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청파 Note / 새벽] 서로의 도움이 있었기에

20190518 청파교회 새벽설교

 

서로의 도움이 있었기에

 

<여호수아 2장 15-21절>

 

15. 라합은 성벽 위에 있는 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밧줄을 늘어뜨려 그들을 달아내려 주었다.

16. 그리고 여인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뒤쫓는 사람들이 당신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산으로 가십시오. 거기에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사람들이 돌아간 다음에 당신들이 갈 길을 가십시오."

17. 그 사람들이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우리와 맺은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겠소.

18. 이렇게 합시다. 여기 홍색 줄이 있으니, 우리가 이 땅으로 들어올 때에, 당신이 우리를 달아 내렸던 그 창문에 이 홍색 줄을 매어 두시오.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라버니들과 아버지 집안의 모든 식구를 다 당신의 집에 모여 있게 하시오.

19. 누구든지 당신의 집 대문에서 밖으로 나가서 죽으면,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죽은 사람 자신이 져야 하며, 우리는 책임을 지지 않겠소. 그러나 우리가 당신과 함께 집 안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대서 죽으면,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질 것이오.

20. 그러나 당신이, 우리가 한 일을 누설하면, 당신이 우리와 맺은 맹세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소."

21. 그러자 라합은, 그들의 말대로 하겠다고 대답하고, 그들을 보냈다. 그들이 간 뒤에, 라합은 홍색 줄을 창에 매달았다.

 

두 정탐꾼의 반응

 

안녕하세요.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여호수아>에 등장한 중요한 인물 ‘라합’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그녀에게 두 가지 두드러진 모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요. 한 가지는 그녀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두 명의 정탐꾼을 숨겨준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두 정탐꾼을 향해 자신이 베푼 은혜에 대한 확실한 징표로 어떤 보답을 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오늘은 라합이 한 이 요구에 대한 두 정탐꾼의 반응에 관해 살펴볼까 합니다.

 

인물 관점에서 성경 읽기

 

그런데 이 정탐꾼들의 반응을 살펴보기에 앞서, 잠시 본문에서 벗어나 보려합니다.

 

문득 성경을 읽어나가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성경 묵상 방법‘ 가운데 한 가지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부분만 추려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정말 좋은 ‘성경 묵상 방법‘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의 삶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또 어떤 것을 느꼈는지 상상하며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같이 이야기의 서사가 있는 경우, 각 인물들이 느끼고 경험한 부분에 자신을 대입해 읽다보면, 그들이 만난 하나님이 지금 우리가 만나길 원하는 하나님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호수아>의 말씀을 보며, ‘두 정탐꾼‘의 관점에서 본문을 읽어보기도 하고, ‘라합‘의 관점에서 본문을 읽어보기도 하면서 성경에 감춰진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별해 보려 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가슴에 잘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갑자기 새로운 관점으로 성경이 읽히기도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은 ‘라합’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해석해봤다면, 오늘은 ‘두 정탐꾼’의 관점에서 오늘 본문의 상황을 살펴보려 합니다.

 

약속의 징표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을 지나가게 될 때,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과 그에 속한 모든 식구를 살려주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정탐꾼들은 “당신이 우리와 맺은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겠다”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그녀를 돕길 다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구체적으로 약속의 징표를 건넵니다. “이렇게 합시다. 여기 홍색 줄이 있으니, 우리가 이 땅으로 들어올 때에, 당신이 우리를 달아 내렸던 그 창문에 이 홍색 줄을 매어 두시오.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라버니들과 아버지 집안의 모든 식구를 다 당신의 집에 모여 있게 하시오.”

 

두 정탐꾼은 라합에게 자신의 집 창문에 붉은색 줄을 매어두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곳을 지날 때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쳐 갈 수 있도록 하게끔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을 지난다는 말은 곧 이곳이 전쟁으로 황폐하게 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살 수 있었던 출애굽 때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가지 조건

 

그러고 나서, 두 정탐꾼은 한 가지의 조건을 덧붙입니다. 붉은 줄을 창문에 묶어 두면 그대들 식구가 사는 것은 분명한데, 혹시 누구라도 때를 잘못 맞춰 집 밖으로 나가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 책임은 죽은 사람 그 자신이 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만약 우리의 약속을 믿는다면 또한 철저히 지켜야 함을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혹시 라합의 집에 머문 사람이 우리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면,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이스라엘 백성들인 자신이 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한 이것을 비밀로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두 정탐꾼과 라합 이야기

 

‘두 정탐꾼‘과 ‘라합‘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들 사이에 있던 일들을 정리해봐야 하는데요.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감당하고 있던 사람은 모세였는데, 모세는 자기 생명의 기한이 다 되어 ‘가나안’을 못 보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이어서 진행할 후계자를 찾게 되었고 그 후계자가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나안’으로 진군하기에 앞서, 자신들 바로 앞에 위치한 ‘여리고’를 정탐할 두 명의 일꾼을 뽑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여리고로 보내, 그곳의 상황을 살펴보게 합니다. 이 일을 진행하던 중, 정탐꾼들은 라합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집에 묵게 되면서 적들의 눈을 피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 라합은 이방 사람이었으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 소문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던 두 정탐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라합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1 + 무엇 = 기쁨

 

저는 오늘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정리하다가, 참 단순하면서 분명한 진실 하나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하나님의 일‘ 혹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고독의 숫자인 ‘숫자 1’을 좋아하시지만, 무엇보다 ‘숫자 1’에 ‘무언’가 더해지는 것을 더 의미 있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의 지난 시간을 한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이르기까지 홀로 고독하게 걸은 삶의 흔적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부분 (알게 모르게) 우리를 지금 이곳에 있게 한 수많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 우리의 존재를 완성하려 한다. 나는 들판을 걸어간다. 풀을 꺾고, 발로 돌을 차고, 언덕에 오른다. 이 모든 것을 아무런 증인 없이 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평생 이러한 고독에 만족할 수는 없다. 산책을 끝내자마자 나는 친구들에게 그 산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모든 사람은 혼자다>, 꾸리에)

 

사랑의 몸짓을 받아들이라

 

그렇죠. 모든 사람은 혼자지만, 어느 누구도 계속 혼자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슴 속에 심어놓은 동행이라는 ‘씨앗’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 명의 정탐꾼은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라합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생의 위기 가운데, 자신의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두 정탐꾼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요즘처럼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들의 도움을 가까이 느낄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척교회에서 홀로 지내며 작은 손길도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느꼈지만, 청파교회에 오고 나서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내주시는 응원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웃이 보내는 사랑의 몸짓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돕도록, 우리를 지지하도록, 계속 살아갈 힘을 우리에게 부여하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파울로 코엘료, <마크툽>, 자음과모음, p.143)

 

잘 받아야 잘 나눠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보내는 ‘사랑의 몸짓‘을 잘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질 것이고, 그 풍성함이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의 삶 또한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생의 신비를 잘 새겨두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