것이 서로의 사랑이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이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42)

#. 참 자아를 아는 과정과 참 하나님을 아는 과정은 다르지 않다.
#. 기도의 과정은 평평하지 않다.
#. 기도 중에 어떤 분심이 반복되는지 지켜보라. 


<제 2 궁방>

이 궁방의 영혼들은 첫 궁방의 그들보다 더 큰 괴로움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더 앞 궁방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버렸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런 영혼들은 첫 궁방의 그들보다 위험은 적지만 더 큰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위험이 적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위험을 알고 있고, 성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희망이 짙기 때문입니다. 더 큰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는 말은 첫 궁방 사람들이 벙어리, 귀머거리 같아서 못 듣는 바에야 말 못하는 것이 그리 큰 괴로움이 아닌 데 비하여, 듣기만 할 뿐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훨씬 더 고생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못 듣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것은 아닙니다.” (46) 

 

이 단계의 궁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 줄기찬 인내입니다. “주께서 당장 들어주시지 않는다 해서 풀이 꺾일 것도 없습니다. 몇 날이 되었든, 몇 해가 되었든, 주께서는 당신이 알아서 기다리시고, 인내와 착한 뜻을 보실 때는 더욱 그러하신 것이니, 여기서 제일 필요한 것은 줄기찬 인내, 이것만 있고 보면 반드시 막대한 소득이 있습니다.” (47)

 

하지만 이 궁방은 쉽지 않은 궁방입니다. “여기서는 악마들이 백천 가지로 무서운 공격을 가하고, 한편 또 영혼은 지나온 궁에서보다 훨씬 더 괴로움을 치르게 됩니다. 지성이 예민하고, 영혼의 능력들이 활발하고, 적의 공격과 포성은 치열하니 그것을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7)

 

하지만 내적인 소동은 많지만 우리를 일깨워주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이성은 영혼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이성이 찾고 있는 것에 비하여 위에 말한 모든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신앙은 또 만족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기억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끝나는 모습들을 펼쳐 보입니다.” (48) 이성, 신앙, 기억이 우리를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괴로움을 겪는 영혼들은 같은 궁방에 사는 이들뿐 아니라 궁의 중심에 바싹 다가가 있는 이들과 접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영혼에 있어 중요한 일은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 마음을 서로 통하는 것, 그리고 같은 궁방에 사는 그들뿐 아니라 궁의 중심에까지 바싹 다가가 있는 그들과 접촉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간 큰 보람이 있는 일이 아니니,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이해를 깊이 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이들을 자기네 궁방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49-50)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악마(부정적 존재가 아님)와 싸울 무기인데, 가장 좋은 무기는 ‘십자가’입니다. “모든 악마들과 싸움을 하려는 마당에,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그런데 그 무기 중에 가장 좋은 무기는 십자가밖에 또 없는 것입니다.” (50) 여기서 중요한 건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십자가’는 나의 괴로움을 계속해서 지켜보겠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나의 괴로움을 투사해서 비난하지 않겠다는 의지적인 차원인 것입니다. 

 

데레사는 후배들에게 괴로움을 참을 수 있거든 실컷 참아보라고 말합니다. “도리어 주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끌어안으십시오.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의 할 일임을 깨달으십시오. 주님을 위하여 되도록 많은 괴로움을 참을 수 있거든 실컷 참아보십시오. 그런 사람일수록 행복이 더할 것입니다. 참는 일 말고 다른 것들은 오직 덤일 따름이며 주께서 주신다면 그저 백 번 감사드리십시오.” (51) 참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영성의 길에서 최고의 완전성은 여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도생활로 접어든 사람이 가져야 할 열망의 전부는 (매우 중요한 이 점을 잊지 마십시오) 있는 정성을 다하여서 자기의 뜻을 주님의 뜻에 맞추기로 노력하고, 결정하고, 준비하는 데 있습니다.” (51) 

 

그러나 또한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에서도 주님은 선을 이끌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혹시 떨어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용기를 잃어 앞으로 나아갈 노력마저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해독제를 파는 사람이 먼저 독을 마셔보고 그 약의 효능을 시험하는 것처럼, 주님은 그러한 실패에서도 선을 끌어내시기 때문입니다.” (52) 

