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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성서학당]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모세

20191023 청파교회 수요 성서학당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모세

안녕하세요. 여러분께서는 현재 몇 개의 역할을 맡고 계십니까?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남편, 부모님의 아들이자 딸, 직장에서 직원이나 관리자,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자,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 몸으로 여러 역할을 감당하고 있죠. 

역할의 무게는 모두 다를 텐데, 어떤 역할은 좀 가볍고 어떤 역할은 좀 무겁게 다가오실 겁니다. 주로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역할이 무겁게 느껴지실 텐데요. 우리는 어찌 되었건, 시간이 가면 원하든 원치 않던 누군가를 안내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할 때가 오기도 합니다. 가족으로서, 직장동료로서 혹은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말입니다. 

출애굽기: 모세의 성장 과정

오늘 우리가 함께 이야기 나눌 성경인물도 ‘지도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초성 퀴즈입니다. ‘ㅁㅅ’입니다.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한 인물입니다. 달리 말해, 그는 자기 민족을 ‘억압의 땅’에서 ‘자유의 땅’으로 안내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그의 성장 과정을 보게 되는데요. 특별히 모세는 ‘자기 자신’과 ‘그의 민족’을 이끄는 ‘방법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간단히 말해, ‘출애굽기’는 그가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경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과정을 간략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듯이, 모세는 처음부터 지도자의 모습을 갖춘 게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날 때부터 지도자로 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막상 지도자가 되어서도 그 여정이 순탄치도 못했습니다. 

모세의 탄생 이야기 

먼저 그의 탄생을 살펴볼까 하는데요. 그는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죽음의 위기’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지난 시간에 ‘죽음’에 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눠봤었는데요. 죽음을 늘 의식하고 살 순 없지만, 죽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사람이 더 깊어지고 성숙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죽음의 위기’ 즉, ‘바로(파라오)의 두려움’ 속에서 태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1:12). 그래서 그들을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엔 어떤 방침을 내리게 되죠?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이 낳은 아이 중에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을 낳으면 살려두라고 합니다. 그런데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래서 바로는 두 번째 방침을 내립니다. 어떤 방침이었죠?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아이들만 살려두라고 했습니다(1:22). 

그런데 모세의 엄마는 모세가 너무 사랑스러워 차마 죽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겨 기르다가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흘려보내게 되죠. 그러다 그 갈대 상자를 누가 발견하게 되죠? ‘바로의 딸’입니다. 그녀는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고, 결국 자기 아들로 삼게 되죠. 그리고 그의 이름을 ‘물에서 건져냈다.’라는 의미의 ‘모세’라고 짓게 됩니다(2:10). 여기까지가 모세가 탄생한 ‘탄생 이야기’입니다. 

‘신의 자녀’로서의 형상

근데 이런 ‘탄생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탄생 설화’와 많이 닮았습니다. 여러분께서 아는 ‘신의 자식인데, 버려진 신의 자녀 이야기’ 있나요? 로마 건국 이야기에 등장하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있고, ‘오이디푸스’와 ‘석가모니’도 있고, ‘예수’ 또한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됩니다. 더 알아본 바로는 ‘크리슈나’,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길가메시' 등이 있었습니다. 

 

더보기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영웅이다. 비슈누의 여러 화신 중 하나로 여겨진다. 
‘페르세우스’ 아르고스의 아크리시오스의 딸인 다나에와 제우스의 아들이다.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헤르쿨레스라고 부른다.  
‘길가메시’ 길가메시(Gilgamesh)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왕조 초기 시대인 우루크 제1왕조의 전설적인 왕으로 수많은 신화나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고대 세계까지 가지 않아도, 일찍이 부모에게서 멀어지고 버림을 당해 ‘자기만의 길’을 가게 되는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철학이나 문학세계에서의 대가들도 대부분 일찍부터 우여곡절을 경험합니다. 기억나는 인물로는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일찍부터 죽을지도 모를 거란 생각에 ‘공동묘지’를 뜻하는 ‘키르케고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가까이 둔 자였습니다. 

위대한 인물들 대부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버림을 받거나 어떤 굴레로부터 벗어 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셀름 그륀’ 신부뿐만 아니라, 여러 고전의 대가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데 그게 뭐냐면, 여러분 안에도 ‘신의 자녀’로서의 형상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하고 그 형상을 일깨울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 됨’, 하나님이 심어 놓은 ‘창조성’과 마주하게 되면, 하나님이 부여한 재능과 소명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 들으면 어떠세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리십니까? 아니면 뭔가 가슴 깊이 뭔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 드십니까? 

모세에게 일어난 사건

‘모세 이야기’를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딸에게서 돌봄을 받으며 잘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어른이 되어 지내던 어느 날,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우연히 이집트 사람 하나가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모세는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여 이집트 사람을 쳐 죽입니다. 그리고 시체를 몰래 모래 속에 묻어 버리죠. 

