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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 Note / 예레미야 애가 (1)] 슬픔을 인정하고 드러낸 예레미야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24. 12. 2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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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6 청파교회 새벽설교

 

슬픔을 인정하고 드러낸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5장 21-22장> 

 

21. 주님,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셔서, 옛날과 같게 하여 주십시오. 

22.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

 

 

 

예레미야의 슬픈 목소리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레미야 애가의 마지막 장인 5장의 말씀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예레미야 애가는 총 다섯 편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다섯 편의 노래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멸망된 것을 슬퍼하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슬픈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다루었던 <예레미야서>에서 알 수 있었듯이 유다는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끝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사람의 깨달음은 늘 사후적으로 옵니다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사람의 오랜 버릇입니다. 예레미야를 비롯한 남유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 언약의 백성이 멸망하고 만 이유를 그들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전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역할을 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의 죄로 인해 그들은 자멸하고 만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의 흐름

 

오늘은 <예레미야 애가>의 마지막 장을 다루기에 잠시 복습을 해 보자면<예레미야 애가> 1장은 예레미야의 탄식으로 시작됩니다. 예레미야는 황폐해지고 이제는 종의 신세가 되어버린 예루살렘 도성을 보며 탄식합니다. “아, 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1) 

 

이렇게 탄식으로 시작된 예레미야의 음성은 중반부인 3장에 이르러서는 회개하는 마음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목소리로 바뀌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21-23) 예레미야는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 주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룰 <예레미야 애가> 5장에서는 예레미야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님,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셔서, 옛날과 같게 하여 주십시오.”(21)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끝에 이르렀을지언정 생명이 있는 이들 모두는 다시 주님께 나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 애가>는 탄식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비를 구한 뒤, 다시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유다 백성들의 의지가 드러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는 특별히 백성들의 의지가 드러난 5장의 말씀 몇 군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잃어버린 당연한 것들

 

먼저 백성들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은 상황에 관해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우리 물인데도 돈을 내야 마시고, 우리 나무인데도 값을 치러야 가져옵니다. 우리의 목에 멍에가 메여 있어서, 지쳤으나 쉬지도 못합니다.”(4-5)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이제는 물을 마시고 싶어도 돈을 내야 마실 수 있고나무가 필요할 때도 값을 치러야 나무를 사용할 수 있음을 한탄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 백성은 이제 바빌로니아의 것이 되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는 법입니다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게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선물로 그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백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감사를 잃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유다 백성들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들을 붙잡고 있던 두 손을 놓으셨습니다. 한두 번 실망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차례 반복해서 하나님께 돌아 올 기회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계속 하나님을 실망시켰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유다 백성은 당연히 누려왔던 것들을 당연하게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노래와 춤, 즐거움을 잃은 유다 

 

그리고 이어서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여인들은 짓밟히고 지도자들은 목숨을 잃고 장로들은 천대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일상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시온에서는 여인들이 짓밟히고, 유다 성읍들에서는 처녀들이 짓밟힙니다. 지도자들은 매달려서 죽고, 장로들은 천대를 받습니다. 젊은이들은 맷돌을 돌리며, 아이들은 나뭇짐을 지고 비틀거립니다. 노인들은 마을 회관을 떠나고, 젊은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즐거움이 사라지고, 춤이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11-15) 

 

사람들이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죽임 당하는 일까지 일어났지만 무엇보다 유다가 처한 근원적인 안타까움은 밝은 노랫소리즐거움이 사라지고 또한 사라진 것입니다. 노래와 춤 그리고 즐거움이 무슨 유익이 있나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래와 춤은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노래와 춤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합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우울증에 걸리면 네 가지의 질문 던진다고 합니다. 첫째,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이 언제인가? 둘째, 마지막으로 춤춘 것이 언제인가? 셋째,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 언제인가? 넷째, 마지막으로 고요히 앉아 있었던 것이 언제인가? 이 네 질문입니다. 노래와 춤의 가장 큰 유익은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속에 것을 밖으로 토해내는 행위는 긴장감을 풀어주고 내 안에 쌓인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줍니다. 예레미야의 아쉬움은 바로 이러한 아쉬움입니다그는 유다가 처한 가장 큰 슬픔은 삶을 가볍게 해 줄 방법을 모두 잃은 것을 통해 발견했습니다. 

 

다시 주님께 나아가기

 

예레미야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의 결과는 자신들의 죄(16) 때문이라고 고백하며 이제 다시 주님께로 발걸음을 돌리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는 21절에서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21)라고 고백합니다. 가장 큰 죄는 ‘절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에 다다랐다고 해서 결코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진정 끝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말합니다. “뭔가가 우리를 막아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그걸 뚫고 지나가는 일입니다 계속 달리세요, 끝까지. 멈추지 말고, 계속 움직이세요.”(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 마음산책)라고 말입니다. 유다 백성에게 남은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주님께 나아가는 일 말입니다. 

 

슬픔을 드러낼 용기 

 

예레미야의 이 다섯 편의 노래는 단순히 감정을 토해내는 그런 두서없는 글은 아닙니다. 이 <예레미야 애가>는 각 장의 문장 구성만 보더라도 아주 꼼꼼하게 구성되고 만들어진 노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구성의 노래라고 하여도 슬픔이나 애도는 노래 안에 모든 마음과 내용을 담을 수 없습니다. 의미는 늘 모자라는 법입니다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슬픔을 인정하고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레미야 애가>는 슬픈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용감한 책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자신의 슬픔을 주님 앞에 진솔하게 아뢰되 이를 통해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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