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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중고등부] 마음으로 만나는 분

20200112 청파교회 중고등부 설교

마음으로 만나는 분

<예레미야 31장 31-34절>

31.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32.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4. 그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마음 알아채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즘 마음이나 기분이 어때요? 마음을 잘 살피는 일은 중요해요. 내 마음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아주기만 해도,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줄일 수 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게 쉽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 내가 자꾸 뭘 먹어요. 먹는 게 너무 좋아요. 물론 정말 배가 고파서 뭘 먹는 건 좋은 일입니다. 건강한 일이에요. 그런데 배가 그렇게 고픈 것 같지는 않은데, 자꾸 허기진 것 같아 뭘 먹으려 한다면,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100% 정답이라 할 순 없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것을 잘 알아채지 못하고 자꾸 몸(위)만 채우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이렇듯 우리의 마음은 다른 걸 원하는데, 그걸 잘 알아차리지 못해 괜히 고생할 때가 있어요.  

마음: 생명이 근원

여러분이 한번 쯤 들어본 말씀에도 이 ‘마음’과 관련된 이야기나 나오죠. 잠언의 말씀! 잠언의 말씀 중에 ‘마음’이 들어간 구절 기억나는 친구 있나요?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잠4:23)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고까지 합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여러 모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스토리

여러분! 오늘은 ‘성경 공부’하는 느낌으로 말씀을 나눌 거예요. 물론 오늘 함께 읽은 본문과 예레미야 전반에 관해 나눌 텐데요. 지루할 수 있겠지만, 편하게-인내하며 잘 따라오면 반드시 얻어가는 게 있을 겁니다. 

아주 오래 전, 하나님께서 하나의 민족을 선택하셨어요. 민족의 이름은? 그 민족은 바로 이스라엘이에요.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제멋대로 살기 시작합니다. 그 바람에 하나님의 미움을 샀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서운 심판(벌)을 내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벌)은 그들이 미워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으로-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어요. 이 이야기는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과 관련된 이야기로 좀 더 들어가 보죠.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었던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에 크게 두 개의 땅덩이로 나뉘게 돼요. 마치 남한과 북한처럼 말이에요. 잘 지내던 이 이스라엘 민족이 둘로 나뉜 이유는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 때문이었어요. 

여러분!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세 명의 왕이 누군지 아시나요? 사울-다윗-솔로몬이에요. 그런데 이 가운데, 세 번째 왕이었던 이 솔로몬 왕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분열되게 됩니다. 솔로몬 왕은 자신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통치 기간 말년에 갖가지 건축사업을 펼치게 되는데, 당연히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겠어요? 노동력이 필요할 테고, 더구나 이 건축에 강제적인 노동력까지 더해지면서 백성들의 생활은 갈수록 힘겹게 되었어요. 그래서 백성들의 불만도 쌓여갔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불만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밖으로 세어 나오지 않았어요. 대신 솔로몬이 죽자마자 다음 왕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왔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견이 서로 충돌하며 둘로 나뉘게 된 거예요. 남-북으로 말이에요. 그래서 남쪽에 자리 잡은 이들의 이름이 뭐냐면 남유다이고 그리고 북쪽에 자리 잡은 이들이 이름이 뭐냐면 북이스라엘이 됩니다. 

남유다-북이스라엘 스토리

어쨌든 다시 예레미야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북이스라엘은 먼저 앗시리아(앗수르)라는 강대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뒤이어 남유다는 바벨론(바빌론)이라는 또 하나의 강대국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주전 587년 멸망). 그리고 예레미야는 이 남유다가 멸망하기 훨씬 전부터 활동한 예언자로써 예언자들 가운데 아주 ‘올드한 멤버’였습니다. 

사실 이 남유다는 지리상 여러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맨 아래 남쪽에는 이집트(애굽)가 있었고, 북쪽 꼭대기에는 앗시리아와 바벨론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어요. 이들은 겁나 센 나라들이에요. 약간 와칸다스러워요. 그리고 그 사이에 바로 힘없는 남유다가 껴 있던 거고요. 그렇기에 이 남유다는 자연스레 위태로운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어요. 언제든 강대국들이 침범하기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주전 59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이끌고 남유다에 처음으로 등장하더니, 그가 등장하고 정확히 10년 뒤 남유다는 쑥대밭이 되었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물론 이때까지도 예레미야는 남유다에 같이 살고 있었고요. 

남유다 멸망 이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남유다가 멸망한 것은 지리적인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예언자들은 남유다가 멸망한 이유는 단순히 강대국에 둘러싸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어긋났기 때문에 멸망했다고 믿었어요. 좀 어려운 표현을 써본다면,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존재하는 어떤 ‘특수성’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건데요. 언약의 백성이 바로 그 특수성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남유다가 강대국의 침범을 받고 있을 당시, 남유다에 있던 나라의 책임자(고위관계자)들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다른 나라와 정치 동맹을 맺기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있었어요.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 아닌 신들을 예배하기도 했어요.  

그때 이 예레미야는 남유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했어요.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청개구리 같았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에 반항했어요. 자신들이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내버려두라며 말이에요. 

청개구리 이스라엘 백성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예언자의 역할이라는) 불가능한 일을 시키신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워졌어요. 그러나 예레미야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만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말씀 드렸어요.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거예요. 하나님은 당연히 그런 그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여 주셨고요.  

어쨌든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을 선포를 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지적했어요. 그리고 그 죄의 결과로 당연히 심판을 강조했고요. 여러분도 자기 잘못을 꾸짖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쁠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훈계와 질책의 말을 듣기 싫어서, 예레미야의 말을 거부했어요. 아무리 좋고 옳은 말이라도 자기를 심판하는 이야기, 자신을 정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 있어요. 특히 죄와 심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진솔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멸망’이 아닌 ‘사랑’을 강조하기 시작하셨어요. ‘죄-심판’이 아닌, ‘사랑-회개’를 말씀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미운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언약의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딱딱한 ‘돌판(십계명)’처럼 여기지 말고, 각자의 ‘마음 판’에 고이고이 담아두라고 말했어요. 오늘 본문은 이렇게 이야길 하죠. (누가 읽어볼까요?)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31-34) 

여러분, 예레미야 이야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어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 오랫동안 인내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담겨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제는 정해진 규칙이나 계명으로가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마음!

말씀을 마치기 전에 ‘마음’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지상에 내려와 어느 수도원을 방문했다. 수도사들은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줄을 서서 성모 마리아께 경배를 드렸다. ​수도사 한 명이 시를 낭송하고, 다른 수도사는 색을 넣어 장식한 성서를 성모 마리아께 보여드렸으며, 또 다른 수도사는 성자들의 이름을 암송했다. ​줄 맨 끝에 겸손한 수도사 한 명이 서 있었다. 그의 부모는 서커스에서 일하는 소박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그는 당대의 현자들 밑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가 경배 드릴 차례가 되자, 다른 수도사들은 그 때문에 수도원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되어 경배를 그만 마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수도사도 성모 마리아께 자신의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동료 수도사들이 눈치를 주자, 당황한 그는 얼른 호주머니에서 오렌지 몇 개를 꺼내 부모님이 가르쳐준 대로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아기 예수가 그 모습을 보고 방긋 미소를 짓더니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그 수도사의 품에 잠시 맡겼다.”  (파울로 코엘료, <마크툽>, 자음과모음, p.62-63)

여러분! 하나님께는 잘 보일 필요가 없어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갖고 늘 하나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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