 

그저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주님의 자비’입니다. “벌써 망신살이 뻗쳐 있으니 털끝만치도 자기를 믿지 말고 오직 주님의 자비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주께서 이 궁방에서 저 궁방으로 옮겨 주셔서 다시는 짐승들이 접근하거나 괴롭히지 못할 자리에 들게 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53) 

 

우리의 내부에서 활동하는 악마(나쁜 존재 아님)나, 누군가를 사로잡고 있는 악마(감싸줘야 할 존재)는 부드럽게 다뤄야 합니다. “악마가 일으키는 야단법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 그리고 마음을 거두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억지 손을 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끌 수 있도록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다만 이런데 경험이 있는 분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퍽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53) 

 

기도는 자기 인식, 자신의 비참함과 더불어 주님의 자비를 경험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할 것입니다. “이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기도라고 일러드렸습니다. 보십시오, 자기 안으로 들어감이 없이, 즉 자아 인식이 없이, 우리의 비참과 아울러 주님께 받은 바를 생각하여 자비하심을 열심히 기도함이 없이 천국만 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54) 

 

#. 독사, 독충, 해충은 내 가면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어둠, 그늘)’를 말한다. 

#. 기도과정은 그 ‘그림자’를 발견하고 마주하는 것이다. 

#. ‘괴로움’은 분심이다. 

#. ‘십자가’는 나의 괴로움을 계속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서 비난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제 3 궁방>

자신의 노력으로 이곳까지 이를 수 있기에 제3궁방은 ‘수덕적 영성’의 단계다. 다음 궁방인 제4궁방부터는 주어지는 것임으로 ‘주부적 영성’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노력과 애씀으로 이를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인 제3궁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제1장 _ 이 궁방에 들어선 사람에게 해 줄 말은 ‘행복하여라’이다. 싸움과 노력으로 이곳에 이른 이는 뒤돌아서지 않는 한 구원의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는 주께서는 ‘양심의 안전’도 주신다. 이 ‘양심의 안전’은 데레사의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볼 때(2-4), 자신의 두려움, 불안함, 부끄러움 등 자기의 양심에 비춰볼 때 주님 앞에 내세울 것 없는 스스로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안전할 수 있게 되는 어떤 선물 같은 것을 말하는 듯하다. 

 

제3궁방에 들어간 영혼들은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세상에 주님의 은혜를 입은 영혼들은 많은데, 그들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바람직한 태도를 지닌 이들이다. 그들은 마지막 궁방에까지 못 들어갈 이유가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말보다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복음서(마19:16-22)에 등장하는 한 청년은 그렇게 못하였지만 자신이 놓지 못하는 것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일인데 주께서는 그런 고통으로 영혼들에게 큰 이익을 주신다. 

 

이 궁방에 이른 이들은 자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자질구레한 일들에 집착하지 말고 임금님이 계신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하지 말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는 이는 겸손이 모자라 그렇다고 여겨진다. 그들은 주께 마땅히 할 일을 하되 실천적인 사랑을 보여드려야 한다. 주는 그들의 실천을 위해 의지와 결정만을 요구하신다. 

 

3궁방에 들어간 이들은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새삼스럽게 무슨 은혜나 호강을 더 바랄 것 없이, 그들을 섬기신 일(죽음, 창조, 만남)로 당신께 빚진 만분의 일이라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주께서 깨우침을 주시면 영혼의 메마름의 불안이 커지기는커녕 도리어 겸손을 얻게 될 것이다. 영혼이 정말 겸손하다면, 하느님께서 위로를 주지 않아도 평화와 순종을 누릴 것이다. 

