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Note / 새벽] 모세와 여호수아라는 스승과 벗

2019. 11. 5. 11:08Note

20191102 청파교회 새벽설교

모세와 여호수아라는 스승과 벗

<여호수아 12장 1-24절>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강 동쪽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 산까지, 동쪽 온 아라바를 무찌르고 점령하였는데, 그 땅의 왕들은 다음과 같다. 
2. 하나는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다. 그는 아르논 골짜기 끝에 있는 아로엘에서 골짜기 중간과 길르앗의 반쪽과 더 나아가서 암몬 자손의 경계인 얍복 강까지를 다스렸다. 
3. 그는 또한 아라바 동쪽 방면의 긴네롯 바다까지와 아라바의 바다, 곧 동쪽 방면의 사해, 벳여시못으로 통하는 길까지와 남쪽으로는 비스가 산 기슭까지 다스렸다. 
4. 또 하나는 바산 왕인 옥이다. 그는 르바 족 가운데서 살아 남아,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서 살고 있었다. 
5. 그는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과 길르앗의 반쪽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 헤스본 왕 시혼이 다스리는 땅의 경계선까지 다스렸다. 
6. 이 두 왕은 바로 주님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무찌른 사람들이다. 주님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주어서 소유로 삼도록 하였다. 
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인 할락 산까지, 그 땅의 왕을 모두 무찔렀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그 지파의 구분을 따라 그 땅을 나누어 주어서 가지게 하였다. 
8. 그 땅은 산간지방과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로서,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남쪽에 있다. 
9. 그들이 무찌른 왕들은 다음과 같다. 여리고 왕이 하나, 베델 근처의 아이 왕이 하나, 
10. 예루살렘 왕이 하나, 헤브론 왕이 하나, 
11. 야르뭇 왕이 하나, 라기스 왕이 하나, 
12. 에글론 왕이 하나, 게셀 왕이 하나, 
13. 드빌 왕이 하나, 게델 왕이 하나, 
14. 호르마 왕이 하나, 아랏 왕이 하나, 
15. 립나 왕이 하나, 아둘람 왕이 하나, 
16. 막게다 왕이 하나, 베델 왕이 하나, 
17. 답부아 왕이 하나, 헤벨 왕이 하나, 
18. 아벡 왕이 하나, 랏사론 왕이 하나, 
19. 마돈 왕이 하나, 하솔 왕이 하나, 
20. 시므론므론 왕이 하나, 악삽 왕이 하나, 
21. 다아낙 왕이 하나, 므깃도 왕이 하나, 
22. 게데스 왕이 하나, 갈멜의 욕느암 왕이 하나, 
23. 도르 언덕의 도르 왕이 하나, 길갈의 고임 왕이 하나, 
24. 디르사 왕이 하나이다. 이 왕들은 모두 서른한 명이다.

정복과 분배

안녕하세요! 오늘 본문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본문의 경우, 끊어 읽기도 어렵고 또 발음하기도 어려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기에, 입이 풀리지 않은 이 새벽에 읽기에는 무척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12장 말씀을 모두 읽었던 건, 오늘 ‘여호수아서’의 흐름이 여기서 한번 끝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1-12장까지는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쟁’이야기가 중심이었고, 바로 이어지는 13장부터는 ‘가나안의 영토 분배’가 그 중심이 됩니다. 초반부는 ‘정복’, 후반부는 ‘분배’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모세의 시작, 여호수아 마무리

그럼 ‘가나안 정복’을 마무리하는 이 12장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겼는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2장 서두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인 ‘모세’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가 정복한 왕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의 일’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흠이 없는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택하십니까?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듯, 후계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후계자가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모세’를 통해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가 그의 후임인 ‘여호수아’에 이르러서야 마무리가 됩니다. 

이런 부분이 저는 참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시작될 순 있어도, 그 일을 지속하거나 완수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저의 맘을 참 새롭게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을 읽거나 묵상할 때마다, 내 안에 있는 과도한 ‘욕심’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게 됩니다. 

결국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지 않고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모세를 만난 여호수아

그리고 이어서 보자면, 12장 중반부터는 ‘여호수아’가 정복한 왕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가 여러 왕들을 점령했다는 것은 곧 그가 점령한 영토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먼저 ‘모세’의 경우, 넓은 땅을 점령 중이던 두 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두 왕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다 거론하기도 힘들 만큼의 여러 왕을 정복했습니다. 성경에는 31명의 왕을 정복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 정복한 왕의 숫자로만 본다면, 모세와 여호수아를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여호수아가 점령한 왕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수아’가 ‘모세’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여호수아가 좋은 지도자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 또한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만, 여호수아가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계기는 ‘좋은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자기 한계를 아는 모세

여호수아는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스승은 당연히 모세를 가리킵니다. 좋은 스승은 좋은 제자를 알아보고, 좋은 제자는 좋은 스승과 잘 관계를 맺습니다. 물론 모세는 자신의 능력  만으로 여호수아를 찾아낸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를 이뤘던 인물이었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으로 후계자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뽑힌 후임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죠. 좋은 스승은 혼자 모든 일을 완수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자면, 모세의 경우에 좀 억울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진행했던 출애굽 사건의 마지막을 자신은 보지 못한다는 게 어쩌면 좀 억울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그 말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역할과 능력, 자신의 한계까지 아는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귀 기울이는 여호수아

그리고 여호수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또한 자기 스스로를 잘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세로부터 시작된 이 대업을 이어서 하는 게 두렵고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마음을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았고 정직하게 그분 앞에 섰습니다. 왜냐면 성경을 보면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응원의 메시지’가 여러 번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모세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듯, 모세의 말에도 잘 귀 기울인 인물이었습니다. 

스승이라는 존재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모세와 여호수아는 좋은 스승과 좋은 제자의 관계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이어가는 ‘사제지간’이자 ‘동료’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잘 아실 텐데요. 스승과 제자는 서로 가르치는 동시에 서로 배우는 자임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연히 만난 누군가를 통해 깊은 인연을 맺게 하기도 하고, 또 그 만남을 통해 뜻밖의 배움을 주고받게 하기도 하십니다. 사실 ‘배움’은 모든 곳에 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아주 가까운 곳에, 아주 가까운 이들 곁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스승’임과 동시에 누군가의 ‘벗’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누군가에게 스승 같은 존재는 아니었는지, 아니면 내 곁에 스승 같은 존재가 있었던 건 아닌지를 한번 떠올려보시는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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