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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새벽] 유다와 베냐민, 그 깊어지는 이야기

20200111 청파교회 새벽설교

유다와 베냐민, 그 깊어지는 이야기

<여호수아 15장 20-63절>

20. 땅이 유다 자손의 지파에 속한 여러 가문이 나누어 받은 유산이다.
21. 유다 자손 지파가 차지한 성읍들 가운데서 에돔 경계선 가까이 가장 남쪽에 있는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하닷다와 그리욧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벳벨렛과
28.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호르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32. 르바옷과 실힘과 아인과 림몬, 이렇게 모두 스물아홉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이다.
33. 유다 지파가 차지한 평지의 성읍들은,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 이렇게 열네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이다.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바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벳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 이렇게 열여섯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도 있었다.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 이렇게 아홉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도 있었다.
45. 에그론과 그 변두리 촌락과 주변 부락들,
46. 에그론에서 바다까지, 아스돗에 인접한 모든 성읍과 주변 마을들도 있었다.
47. 아스돗과 그 변두리 촌락과 주변 마을들도 있었다. 또 이집트 국경지대의 강과 지중해와 그 해안 일대에 있는 가사와 그 변두리 촌락과 주변 마을들도 있었다.
48. 유다 지파가 차지한 산간지방의 성읍들은,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 이렇게 열한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이다.
52. 이 밖에도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벳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 이렇게 아홉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이 있었다.
55. 그리고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 이렇게 열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이 있었다.
58. 그리고 할훌과 벳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벳아놋과 엘드곤, 이렇게 여섯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도 있었다.
60. 기럇바알 곧 기럇여아림과 랍바, 이 두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도 있었다.
61. 유다 지파가 차지한 사막지대의 성읍들은, 벳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소금 성읍과 엔게디, 이렇게 여섯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이다.
63. 그러나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 성에 살던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과 유다 자손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 성에 함께 살고 있다.

 

유다 지파

안녕하세요! 길고 난해한 구절을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실 성경이라는 책이 원래부터 좀 난해하긴 하지만 구약은 더 짓궂습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사람과 지명이 너무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시다시피 요단강 서편을 차지한 지파들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지지난 주에는 요단 서편을 차지한 지파들 가운데 첫 번째 지파인 ‘유다 지파’에 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가나안이라고 하는 땅의 중요한 지대일 뿐 아니라, 비옥하고 좋은 땅이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열 둘의 의미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유다 지파의 기업이 한 번 더 설명이 되는데, 이번에는 각각의 성읍들을 나열하며 아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받은 성읍을 총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 성읍은 땅의 형태에 따라 나뉘는데, 가장 먼저는 남쪽의 경계지역, 두 번째는 평지, 세 번째는 산지(산간지방),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광야(사막지대)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네 개의 성읍은 오늘 본문에 다시 11개의 성읍으로 세분화 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본문을 읽어보시면 누구나 다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좀 재밌는 게 있는데,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숫자는 11이라는 숫자보단 12라는 숫자입니다. 11개의 성읍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하나가 부족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꼭 알아두실 필요는 없지만, 기억하면 좋을 것은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 말고, 그리스어로 쓰인 최초의 번역 성경(칠십인역)에는 1개의 성읍이 더 추가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왜 성읍 하나가 삭제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유다 지파‘가 받은 성읍은 총 12개였단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 이 이스라엘 민족이 유업으로 받은 땅은 12개의 지파로 나뉩니다. 그리고 그 12개 지파 가운데 한 지파였던 ‘유다 지파’의 땅도 다시 12개의 성읍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성경이 감춰 놓은 참 흥미로운 부분이라 생각되는데요. 사실 이 ‘12‘라는 숫자가 유대민족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녀서 ‘12‘가 반복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 ‘열둘‘이라는 숫자는 유대민족에게 있어 ‘온전함’, ‘완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온전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기위해 유대인들은 ‘12’라는 숫자를 많은 곳에 적용했습니다. 

여호수아: 유다와 베냐민 지파

그런데 또 오늘 본문 가운데, 흥미로운 다른 점 한 가지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과 여호수아 18장 21-28절이 지도상에서 같은 부분을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그 18장에 등장하는 지파는 ‘베냐민 지파’입니다. 왜 성경이 두 개의 지파에게 같은 성읍을 분배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습니다. 다만 추측해 볼 수밖에 없는데요. 아마 이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 훨씬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한 이 가나안 땅은 나중에 두 개로 분열됩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바로 ‘남유다-북이스라엘’로 분열됩니다.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지역이 바로 ‘남유다’의 땅이 되는데요. 아마도 나중에, 남유다가 북이스라엘과 맞설 당시,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하나로 연합하여 북이스라엘과 맞서게 되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여호수아의 저자가 그때를 상기하여 두 지파가 분배받은 지역을 하나의 지역으로 묶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좀 헷갈리는 부분이긴 한데요. 어쨌든 ‘베냐민 지파‘ 이야기는 18장에 가서 다시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유다와 베냐민

어쨌든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하나의 땅을 함께 분배를 받고, 그 안에서 하나의 지파처럼 살았습니다. 물론 유다 지파의 성읍이 베냐민에 비해 훨씬 넓기는 했습니다. 

사실 ‘유다와 베냐민‘은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를 보면, 형제 ‘유다와 베냐민’은 원래부터 끈끈한 관계로 등장합니다. 창세기 44장에서 형 유다는 이집트 총리인 요셉으로부터 막내 동생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베냐민을 구하기 위한 유다의 고백으로 응어리졌던 요셉의 마음이 풀리게 되고(창 45장), 그로 인해 모든 가족이 이집트에서 상봉하여 430년을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창 46장). 이 유다-베냐민 형제의 애틋함이 구약 이야기 내내 등장하며, 전체적인 맥을 이어갑니다. 

물론 이들의 지파가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사울과 다윗의 갈등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사울‘과 그의 애정과 질투를 동시에 받고 있던 ‘다윗‘은 왕좌를 놓고 혈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로 인해,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죽음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고 누구보다 그 죽음에 슬픔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유다 지파를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모든 인간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사실 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나 삶이 다 이와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좋은 관계‘라고 하는 것은 갈등이 없는 관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깊이 알아가고 또 사람에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적응기, 갈등의 시간은 필요합니다. 아니, 이런 시간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참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가고 또 하나님과 사이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갈등과 어긋남의 시간,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가족이지만 다른 두 인격체였던 ‘유다와 베냐민’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지파가 되고, 다시 하나가 되었다고 둘로 나뉘는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 그 둘이 함께 갈 수밖에 없었던 건, 이러한 관계가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게 느껴지거나, 또는 신경 쓰이고 힘들게 하는 이가 있다면 조금 거리를 두고 그 관계를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 관계가 서로 깊어지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잘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내게 다가온 일들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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