 

▍제2장 _ 이 궁방에 이른 사람들은 이미 세속을 정복하고 일체의 미망(迷妄)을 깨친 듯 보인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시험을 한번 하시자, 다들 안절부절못하고 술렁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충고를 해줄 도리가 없는 것은 그들은 오랫동안 덕을 닦아왔고 스스로 남을 가르칠 사람으로 알고 있고, 시련을 못 견딤에는 이유가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네가 괴로워하는 것이 하느님 때문이라 생각해 이유란 이유를 모두 다 끌어 들인다. 사실 하느님은 당신이 뽑은 사람들이 스스로 비참을 느끼게 하시는 일이 종종 있어, 잠시 당신의 도우심을 거두기도 하신다. 그 도움이 잠깐 사라지자마자 그들은 자신이 어떻다는 것을 당장 알게 된다. 또한 대단치도 않은 것에 슬퍼하는 자신을 보고 더욱 쓰라리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겸손을 얻었기에 이것 또한 하느님의 큰 자비이다. (#. 3궁방의 사람들은 붉은색 글씨에 나타난 사람들과 같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3궁방에 이르러서 시험에 든 사람들은 시련을 무슨 거룩한 것처럼 생각하고 남들까지 거룩하게 보아주기를 바란다. 대신 그들은 미리 정신을 차리고 그들 자신을 알고자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임금님 가장 가까이 있는 궁방에까지 제 힘으로 못 올라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다. 자기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번민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자신의 괴로움을 남의 잘못으로 생각하지 말고 잘 참아내야 한다. 

 

이 궁방을 통해 다시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매사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의 의지에 일치시켜야하고 자기 생활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맞추어나가서 오직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한다.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다면 ‘겸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상처를 낫게 하는 고약이다. 또 물론 나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몸을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하느님을 섬기거나 사랑하는 일에는 아직 먼 것처럼 여겨진다. 자신의 몸 걱정은 어른들(성인들)께서 알아서 하시라 하고 다만 자기는 주님을 뵙고자 어서 길을 서둘러야 한다. 역시 이 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인데, 이 겸손은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항상 뒤쳐졌다고 여기는 개념이다. 

 

제3궁방에서 주님은 공의하시기보다 자비하신분답게 우리에게 분수에 넘치도록 갚아주신다.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그러한 ‘만족’을 주신다. 그렇지만 영혼의 ‘맛’만은 그리 많이 주시지는 않는다. 맛을 느끼게 하는 건 더 높은 궁방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게 하기 위함이다. 만족이나 맛에 관한 차이는 제4궁방에 가서 확인하도록 하겠다. 하느님이 4궁방까지 끌어주시는 사람은 큰 위로를 깨닫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부끄럼을 느낄 텐데, 도리어 겸손하다면 그럼에도 주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완덕이란 맛에 있지 않고, 더욱 사랑하는 데 있으며 정의와 진리를 가지고 보다 더 일하는데 있고, 상급도 거기에 달려있다.

 

주께서는 의로우셔서, 우리 잘못이 아닐 때에는 다른 길로 잘 인도해 주실 것이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바는 그 길은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길이 될 것이다. 

 

제3궁방에 있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힘을 다해 신속히 ‘복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도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는 일로, 매사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기 위해 ‘지도자’를 갖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속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이 세상의 미망을 환하게 깨친 사람, 세상을 달관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 이는 아기 새가 어미 새에게 날기를 배우는 것과 흡사하다. 단번에 훨훨 날 수야 없지만, 차차로 제 어미를 닮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을 거스르지 않기로 굳은 결심을 하고는 있지만, 거스르는 기회를 가까이 않도록 마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첫 궁방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아 그 궁방으로 되돌아갈 염려가 있으니 말이다. 3궁방의 이들은 아직 깊은 땅속에 뿌리를 박지 못했고 세상의 산전수전을 겪지 못했으며 무서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사람들이 못 된다. 남들을 죄악에서 구하겠다고 열심을 내면서 막상 자신에게 닥치는 유혹을 막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이들의 겉모양이나 사는 법이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 보인다하여도 그들과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하고 또 우리와 같은 길을 가야 한다고 내세울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도 무엇인지 잘 모르는 영혼의 길을 함부로 가르친다고 덤빌 것도 아니다. “항상 침묵과 희망 속에서 살기를 힘쓰라.”는 회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 3궁방의 사람들은 외적으로 보면 이미 기도생활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다. 생활과 신앙에 있어 모범적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위기는 자신의 '의로움'이다. 3궁방의 사람들은 기도에 대해 권태롭고 메마름을 갖고 있다. 바뀌지 않는 것들로 인해 불안해 하게 된다. 이들은 하나님을 완벽을 요구하는 분으로 여긴다. 

#. 그럼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이러한 자문이 필요하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