그리고 다음 날, 모세는 또 우연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중재하려고 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모세를 살인범으로 고발하게 되죠. 모세는 자신이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 난 것을 알고 두려워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미디안’으로 가게 되죠. 그리고 그곳에서 사제였던 ‘이드로’의 딸과 결혼해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뭐였죠? ‘게르솜’입니다. 

실패의 경험

모세는 좌절하게 됩니다. 이방 땅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가에 속한 한 사람으로 ‘지도자’가 되려 했던 그의 첫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졌는데요. 그런데 모세의 인생에서 그가 경험했던 ‘실패의 경험들’이 나중 다른 이들을 이끄는 능력이 됨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실패라고 느껴지는 어떤 경험들이 있으신지요? 

저도 이걸 실패의 경험이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개척교회에 몸담고 있던 4-5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는데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회란 무엇이고, 전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이별의 고통과 무력감, 자기 비하 등 실패한 삶으로서의 모습을 많이 느꼈습니다. 물론 그런 절망과 실패의 경험이 다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어떤 ‘실패의 경험’은 고통스럽긴 하나, 타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무기력한 모세, 자신감 없는 모세

제가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모세는 확신 있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력감’과 자신의 ‘쓸모없음’을 대면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과 염소에게 풀을 먹이고 있을 때,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게 됩니다(3:2). 그때 가시덤불 사이에서 나타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죠. 너를 ‘바로’에게 보낼 것이고, 너는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모세는 ‘오케이, 좋습니다!’라고 답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당신들을 향한 계획’이 있음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말솜씨가 형편없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피하려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화를 내시며 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뭔가 대단하고 확신으로 가득 찬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무력감’을 느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자신의 한계와 무력감을 느낀 사람만이 다른 누군가를 대할 때, 더 조심스럽게 대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유를 향해 가는 길

어쨌든 모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뱀으로 변하는 지팡이’와 ‘피부병에 걸린 손’과 같은 몇 가지 마술체험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바로’를 향한 끊임없는 설득과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출애굽’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막상 이집트를 탈출한 백성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광야에서의 시간이 낯설기 때문입니다. 늘 자유를 향한 발걸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자유’와 동일한 말이 ‘불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키르케고르라는 철학자가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드릴 이런 말씀 같은 게, 되게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자유를 향해 가는 길’은 어떤 ‘몰락’과 ‘배고픔의 시간’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가 거저 주어질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원하십니까? 자유로운 삶을 꿈꾸긴 하십니까? 

기도: 일상과 거리 두기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를 지나다가 아말렉과 맞닥뜨립니다(17:8). 아말렉과 마주한 모세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십니까? 그는 앞서나가 싸우지 않았습니다. 산 위에 올라가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집중했습니다. 

사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기도’ 어떤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 그 상황을 ‘단절’하여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어떤 문제에 함몰되어 있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 물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고자 함입니다. 

여러분은 평소 어떻게 일상과 ‘거리 두기’ 연습을 하고 있으신지요? 

① 온화함, 겸손함: 자신의 약점 알고 드러낼 용기

성경에 드러난 모세의 두 가지 특징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마칠까 합니다. 

사실 모세가 가진 ‘온화함’은 리더로써 타인들의 모범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 나눴듯이, 그는 처음부터 온화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격정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누군가를 하나님께 이끄는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인물이었죠. 

사실 이 ‘온화함’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평화(화해)를 이룬 사람에게 나타난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어두운 면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면에서 모세는 겸손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이길 꺼려합니다. 특히 남성들은 강하다고 인정받고 싶은 그 욕구 때문에, ‘자신의 약점’을 자주 숨깁니다. 그런데 ‘진짜 강함’은 자신의 이면(裏面)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자신이 어떤 부분이 약한지 잘 아시는지요? 그리고 그런 약점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은 없으신지요? 

② 자유로운 인간: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모세가 걸었던 길은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찾는 과정’ 이런 말이 너무 옛날 말처럼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여전히 꽃피지 못한 ‘많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책임을 지고, 거기서 비롯된 갈등을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불평했던 것은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어머니의 품’으로 상징되는 ‘먹을 것, 입을 것’이 있던 그 이집트의 시간을 잊지 못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로 가는 길에 ‘불안’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자연스레 따뜻하고 안정적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반항하는 백성들’을 대항해 ‘자기의 뜻’을 관철해야 했던 것이죠. 그렇기에 ‘반항하는 백성’이란 곧 과거의 따뜻했던 품 즉,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퇴행적 경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정말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기존의 안정이나 어머니의 보살핌 혹은 지나친 안정감을 주는 것들에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위험’ 또는 ‘모험’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시간은 두렵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기도하는 가운데, 늘 하나님과 대항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과 싸움이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만남

오늘 ‘성서 학당’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모두 관계를 맺고 삽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 설 때도 있습니다. 부모로서 또는 직장에서 또는 교회에서 그러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군가를 흉내 내기보다, 진실하게 ‘자기 자신’과 만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심어 놓으신, 다른 이들과 다른 그 ‘창조성’, ‘생명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갈망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아무튼, 우리는 실패할 수 있고 그 실패의 경험이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끌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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