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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세족 목요일]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20220414 청파교회 고난주간 설교

 

마지막 일주일: 목요일

 

 

세족 목요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가운데, 목요일에 일어난 일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가운데 목요일은 가장 특색 없는 날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책 <마지막 일주일>에 보면, 목요일은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날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세족 목요일’ 혹은 ‘세족식 목요일’로 불리는 이 목요일 이야기는 뭔가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고, 겟세마네로 가셔서는 하나님께 십자가를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또 다른 제자인 베드로에 의해 세 번 부인을 당한 후 다른 모든 제자들에게도 버림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비병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을 비롯한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고 사형이 선고됩니다. 바로 이 모든 사건이 금요일 아침이 밝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마가와 요한의 차이 

 

먼저 <마지막 일주일>이라는 책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복음서 기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의 이 목요일 기록의 차이에 관해 잠시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날짜 계산의 차이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한 날은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식사한 날이 유월절 하루 전날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유월절보다 하루 일찍 식사 시간을 잡은 것은 예수를 유월절에 희생당한 어린양과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와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에 할애한 분량 차이인데, 마가복음은 단 몇 절에 그친데 비해 요한복음은 몇 장에 걸쳐 그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세 번째는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와 제자들이 나눈 ‘성만찬’이 그 중심인데 비해, 요한복음에는 성만찬 이야기는 빠지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행위가 삽입돼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우리가 고난주간의 목요일을 ‘세족식 목요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요한복음의 이야기에 근거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마가복음이 되겠지만 같은 내용을 서술하는 복음서 이야기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말씀이 더 풍성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실패한 제자들 

 

이제는 마가복음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는데요. 먼저 예수와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 때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4장 18-21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 그들은 근심에 싸여 "나는 아니지요?" 하고 예수께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다.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식사의 자리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 그가 자신을 팔아넘길 거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께서 지목한 자가 제자 유다임이 밝혀집니다. 예수는 그렇게 유다에게 배신당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에게도 부인당하게 됩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배반함으로 실패한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제자들을 선택한 예수도 실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때까지의 분위기가 그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최후의 만찬 1: 식사 자리에 담긴 의미 

 

이렇게 조금은 엄숙하고 긴장된 식사의 자리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찬사가 등장합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유월절 식사 중에 나눈 예수의 이 말은 기독교 성만찬의 핵심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더 살펴봐야 할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이 식사의 자리에 담긴 의미입니다. 이 식탁의 자리의 의미, 이 식사 자리에서 하신 예수의 말씀에는 어떤 속뜻이 숨어 있을까요? 

 

먼저 예수께서 하신 식사의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1.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에게 있어 식사를 하는 것은 공생애 중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사용하신 많은 비유는 연회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를 함으로써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가장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소재를 통해 사역을 하신 것은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이 가장 힘 있고 비범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최후의 만찬 2: 공평한 하나님 나라 

 

이어서 예수와 제자들이 나눈 이 식탁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2. 식사를 할 때 예수께서 어떤 표현을 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께서 식사 자리에서 하신 말씀 가운데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 떼어서, 주시고’라는 동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 6장의 ‘오병이어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제자들이 굶주린 사람들을 흩어서 각자 먹을 것을 구하게 하자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곧이어 떡과 물고기를 축복하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먹고 남을 만큼 음식을 늘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주로 예수의 기적에 집중하지만, 책의 저자는 이 이야기의 요점이 떡과 물고기가 많아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누어 줌에 있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간과한 것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잊었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께서 축복하신 손은 음식의 기적이나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평한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보여주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성만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저자 마가는 떡과 포도주를 나눈 예수의 모습 속에서 모든 사람(제자)과 함께 나눈다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3: 출애굽 사건 상기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만찬에서 우리는 3. 출애굽 사건을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출애굽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첫 이야기이며, 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 출애굽 사건은 최초의 유월절로부터 시작되는데,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듯이 유월절에는 어린양을 희생시켰습니다. 문설주에 바른 이 어린양의 피로 히브리 사람들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은 유월절 어린양을 함께 나눠 먹은 후에 긴 여정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와 제자들이 유월절에 나눈 마지막 만찬은 이스라엘의 첫 유월절출애굽 사건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나눈 이 음식은 곧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지킴과 동시에 길고 긴 순례의 여정이 곧 도래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4-5: 임박한 죽음, 하나님과 관계 맺음

 

