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청파 Note / 새벽] 우리의 시선

20191026 청파교회 새벽설교

우리의 시선

<여호수아 11장 16-23절>

16. 이렇게 여호수아는 이 모든 땅 곧 산간지방과 네겝 지방과 모든 고센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간지방과 평지를 다 점령하였다.
17. 그리고 세일로 올라가서,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계곡에 있는 바알갓까지, 모든 왕을 사로잡아서 쳐죽였다.
18. 여호수아는 여러 날 동안 이 모든 왕과 싸웠다.
19. 기브온 주민인 히위 사람 말고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 주민이 하나도 없었다. 나머지 성읍은 이스라엘이 싸워서 모두 점령하였다.
20. 여호수아가 이들 원주민을 조금도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친 까닭은, 주님께서 그 원주민들이 고집을 부리게 하시고,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망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전멸시킨 것이다.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간지방과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의 온 산간지방과 이스라엘의 온 산간지방에서 아낙 사람을 무찌르고, 그 성읍들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서는, 오직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을 제외하고는, 아낙 사람으로서 살아 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23.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모든 땅을 점령하고, 그것을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을 따라 유산으로 주었다. 그래서 그 땅에서는 전쟁이 그치고, 사람들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지역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은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그럽니다. 날이 추워질수록 우리의 온기가 필요한 이들을 떠올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그동안 여호수아가 정복한 지역이 정리되어있는 부분입니다. 여호수아는 산 위의 민족이나 평지에 살던 민족이든 가릴 것 없이 가나안을 향한 길목에 있으면 그 민족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물론 먼저 싸움을 걸어오는 민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산간지방이든 평지든 어느 곳에 있는 민족이든 그 왕의 목숨을 빼앗았고 그들의 땅 또한 점령했습니다. 

물론 이 일들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이뤄진 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러 날 동안 이 모든 왕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딱 한민족 ‘기브온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이스라엘 민족과 화친을 맺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모든 민족은 이스라엘이 직접 전투를 통해 점령을 했습니다. 

여러 원주민이 전멸된 이유

그런데 이 20절의 경우, 우리의 기독교인들의 ‘신앙 노선’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실 텐데요. 사실 이런 부분이 성경을 읽는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때론 더 난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반복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구약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모세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여러 민족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여러 민족을 점령했다는 말은 곧 그 민족이 몰살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힘을 입어 여러 민족을 물리쳤고 또 여러 민족을 정복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군뿐 아니라 엄청난 적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본문 20절에, 여호수아가 여러 민족을 전멸시킨 이유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희생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이유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죠. 여호수아가 원주민을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전멸시킨 이유는 모두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유 없이 그들을 몰살시킨 건 아니었는데, 여러 민족이 이스라엘에게 전멸당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주 고집이 세게 만들어, 절대 타협하지 않게 만드셨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망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참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위태로운 신앙의 노선

아마 예상하건데, ‘여호수아의 저자’는 잔인하고 무분별해 보이기까지 하는 ‘여호수아의 행동’에 근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런 부분이 어떻게 다가오시는지요. 

제가 아까 ‘신앙의 노선’이 구분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 같은 구절을 기독교 신앙의 특수성 혹은 유일성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나 혹은 우리 교회 혹은 우리 집단이 가진 특수성과 우월함을 더욱 강화하고 강조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기 때문에’ 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역사’는 있는 그대로 삶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전투와 정복, 살인, 보복과 같은 것들이 그러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실험 프로젝트

그럼 20절과 같은 구절이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진 않습니다. 약간의 각색은 있을 수 있지만, ‘구약’은 당시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뭐냐, 구약은? ‘구약’은 하나님께서 한 백성을 택해, 당신의 구원 사역을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그 특수성과 그리고 그 특별함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등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테스트’ 혹은 ‘증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선택한 유일 민족으로써,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떻게 다가오시고 또 어떤 모습으로 이끄시는지 보여주기 위한 책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실험 프로젝트로서 "선택" 되었는데, 그 이유는 만일에 한 민족조차 분배 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면, 모든 민족이 그럴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존 도미닉 크로산,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한국기독교연구소, p.121)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은 한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보여주기 위함이지, 이스라엘 민족만이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여러분,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질지 아니면 더 편협해질지 결정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여호수아가 점령한 민족들에 관해 살펴보다, 그 당위성의 말씀을 두고 잠시 씨름해봤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당연히 그런 분들은 안 계시겠지만, 실제로 ‘선민사상’에 도취되어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특권이 되어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서>를 읽는 동안에는 계속 전쟁과 살육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겠지만,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관해 더 관심과 집중을 하는 저와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