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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14)] 어둠을 통과하는 길: 신뢰

20231228 청파교회 새벽설교

 

어둠을 통과하는 길: 신뢰

 

<시편 69편 30-33절>

 

30. 그 때에, 나는 노래를 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련다. 감사의 노래로 그의 위대하심을 알리련다.

31. 이것이 소를 바치는 것보다, 뿔 달리고 굽 달린 황소를 바치는 것보다, 주님을 더 기쁘게 할 것이다.

32. 온유한 사람들이 보고서 기뻐할 것이니,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아, 그대들의 심장에 생명이 고동칠 것이다.

33. 주님은 가난한 사람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므로, 갇혀 있는 사람들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미움을 받아 본 사람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69편입니다. 오늘의 시인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온전치 못해 보입니다. 먼저 그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다칠 대로 다쳤습니다. 그는 마음이 다쳐서(hurt), 마음마저 굳게 닫힌(closed)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까닭도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나의 머리털보다도 많고, 나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자들, 내게 거짓 증거하는 원수들이 나보다 강합니다. 내가 훔치지도 않은 것까지 물어 주게 되었습니다."(4)

 

시인은 '까닭도 없이 미움을 받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유도 모른 채,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아 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알면, 나의 잘못을 고치면 그만일 텐데, 원인을 모른 채 받는 미움은 그저 답답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오늘 시인의 처지가 그러했습니다. 시인은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인을 더 힘들게 하는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인, '무고한 자가 박해받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인의 무고함은 '내가 훔치지 않은 것까지 물어 주게 되었다.(4)'라는 표현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주님 앞에 정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미움을 받는 것이 자기 잘못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인은 지금까지 믿어 온 기반이 흔들렸습니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한다는 그 말씀에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억울함

 

5절로 넘어가면, 시인이 당한 억울함이 아주 상세히 묘사됩니다. 현재 시인은 그야말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는 주님을 향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열정을 외면한 채, 시인을 홀로 두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나에게로 쏟아집니다. 내가 금식하면서 울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베옷을 입고서 슬퍼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에게는 말거리가 되었습니다. 성문에 앉아 있는 자들이 나를 비난하고, 술에 취한 자들이 나를 두고서 빈정거리는 노래를 지어 흥얼거립니다."(9b-12)

 

시인은 사람들의 괴롭힘과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

 

하지만 오늘 시인의 특별함은 다음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13절 이후부터 시인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는 주님께 한결같은 사랑과 내가 확실히 구원받은 자임을 보여달라고 간곡히 요청합니다. 그리고 이 수렁과 같은 상황과 이 깊은 물속에서 건져주실 것 또한 간구했습니다.

 

그는 자기 상황을 주님께 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21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나에게 독을 타서 주고, 목이 말라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 나에게 식초를 내주었습니다."(21) 이 구절은 마태복음 27장(요한복음 19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마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묘사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포도주에 쓸개를 타서, 예수께 드려서 마시게 하였으나, 그는 그 맛을 보시고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34)

 

마태가 기록한 이 말은 정확히 예수님의 길과 반대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인은 고통받는 자에게 마땅히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에 독과 식초를 타서 줍니다. 고통을 가중하기 위함입니다. 악인은 그야말로 동정과 연민의 마음이 조금도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식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며,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즉 성령을 주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마 7:9-11).

 

그렇습니다. 한번 마음에 악한 것이 깃들면, 더 악한 길로 나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누구나 악인의 길에 설 가능성을 품은 존재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

 

22절로 넘어가면, 시인은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속히 주님께서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향해 분노의 잔을 쏟아부으시길 기도합니다. 그의 묘사는 거침없습니다. 그는 먼저 원수들이 누리는 평화가 도리어 함정이 되게 해 주시고 그들의 집이 폐허가 되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은 죄를 빠짐없이 벌해 주시고 그들의 죄가 결코 사면받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시인은 단단히 화가 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보복의 형태를 띠곤 있지만,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공의를 드러내 주시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공의는 주님의 보좌를 지탱하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입니다.

 

구약에는 커다란 두 전승이 뒤섞여있는데, 하나는 시온산 전승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산 전승입니다. 이 말을 간단히 풀어서 설명하면, 시온산 전승은 예루살렘 성전이 중심이기 때문에 다소 보수적인 전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내산 전승은 출애굽 정신을 기반으로 합니다. 바로 이 시내산 전승을 이루는 두 기둥이 공의와 정의인데, 이 시내산 전승은 변혁을 지향할 때가 많아서 다소 진보적으로 비칩니다. 바로 이 시내산 전승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의 특징이 '공의'인 것입니다.

 

어쨌든 시인은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향해, 보복의 감정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더 이상 악인들의 행태를 방관하지 마시고, 올바른 판단을 해 주시길 바라는 간청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의 시편도 다른 시편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마무리됩니다. 여전히 시인은 절망 가운데 있지만, 다시 희망하며 하나님이 무너진 것들을 다시 세우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뢰를 쌓아가는 훈련

 

오늘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마음이 참 궁금해집니다. 시인은 어떻게 어둠 속을 거닐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주님을 향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여전히 악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믿음을 갖고 살기 위해서는 바로 이 신뢰가 필요합니다. 신뢰를 갖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 삶에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주님을 향한 신뢰를 쌓아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훈련에는 모험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주님께 과감히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늘의 은총이 잔잔히 우리 내면에 깃들 것입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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