하지만 이 4. 마지막 만찬이 유월절에 행해졌다는 것은 곧 어린양의 희생, 즉 예수의 임박한 죽음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의 임박한 죽음은 ‘제정의 말씀’에서 드러나는데,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릴 자신의 몸과 피를 언급하셨습니다. 사실 몸과 피가 분리되었다는 말은 폭력에 노출된 죽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죽은 사람은 이처럼 표현하지 않습니다.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됐다고 말하지, 몸과 피가 분리됐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몸과 피를 따로 떼어 말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인 죽음을 맞이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런데 5. 만약 예수의 이러한 폭력에 의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예수의 죽음을 두고 희생의 죽음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책의 저자는 이러한 희생 제사의 요점은 고난이 중심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제자들은 예수의 몸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심으로 예수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고, 예수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수고가 수반돼야 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징으로만 성만찬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희생의 대리자인 예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직접적인 참여가 있을 때 예수와 함께 그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 기도, 체포 1-2

 

여기까지가 예수와 제자들이 나눈 마지막 만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이야기는 겟세마네 동산 이야기와 예수의 기도 그리고 체포에 관한 것입니다. 

 

식사를 마친 예수 일행은 예루살렘을 떠나 겟세마네라고 알려진 지역으로 갑니다. 겟세마네에 도착한 예수는 기도하기 위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동산에 오릅니다. 이때 예수께서 하나님을 향해 하신 호소의 방식과 내용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예수께서는 매우 놀라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서 깨어 있어라." 그리고서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 기도하시기를, 될 수만 있으면 이 시간이 자기에게서 비껴가게 해 달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 

 

1. 고통에 쌓인 예수는 하나님을 ‘아바(abba)’라고 불렀는데, 아람어 ‘아바’는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아이들이 유아기 때 주로 사용하는 언어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를 친밀하게 부를 때 사용합니다. 이는 곧 예수께서 하나님에게 친밀한 감정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2. 예수께서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시간이 비껴나가기를, 이 잔이 자신에게서 거두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구합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가 단정 짓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떠올리며,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 ‘겟세마네의 기도’는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 기도, 체포 3-4

 

3. 유월절 식사가 끝난 후, 요한은 곧 그 모임을 떠납니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서 예수를 체포할 계획을 세웁니다. 곧이어 성전의 치안을 맡은 경찰들과 군인들이 예수를 체포하러 옵니다. 마가와 요한의 묘사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적지 않은 무리가 예수를 잡으러 왔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마가는 이 상황에 처한 예수를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했다면, 요한은 예수를 지도자 또는 신적인 존재로 그린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만나고 고백하는 예수의 모습이 각 복음서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는 대제사장과 온 의회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대교의 재판이 이뤄지는데 그 결과는 예수의 사형이었습니다. 예수는 성전 관원들 앞에서 세 단계를 거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마가복음 14장 55-59절인데) 예수가 죄인이라는 증인들의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않거나 거짓된 상황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마가복음 14장 60-62절로)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아 대제사장이 직접 나서 심문하는 장면인데,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라는 질문에 예수는 “내가 바로 그이요.”라고 답합니다. ‘나다’라는 말은 ‘내가 그다’라는 단언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또 의문문처럼 ‘내가?’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대제사장은 그 문구를 선언적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마가복음 14장 63-65 절인데) 예수에게 내려진 사형 판결과 그가 받게 될 육체적 고난이 등장합니다. 

 

베드로의 부인, 예수의 고백 

 

이제 목요일에 일어난 이야기 중 마지막으로 다룰 부분은 베드로의 부인예수의 고백입니다. 마가는 마치 의도하듯 베드로와 예수의 모습을 대조시킵니다. 먼저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까지 예수를 따릅니다(14:53-54). 그리고 곧이어 예수는 심문을 당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합니다(14:55-65).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사람들로부터 예수와 한패냐는 질문을 받고 예수를 부인하기에 이릅니다(14:66-72). 

 

베드로는 구경꾼들에게 심문을 받고 겁을 먹은 반면, 예수는 심문을 받고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와 예수의 대조적인 모습을 부각함으로 예수가 어떤 분인지 드러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사실이 뭇 기독교인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 베드로의 모습을 보며,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불완전한 신앙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또 베드로가 울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며 절망하지만 않는다면 회복이 가능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인 목요일에 일어난 일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내일이면 고난주간 가운데, 가장 어둠이 짙은 날인 성금요일입니다. 예수께서 죽기 직전,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오늘 하루 깊이 묵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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