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19 청파교회 새벽설교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이유
<예레미야서 52장 3-5절>
3. 예루살렘과 유다가 주님을 그토록 진노하시게 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들을 주님 앞에서 쫓아내셨다. 시드기야가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기를 들었으므로,
4. 시드기야 왕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하고, 도성 안을 공격하려고 성벽 바깥 사방에 흙 언덕을 쌓았다.
5. 그리하여 이 도성은 시드기야 왕 제 십일년까지 포위되어 있었다.
역사 부록책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레미야서 52장입니다. 예레미야서 52장은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52장의 말씀은 그동안 이어오던 긴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그런 장은 아닙니다. 이미 51장에서 길었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럼 이 52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일까요?
예레미야서 52장은 일종의 역사 부록책입니다. 그래서 52장에는 이미 앞에서 등장한 이야기나 열왕기에 등장한 이야기들이 동일하게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2/3에는 열왕기하 24장 후반부터 25장 초반에 등장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나머지 1/3 지점에는 열왕기하 25장 후반부에 등장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그것도 잘 정리되어 기록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순간의 때를 기억함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돌봄이 떠난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를 잊지 않기 위함일 것입니다.
예루살렘 함락
먼저 52장의 내용부터 살펴보면, 그 내용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1-11)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드기야가 남유다를 다스린 지 11년째 되던 해라고 알려줍니다. 그 해는 그가 남유다를 다스린 지 마지막 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때 남유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서 함락된 때이기도 합니다. 시드기야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기를 들었고 그로 인해 남유다는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위를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포위를 당한 예루살렘은 점점 고립되어 갔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어떤 것도 밖에서 안으로 유입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도성과 성 안의 사람들은 점점 굶주려 갔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의 성벽은 뚫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이 뚫린 것을 안 시드기야 왕은 밤을 틈타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도성 밖으로 도망쳐 나았습니다. 그리고 곧장 아라바 쪽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잡히고 말았고, 그를 지키던 군사들은 시드기야를 버리고 모두 흩어져버렸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결국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체포당하였고, 바빌로니아 왕 앞에 끌려가 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감옥 안에서 죽는 날까지 머물게 됩니다.
느부사라단이 행한 일
이어지는 두 번째 단락(12-23)은 그로부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때의 이야기입니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 왕의 근위대장이었던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을 찾아옵니다. 그는 그곳에 이르러 그동안 미뤄뒀던 일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 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관계 맺었던 모든 기억을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느부사라단은 왕궁과 성전 가릴 것 없이 모든 건물을 불태우기 시작합니다. 남유다의 왕들이 머물렀던 호화로운 왕궁.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모셨던 성전. 그리고 백성들이 살던 모든 건물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느부사라단은 백성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과 바빌로니아에게 투항한 사람들 그리고 기술자들 모두를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예루살렘의 흔적을 지운 것입니다.
물론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은 가난한 백성들을 그곳에 남겨둠으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남은 자들도 당연히 포로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고향에 남는다고 하여도 결코 기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느부사라단은 유대 땅을 나중에 자신이 잘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영리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이야기도 이 두 번째 단락(12-23)에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엄청난 슬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빌로니아 군대는 하나님의 성전을 완전히 허물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성전에 있는 성물들을 다 부수거나 전리품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19절 본문이 말하듯이 “금으로 만든 것은 금이라고 하여 가져 갔고, 은으로 만든 것은 은이라고 하여”(19) 모조리 가져갔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문단인 세 번째 단락(24-30)은 많은 사람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가서 처형당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요약하듯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는지 그 수치도 등장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느부갓네살 왕이 포로로 끌고 간 유다 백성의 수는 그의 통치 제 칠 년에는 3,023만 명이었고, 그의 통치 제 십팔 년에는 830만 명 그리고 그의 통치 제 이십삼 년에는 745명이 포함된 4,600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간 유다 백성의 수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이승우 작가는 “마지막 순간에 오는 깨달음은 질문의 형식으로 온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의 정답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실패나 죽음 혹은 좌절과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경우일 것입니다. 부록과도 같았던 이 예레미야서 52장의 기록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유다 민족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해 둠으로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이 이야기를 접하게 될 후손들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잊지 않기 위함일 것입니다.
길었던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끝이 났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던 시기는 유대 땅의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강대국의 패권이 앗시리아에서 바빌로니아로 넘어가던 시기였고, 내부적으로는 남유다 백성들의 죄악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첫 시간에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러한 혼돈의 시기에 예언자 예레미야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예언자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며 하나님의 부름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를 통해 일하셨고, 주님의 도움으로 그는 끝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유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메시지가 담긴 책입니다. 결국 유대 민족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끝을 보아야만 그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유대 민족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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