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2 청파교회 새벽설교
질투하시는 하나님
<에스겔서 5장 13-14절>
13. 이렇게 나의 분을 다 쏟아야, 그들에게 품었던 분이 풀려서, 내 마음도 시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내 분을 그들에게 다 쏟을 때에, 그들은 비로소 나 주가 질투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하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4. 또 내가, 둘러 있는 이방 사람 가운데서 너를 폐허 더미와 웃음거리로 만들어,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너를 비웃게 하겠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에스겔서 5장입니다. 에스겔서 5장은 앞서 다룬 예레미야서와 내용이 유사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심판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4-24장까지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계속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에는 몇 가지 비유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등장하는데, 그 메시지를 읽다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 계획
먼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불러 한 가지 일을 명하십니다. 그는 먼저 에스겔에게 날카로운 칼을 갖고 오라 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칼을 삭도 삼아서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른 머리카락과 수염을 저울에 달아서 정확히 1/3씩 나누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털들을 불에 태우게 하는데, 1/3은 성읍 한가운데서 태우게 하고, 1/3은 성읍 둘레를 돌면서 칼로 내려치라고 말씀하시고, 마지막 1/3은 바람에 날려 흩어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에스겔이 이 일을 다 마치고 나면, 하나님께서 칼을 들고 흩어지는 털들을 뒤쫓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하나의 상징인데, 실제로 에스겔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불에 태우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니까 에스겔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곧 예루살렘 주민들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예루살렘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3절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의 일부를 남겨서 옷자락에 싸 두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지만, 이렇게 남은 자들의 운명도 결코 희망적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불로 모두를 심판하실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없어 보입니다.
상처투성이 하나님
이어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백성을 향한 강한 질책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민족보다 더 심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보다 더 거스르는 사람이 되어서, 내 율례를 따르지도 않고, 내 규례를 지키지도 않고, 심지어는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이 지키는 규례를 따라 살지도 않았다.”(7)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사람들보다 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라 살지 않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향도 우리가 맺고 사는 사람들 간의 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는 상처는 주로 저 멀리 있는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받는 게 아닙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 아까이 지내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무척 오래갑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민족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많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저 이방 나라의 사람들보다 더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상처투성이가 되셨습니다.
아비규환
이어서 등장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심판하실지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8절부터 5장의 마지막 절인 17절까지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로 채워져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대적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8). 그리고 이방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를 벌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를 훈육할 때 기억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아이를 혼낼 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그들도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줄 알기에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서 부모는 반드시 아이를 사람들의 시선이 차단된 곳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들을 대하는 방식을 결코 모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백성을 벌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중요한 훈육 방법을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깨닫지 못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려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은 더 끔찍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잡아먹고, 자식이 아버지를 잡아먹는 일(10)도 일어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굶주림의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그보다는 아버지와 아들로 상징되는 질서나 위계가 완전히 무너질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를 열거합니다. “진실로 너희가 온갖 보기 싫은 우상과 역겨운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혀 놓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넘어뜨리겠고, 너희를 아끼지 않겠으며, 너희를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겠다.”(11)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벌하려고 하시는데, 이 이야기도 서두에 말씀하신 대로 백성을 1/3씩 나눠서 벌하겠다고 하십니다. 먼저 백성 중 1/3은 전염병에 걸려서 죽거나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1/3은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고 마지막 1/3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인데, 주님께서는 칼을 빼들고 그들의 뒤를 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과 유다 민족 중 어느 누구도 목숨을 건지지 못할 것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16-17절에도 심판의 내용이 등장하는데, 주님께서는 기근과 재난과 멸망의 화살을 쏘아 이스라엘을 아주 사라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보내어 유혈사태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마음에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완고해 보이십니다. 지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길래 이처럼 잔혹하고 뒤가 없는 벌을 내리겠다고 하시는 걸까요?
사랑의 속성, 질투
하나님은 자신의 가득 찬 분을 쏟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주님께서는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나의 분을 다 쏟아야, 그들에게 품었던 분이 풀려서, 내 마음도 시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내 분을 그들에게 다 쏟을 때에, 그들은 비로소 나 주가 질투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하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질투는 사랑의 속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질투는 사랑에 포함된 개념입니다. 모두를 사랑한다는 말은 어쩌면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영화의 한 대목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라고 생각하는 건, 방에서 산소가 몽땅 빠져나간 느낌이야.” (영화, <캐쉬백>, 2006)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질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완전하고 온전한 이’로 고백합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또한 맞습니다. <에스겔서>가 이를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너무 완전하고 온전한 대상으로만 여기면, 우리가 경건을 추구할 순 있으나 하나님이 너무 먼 존재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일상과 너무 동떨어진 대상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저 경배의 대상으로만 남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너무 사람과 동등한 존재로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내면을 함께 공유하고 계시고 인간의 내면과 닮은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에스겔서> 5장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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