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Note / 민수기 (6)] 슬로브핫 딸들 헤아리기

2022. 6. 15. 16:30Note

20220616 청파교회 새벽설교

 

슬로브핫 딸들 헤아리기

 

<민수기 27장 6-11절> 

 

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7. "슬로브핫의 딸들이 한 말이 옳다. 그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너는 그들에게도 반드시 땅을 유산으로 주어라. 너는 그들의 아버지가 받을 유산이 그 딸들에게 돌아가게 하여라. 

8.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두어라. 어떤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유산을 딸에게 상속시켜라. 

9. 만일 딸이 없으면, 그 유산을 고인의 형제들에게 주어라. 

10. 그에게 형제마저도 없으면, 그 유산을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상속시켜라. 

11. 아버지의 형제들마저도 없으면, 그 유산을 그의 가문에서 그와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서, 그가 그것을 물려받게 하여라. 나 주가 모세에게 명한 것인 만큼, 여기에서 말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지켜야 할 율례이다."

 

 

화의 시기 

 

광야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크고 작은 변화를 겪습니다. 여러 변화 가운데 민수기 26장에서는 민수기 1장에 이어 하나님의 두 번째 인구조사가 실시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민수기 27장에 이르러서는 모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됩니다. 

 

두 번째 인구조사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지를 반증합니다. 왜냐면 첫 번째 인구조사 때와는 달리 그 대상이 새로운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지난 한 세대를 보내고 새로운 세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변화의 시기를 맞아, 이스라엘 민족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인구조사를 실시하십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인구조사와 맞물려, 지도자 또한 세대교체가 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1. 새로운 인구조사와 2. 새로운 지도자 선출 사이에 흥미로운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그 사건은 바로 상속권에 관한 것입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용기

 

사실 민수기 26장의 인구조사와 더불어 행해진 것은 바로 ‘땅 분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인구조사를 실시함으로 앞으로 열 두 지파가 받게 될 땅을 분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파의 인원수대로 1. 그 수가 많은 지파에게는 넓은 땅을 또 2. 그 수가 적은 지파에게는 작은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땅을 분배하는 과정 중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므낫세 지파의 자손 중에 ‘슬로브핫’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섯 딸만 남겨둔 채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듯이, 당시 인구조사나 땅 분배는 모두 남성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1. 인구조사에는 남성의 수만 포함됐고 또 2. 땅 분배도 아들들을 중심으로 주어졌습니다. 당연히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었기에 그의 자녀에게 주어질 유산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슬로브핫의 딸들이 용기를 내어 모세에게 나아옵니다. 그들은 몹시 떨리는 마음으로 모세에게 나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막상 가나안에 들어가더라도 자신들이 정착해서 살 땅이 보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모세에게 말합니다.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가족 가운데서 아버지의 이름이 없어져야 한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우리에게도 유산을 주시기 바랍니다.”(4) 그녀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필요를 전했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고민

 

모세는 그녀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한 말이 옳다. 그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너는 그들에게도 반드시 땅을 유산으로 주어라. (...)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두어라. 어떤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유산을 딸에게 상속시켜라.”(7-8) 하나님은 엄할 땐 매우 엄하시지만, 그보다 훨씬 자비가 많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슬로브핫 딸들’의 처지를 헤아리셨고, 그녀들과 비슷한 처지가 될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율법과 규례를 제정하셨습니다. 1. 아들이 없는 부모의 유산을 딸들에게 물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2. 딸들마저 없거나 3. 그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셨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상속권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녀들은 살길이 막막해지자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들은 다른 지파들이 약속의 땅을 분배받는 과정 중에, 자신들의 처지가 가려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기뻐하고 기대하는 과정 가운데에, 자신들은 소외되어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들은 고민이 됐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밝혀야 할지 그렇게 된다면 괜히 모세나 동족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됐을 것입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처지 헤아리기

 

그렇기에 슬로브핫 딸들의 용기는 참으로 대단합니다. 구약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경우는 몇 없는데, 그 목소리 중 하나가 바로 슬로브핫의 딸들의 목소리인 것입니다. 그녀들은 어쩌면 공동체 안에서 그림자처럼 살았던 자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앞만 보며 나아갈 때, 변방에 서 있던 그런 소외된 자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벽에 부딪치거나 구석에 내몰릴 때 신음하기 마련입니다.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아픔의 소리를 호소한다면, 그 사람의 목소리에 잘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숱한 고민 끝에 낸, 작은 용기의 호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모든 사람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어떤 일이든 자신이 직접 겪어봐야 그 일의 무게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누군가 처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겪어봐야 우리는 그 상황의 무게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문득 김연수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라는 말말입니다(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014, p.191). 슬로브핫 딸들의 용기도 굉장히 높이 사야 하지만, 그녀들이 용기를 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녀들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모두가 기대하며 기뻐하는 가운데, 홀로 낙심했던 슬로브핫 딸들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그녀들의 불안한 미래처럼, 누군가 우리 곁에서 불안해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해 주십시오. 혹시 나의 일상이 너무 고립되고 구석에 내몰린 것 같아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나 자신 또한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아멘!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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